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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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경주 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慶州 方形臺座 石造如來坐像)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2. 5. 25. 20:05
보물, 경주 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慶州 方形臺座 石造如來坐像) 경주 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은 한국 불교조각 중 가장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한 석굴암 본존상을 계승하여 9세기경 통일신라 시대에 조성되었다. 자비로운 얼굴, 당당하고 균형 잡힌 신체, 풍부한 양감 등에서 통일신라 전성기 양식을 엿볼 수 있어 ‘미남불’로도 불렸다. 머리에는 크고 높은 지혜를 상징하는 육계(肉髻)가 솟아있으며, 양 눈썹 사이에는 무량세계를 비추는 부처님의 광명을 백호(白毫)로 표현했다. 목에는 세 줄의 주름인 삼도(三道)가 뚜렷한데, 이는 번뇌(煩惱), 업(業), 고(苦) 등 윤회의 인과를 의미한다. 법의(法衣)는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편단우견(偏袒右肩)으로 걸쳐 입었다. 왼손은 무릎 위에 얹고 오른손 손가락으로 땅을 가리키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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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김씨(慶州金氏) - 대전 효월드 뿌리공원국내 나들이/공원(公園)으로 2022. 2. 19. 04:06
작품명 : 화합과 번영 조각가 : 김지삼 작품 설명 : 고고(呱呱)한 신라(新羅) 천년(千年)의 여명(黎明)을 열어, 하늘을 찌를 뜻한 용맹(勇猛)과 기상(氣像)으로 웅비(雄飛)의 새 역사를 창조하고, 새 시대(時代) 광명(光明)의 세대(世代)에 만백성과 더불어 이 땅에 화평(和平)과 안락(安樂)을 이루어 자손만대 번영(繁榮)과 복락(福樂)을 누리기를 기원(祈願)하는 의미를 담음. 경주김씨, 그들에게 영광 있으라!! 경주김씨(慶州金氏) 유래 경주김씨 시조(始祖)는 신라 대보(大輔)의 벼슬을 지내신 알지(閼智) 공(公)이시다. 공(公)은 서기 65년 봄 3월 밤에 지금의 경주시 교동 소재의 계림에서 탄강하셨다. 삼국사기 및 삼국유사에 의하면, 왕이 금성(金城) 서쪽에서 닭 우는 소리를 듣고, 새벽에 신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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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新羅)의 시조, 박혁거세(朴赫居世)국내 나들이/공원(公園)으로 2021. 12. 29. 21:09
박혁거세(朴赫居世) ○ 생존 기간 : B.C 69년 ~ A.D 4년 ○ 주요 직위 : 신라의 개국 시조 (재위 B.C 57~AD 4) ○ 주요 업적 - 박씨의 시조이고, 고조선의 유민이 지금의 경상도 지방 산곡 간에 흩어져 살면서 형성한 급량(及梁) · 모량(牟梁 :혹은漸梁) · 사량(沙梁) · 본피(本彼) · 한지(漢祗:혹은 漢岐) · 습비(習比) 등 6족의 후예들이 사로국(斯盧國)을 형성, 양산촌(楊山村) · 고허촌(高墟村) · 진지촌(珍支村) · 대수촌(大樹村) · 가리촌(加利村) · 고야촌(高耶村) 등 여섯 마을의 왕으로 국호를 서라벌(徐羅伐)이라 하였고, 박혁거세란 ‘선도수련을 통해 크게 깨달아 세상을 이롭게 하는 분이라는 의미임. - B.C 37년 경주(서라벌)에 금성(金城)을 쌓고, B.C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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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史蹟) - 연천 경순왕릉(漣川 敬順王陵)국내 나들이/능, 원, 묘(陵 園 墓) 2021. 11. 26. 20:07
신라 경순왕릉 재실 신도비 비각 신도비(神道碑) 이 신도비는 발견되기 전까지 고랑포 주민들이 빨래판이나 징검다리로 이용되는 등 방치되고 있었다. 1976년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이 발견한 후 1986년에 재실과 신도비 비각을 건립하여 관리하고 있다. 신도비는 마모가 심해서 글씨가 잘 보이지 않고 10자 정도만 알 수 있다고 한다. 신도비 비각에 쓴 메모지 추정 신도비 신도비란 돌아가신 분의 업적이나 사적을 기리는 비석으로 묘로(墓路) 입구나 왕릉 앞에 세워둠 ※ 비면에서 찾아보기 사람 얼굴 형상, 한자(漢字) 10자 정도 – 마음이 고우면 잘 보인다고 함. 풍수로 본 왕릉은 팔백연화격(八百蓮花格),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으로 우리나라 제일의 명당이다. 이곳은 상서(祥瑞) 로운 기운이 많은 곳으로 수험생을 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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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잔(琉璃杯) - 국립경주박물관 황남 제3324호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1. 1. 13. 19:12
유리잔(琉璃杯) - 국립경주박물관 황남 제3324호 이 유리잔은 경주 황남대총 남분에서 여러 개의 편으로 출토된 것이며, 상부는 유리액을 흘려서 4~5단의 굴곡을 만들었고 바로 아래는 청색의 물결무늬 띠를 두르고, 하단에는 3줄의 유리 띠를 엇갈리게 하여 격자무늬로 장식한 것이 특징이다. 유리잔은 산화나트륨(Na2O) 융제로 하는 소다유리이며, 청색 띠에서는 착색제로 추정되는 구리(Cu)와 철(Fe)이 검출되었다. 이 유리잔은 초기 비잔틴 시기의 지중해 동부 연안에 있던 팔레스타인과 북쪽 시리아 지역에서 만든 것이 실크로드를 따라 신라까지 전해진 것으로 추정된다. 출토지 : 경상북도 경주시 황남대총 남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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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천년에 으뜸 충신, 박제상(朴提上, 363~419)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0. 8. 6. 21:58
박제상(朴堤上, 363~419) 김제상(金堤上)이라고도 한다. 내물왕 때부터 눌지왕 때까지 활동하였다. ≪삼국사기≫에 박제상은 신라 시조 혁거세(赫居世)의 후손으로 제5대 파사이사금의 5대 손이며 할아버지는 아도갈문왕(阿道葛文王), 아버지는 파진찬(波珍飡) 물품(勿品)으로 되어 있으나, 이러한 그의 세계(世系)는 거의 신빙성이 없다. 신라는 백제 세력을 견제할 필요에 의해 402년(실성왕 1) 내물왕의 셋째아들인 미사흔(未斯欣)을 왜에, 412년에는 내물왕의 둘째아들인 복호(卜好)를 고구려에 파견해 군사 원조를 요청하였다. 그러나 왜와 고구려는 이들 왕자를 인질로 감금하고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었다. 내물왕의 큰아들 눌지왕은 즉위 후 두 동생을 고구려와 왜로부터 구출하기 위해 군신을 불러 협의하였다.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