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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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순왕 넷째 아들 대안군(大安君), 7세손 태사공(太師公) 영단(靈壇)국내 나들이/동상(銅像),흉상(胸像),비(碑), 2021. 11. 27. 19:03
경순왕 넷째 아들 대안군(大安君), 7세손 태사공(太師公) 영단(靈壇) 高麗輔國大安君侍中侍郞 平章事慶州金公諱殷說 之靈壇碑 고려보국대안군시중시랑 평장사경주김공휘은열 지영단비 高麗國文純公檢校 太師慶州金公諱仁琯 之靈壇碑 고려국문순공검교 태사경주김공휘인관 지영단비 高麗輔國大安君侍中侍郞 平章事慶州金公諱殷說 妣國大夫人慶州崔氏 之靈壇 고려보국대안군시중시랑 평장사경주김공휘은열 비국대부인경주최씨 지영단 高麗國文純公檢校 太師慶州金公諱仁琯 配小國夫人利川徐氏 之靈壇 고려국문순공검교 태사경주김공휘인관 배소국부인이천서씨 지영단 靈壇奉安紀念碑(영단봉안기념비) 輔國(보국) 大安君(대안군)은 貫祖(관조)시며 名賢祖(명현조)시고 太師公(태사공)은 派祖 一世(파조 1세)시며 名賢(명현)이신데 奉祀(봉사)함에 있어 高麗朝(고려조)에는 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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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史蹟) - 연천 경순왕릉(漣川 敬順王陵)국내 나들이/능, 원, 묘(陵 園 墓) 2021. 11. 26. 20:07
신라 경순왕릉 재실 신도비 비각 신도비(神道碑) 이 신도비는 발견되기 전까지 고랑포 주민들이 빨래판이나 징검다리로 이용되는 등 방치되고 있었다. 1976년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이 발견한 후 1986년에 재실과 신도비 비각을 건립하여 관리하고 있다. 신도비는 마모가 심해서 글씨가 잘 보이지 않고 10자 정도만 알 수 있다고 한다. 신도비 비각에 쓴 메모지 추정 신도비 신도비란 돌아가신 분의 업적이나 사적을 기리는 비석으로 묘로(墓路) 입구나 왕릉 앞에 세워둠 ※ 비면에서 찾아보기 사람 얼굴 형상, 한자(漢字) 10자 정도 – 마음이 고우면 잘 보인다고 함. 풍수로 본 왕릉은 팔백연화격(八百蓮花格),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으로 우리나라 제일의 명당이다. 이곳은 상서(祥瑞) 로운 기운이 많은 곳으로 수험생을 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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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史蹟) 호로고루(瓠蘆古壘)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1. 11. 25. 20:10
연천 호로고루 동벽 호로고루 동벽은 평지로 이어져 적의 침입이 쉬운 성의 동쪽 부분을 방어하는 성벽이다. 성벽은 높이가 10m이고 아랫부분의 폭이 40m, 길이가 90m에 달할 정도여서 마을 주민들이 성이 아니고 재미산이라고 부를 정도로 웅장하다. 동벽을 만드는데 들어간 흙과 물의 양이 대략 15,996㎥에 달한다고 하니 엄청난 토목 공사로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호로고루 동벽은 고구려에 의해 처음 만들어져 사용되었지만 668년 고구려가 멸망하고 이어 벌어진 나당전쟁에서 신라가 승리하자 신라가 점령하여 사용하였다. 신라군이 점령할 당시 호로고루 동벽은 오랜 전쟁으로 말미암아 성벽 곳곳이 무너져 보수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신라군은 고구려 성벽을 허물지 않고 그대로 둔 상태에서 성벽을 덧붙여 쌓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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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대왕릉비(廣開土大王陵碑)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1. 11. 24. 20:15
북에서 온 광개토대왕릉비 이 광개토대왕릉비는 2002년 북한에 소재한 국보급 고구려 유물 및 벽화고분을 북한에서 직접 모형으로 제작해 우리나라에 제공한 남북사회문화협력사업의 결과로 우리나라에 들어오게 되었다. 당시 민간의 남북사회문화협력사업을 주도하며 이 비를 소장하고 있던 민족화해협력 범국민협의회(민화협)는 2015년 연천군에 이 비를 무상으로 기증하였으며 연천군은 고구려의 기상을 되새기고 남과 북의 통일과 화합을 기원하는 뜻을 담아 남한 지역을 대표하는 고구려유적인 연천 호로고루(사적 제467호)에 이 비를 세우게 되었다. 광개토대왕릉비(廣開土大王陵碑) 광개토대왕의 아들인 장수왕은 영토를 많이 넓힌 아버지의 업적을 기념하기 위해 당시 고구려의 수도였던 국내성 동쪽(현재 중국 지린성 퉁거우 지역)에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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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의전 어수정(崇義殿 御水井)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1. 11. 24. 19:05
어수정(御水井) 임금이 물을 마신 곳임을 의미하는 어수정은 한반도 여러 곳에 있다. 연천 숭의전 어수정은 고려 왕건, 동두천 어수정은 조선 태조, 치악산은 태종, 여주 상구리는 단종, 해인사 어수정, 창덕궁 낙선재 뒤뜰 등 여러 곳에 산재해 있다. 숭의전 약수터(연천군 먹는 물 공동시설) 숭의전 어수정(崇義殿 御水井) 숭의전 어수정은 고려를 건국한 왕건(王建, 877~943, 재위 : 918~943)이 물을 마신 곳이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왕건은 궁예(弓裔)의 신하로 있을 때 개성(당시 송악)과 철원(당시 태봉)을 왕래하면서 중간지점이었던 이곳에서 쉬어가며 물을 마셨다고 한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이곳 숭의전 자리에 왕건의 옛집 또는 왕건이 세운 앙암사(仰巖寺)라는 절이 있었다고 한다. 경기도 연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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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왕실을 지키는 나무(느티나무)자연과 함께/나무(木) 2021. 11. 23. 19:17
고려 왕실을 지키는 나무(느티나무) 이 느티나무는 조선 문종 2년(1452) 왕씨 자손이 심었다고 전해진다. 숭의전(崇義殿)은 조선시대에 고려 태조, 현종, 문종, 원종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사당으로 이성계가 세웠다고 한다. 이 나무가 철따라 웅웅 소리를 내며 울면 비나 눈이 많이 오고 이 나무에 까치가 모여들면 마을에 경사가 나며, 까마귀가 모여들면 틀림없이 초상이 난다고 한다. 보호수(느티나무 2그루) 고유번호 : 연천-6 수령 : 약 600년, 수고 : 20m, 나무둘레 : 390cm 지정일자 : 1982. 10. 15. 경기도 연천군 미산면 아미리 7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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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史蹟) 연천 당포성(漣川 堂浦城)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1. 11. 22. 19:05
당포성 동벽(堂浦城 東壁) 당포성 동벽은 성내로 진입이 가능한 동쪽 방면을 차단하는 방어시설이다. 성의 규모는 높이 6m, 폭 31m, 길이 50m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돌을 쌓아 만든 성벽으로 보이지만 석성을 쌓기 전에 먼저 점토를 다져 쌓은 후 그 외면에 석성을 쌓아 올린 토심 석축의 구조이다. 중심 성벽이 받게 되는 하중을 분산시키기 위해 3단의 보축 성벽을 쌓았으며 성벽 앞에는 폭 6m, 깊이 3m의 구덩이(潢, 황)를 파서 적이 쉽게 성벽을 오르지 못하게 하였다. 동벽 외부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조성된 수직의 기둥홈(柱洞)이 관찰되는데, 중국 집안의 환도산성, 패왕조산성, 흑구산성, 평양의 대성산성 등 고구려의 산성들에서 확인된 바 있는 특징적인 것이다. 특히 당포성 동벽에서는 수직의 기둥홈이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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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史蹟) 연천 숭의전(漣川 崇義殿)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1. 11. 21. 20:12
하마비(下馬碑) 이 비 앞으로 지나갈 때는 신분의 높고 낮음을 막론하고 누구든지 말에서 내려야 한다는 의미의 표석으로서 주로 궁궐, 향교 또는 유명한 성인들의 사당 앞에 세워 경의를 표하였다. 이 하마비는 최근에 설치된 것으로 보인다. 홍살문(紅살門) 홍살문은 능(陵) · 원(園) · 묘(廟) · 궁전(宮殿) · 관아(官衙) · 향교(鄕校) · 사당(祠堂) 등의 정면에 세우던 붉은 칠을 한 문이다. 홍살문은 ‘붉은 화살 문’이라는 뜻으로 홍전문(紅箭門), 홍문(紅門)이라고도 한다. 둥근기둥 두 개를 세우고 위에는 지붕이 없이 화살모양의 나무를 나란히 세워 놓았고, 그 중간에는 태극 문양이 그려져 있다. 이 홍살문이 언제부터 어떤 연유로 해서 세워지게 되었는지는, 문헌상 기록이 없어 확실히 알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