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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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대왕의 효심이 깃든 효찰대본산, 용주사(龍珠寺)국내 나들이/사찰(寺刹), 불교(佛敎) 2021. 7. 26. 04:11
정조대왕의 효심이 깃든 효찰대본산, 용주사(龍珠寺) 본래 용주사는 신라 문성왕 16년(854년)에 창건된 갈양사(葛陽寺)로써 청정하고 이름 높은 도량이었으나 병자호란 때 소실된 후 폐사되었다가 조선시대 제22대 임금인 정조(正祖)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화산으로 옮기면서 절을 다시 일으켜 원찰로 삼았다. 28세의 젊은 나이에 부왕에 의해 뒤주에 갇힌 채 8일만에 숨을 거둔 사도세자의 영혼이 구천을 맴도는 것 같아 괴로워 하던 정조는 보경스님으로부터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 설법을 듣게되고 이에 크게 감동, 부친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절을 세울 것을 결심하면서 경기도 양주 배봉산에 있던 부친의 묘를 천하제일의 복지(福地)라 하는 이곳 화산으로 옮겨와 현릉원(뒤에 융릉으로 승격)이라 하고, 보경스님을 팔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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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주사 대웅보전(龍珠寺 大雄寶殿) - 보물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1. 7. 25. 04:04
장대석으로 기단을 만들어 대웅보전을 올렸고, 중앙에 대우석(大隅石)을 설치한 6단의 계단을 두었다. 대우석은 보통의 경우 사찰에서는 연꽃무늬, 당초무늬 등으로 장식하는데, 용주사는 이와 달리 삼태극(三太極), 비운(飛雲) 그리고 모란 문양이 새겨져 있다. 이는 용주사와 어깨를 맞대고 있는 융릉 정자각(丁字閣)의 대우석과 동일한 양식인데, 융릉(추존 장조와 현경왕후의 능)과 용주사가 불가분의 인연을 가지고 있는만큼, 융릉을 이전하는데 참여한 공장(工匠)들이 용주사를 짓는데도 관여하였음을 보여주는 유물이다. 대웅보전 삼세불상(大雄寶殿 三世佛像) – 경기도 유형문화재 대웅보전 내의 삼세불상은 석가모니불, 약사여래불, 아미타불이다. 석가불을 주존으로 동쪽에 약사불과 서쪽에 아미타불이 협시하는 삼세불로서 절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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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주사 천보루(龍珠寺 天保樓) - 경기도 문화재자료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1. 7. 23. 04:18
세존사리탑(世尊舍利塔) 용주사 삼문을 들어서면 천보루(天保樓) 앞에 세존사리탑(世尊舍利塔)이 가람의 중심을 잡고 있는데, 1790년 창건 당시 지어진 5층 석탑에는 부처님의 사리 2 과가 봉안되어 있다고 하며, 일반적으로 석탑은 대웅전 앞에 자리하는데 전각이 아닌 누각(樓閣) 앞에 있어서 특이하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1702년에 성정(性淨) 스님이 부처님의 진시 사리 2 과를 사리병에 담아 석탑에 안치하였다고 한다. 세존사리탑으로 부르는 높이 4m의 이 탑은 전형적인 5층석탑의 형식을 갖추고 있는데, 1층의 기단위에 5층의 탑신과 옥개석을 차례로 올리고 상륜부에는 노반·복발·양화·보주를 모두 갖추었다. 기단의 면석과 탑신에는 우주(隅柱)가 모각되었으며 기단 갑석 위에는 옥신 고임으로 처리되었다. 옥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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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주사 동종(龍珠寺 銅鐘) - 국보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1. 7. 22. 04:07
용주사 동종(龍珠寺 銅鐘) - 국보 범종은 사원 건물에서 쓰는 종을 가리킨다. 절에서 많은 사람을 모이게 하거나 모든 이에게 때를 알려주는 것이었다가 그 소리가 신묘하여 예불의식 등에 쓰이게 되었는데 범종의 소리는 중생의 마음속을 깊이 울려 어리석은 몸과 마음을 자비로운 부처님의 품으로 이끌게 한다. 이처럼 종소리만 들어도 번뇌가 없어지고 지혜가 자라난다고 하여 종소리 자체에 신성한 의미를 부여하였다. 대웅보전의 계단을 올라 왼쪽을 향하면 정면에 법고각과 마주 보고 있는 범종각이 있다. 1911년 무렵에는 보신각(普信閣)이라고 하였으며, 이 전각 안에 있는 범종은 국보(國寶)로 지정되어 있다. 범종을 살펴보면, 종의 정면 아래 부분에 연꽃을 아로새긴 당좌(唐座, 종을 치는 부분)와 종신의 양쪽 옆에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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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주사 동종(龍珠寺 銅鐘) - 국보 제120호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0. 11. 19. 19:15
용주사 동종 (龍珠寺 銅鐘) - 국보 제120호 신라 종 양식을 보이는 고려시대 초기에 만들어진 대형의 범종으로, 높이 1.44m, 입지름 0.87m, 무게 1.5톤이다. 종 맨 위에는 소리의 울림을 도와 주는 용통이 있고, 고리 역할을 하는 용뉴는 용이 여의주를 물고 두 발로 힘차게 몸을 들어 올리는 형상을 하고 있다. 윗 문양띠(上帶)에는 구슬무늬로 테두리를 하고 있는데, 아래 위 서로 어긋나게 반원을 그리고 그 안에 꽃과 구슬무늬을 새긴 넓은 띠를 두르고 있다. 이 띠는 사각형 모양의 연곽과 한 면이 붙어 있다. 4곳의 연곽 안에는 9개의 돌출된 연꽃 모양의 연뢰가 있는데, 남아 있는 것은 1곳 뿐이다. 종의 몸체 앞뒤에는 비천상을, 좌우에는 삼존상(三尊像)을 두었고, 아래쪽으로 치우쳐 4곳에는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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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대왕이 꿈에 용이 여의주를 물고 승천했다하여 "용주사(龍珠寺)"국내 나들이/사찰(寺刹), 불교(佛敎) 2016. 11. 4. 05:03
정조대왕이 꿈에 용이 여의주를 물고 승천했다하여 "용주사(龍珠寺)" 누하주(樓下柱)에 새겨진 대한불교조계종의 종단 문장(紋章), ‘삼보륜(三寶輪)’ 막존지선(莫存知鮮) 그 의미를 마음에 새겨라는 뜻으로, 부모은중경에 나오는 글로 부모의 은혜를 잊지 말라는 뜻이다. 정조대왕이 꿈에 용이 여의주를 물고 승천했다하여 "용주사(龍珠寺)" 용주사(龍珠寺)는 신라 문성왕 16년(854년)에 창건된 갈양사(葛陽寺)로써 청정하고 이름 높은 도량이었으나 병자호란 때 소실된 후 폐사되었다가 조선시대 제22대 임금인 정조(正祖)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화산으로 옮기면서 절을 다시 일으켜 원찰로 삼았다. 사도세자가 28세의 젊은 나이에 부왕에 의해 뒤주에 갇힌 채 8일 만에 숨을 거둔 영혼이 구천을 맴도는 것 같아 괴로워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