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
지지대비(遲遲臺碑) -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24호수원사랑/문화재(文化財) 2020. 7. 15. 04:09
지지대비(遲遲臺碑) -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24호 지지대비는 조선 제22대 정조대왕의 지극한 효성을 추모하기 위해 1807년(순조 7) 화성 어사 신현(申絢)의 건의로 세워졌다. 정조대왕은 생부 사도세자(思悼世子)의 무덤인 현륭원(顯隆園, 현재 화성시 융릉)에 참배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 이 고개만 넘어서면 멀리서나마 무덤을 볼 수 없게 되므로, 언제나 이곳에서 행차를 멈추었다고 한다. 무덤을 뒤돌아보며 떠나기를 아쉬워했기 때문에 이곳에 이르면 왕의 행차가 느릿느릿 하였다고 하여 한자의 ‘느릴 지(遲)’자 두 자를 붙여 지지대(遲遲臺)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비문은 서영보(徐榮輔)가 짓고, 윤사국(尹篩國)이 글씨를 썼으며, 화성유수 홍명호(洪明浩)가 전액을 썼다. 지지대고개의 유래 정조는 뒤..
-
지지대(遲遲臺)와 지지대비(遲遲臺碑)수원사랑/문화재(文化財) 2016. 8. 26. 05:39
지지대(遲遲臺)와 지지대비(遲遲臺碑) 지지대비는 조선(朝鮮) 정조(正祖)의 지극한 효성을 추모하기 위해 순조 7년(1807) 화성 어사 신현의 건의로 세워진 비이다. 조선 정조는 생부인 사도세자(思悼世子) 능인 화성의 현륭원(顯隆園)에 참배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 이 고개만 넘어서면 멀리서나마 능을 볼 수 없게 되므로, 으레 이곳에서 행차를 멈추었다고 한다. 능을 뒤돌아보며 이곳을 떠나기를 아쉬워하였기 때문에 이곳에 이르면 왕의 행차가 느릿느릿 하였다고 하여 한자의 느릴'지(遲)'자 두 자를 붙여 지지대(遲遲臺)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비의 비문은 홍문관제학 서영보(徐榮輔)가 짓고, 윤사국(尹篩國)이 글씨를 썼으며, 화성유수 홍명호(洪明浩)가 전액을 썼다. 비운의 생애를 마친 아버지에..
-
프랑스군 참전기념비(佛軍 參戰記念碑),AUX COMBATTANTS FRANCAIS DE LA GUERRE DE COREE국내 나들이/안보 현장(安保 現場) 2014. 2. 10. 05:02
프랑스군 참전기념비(佛軍 參戰記念碑) (AUX COMBATTANTS FRANCAIS DE LA GUERRE DE COREE)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프랑스의 몽클라르(Monclar, 1882~1964)중장은 4성 장군 진급을 포기하고 스스로 중령 계급장을 달고 1950년 11월 29일 부산에 상륙하여 수원에 집결한 후, 미군 제2사단(인디언 머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