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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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보령 성주사지 낭혜화상탑비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2. 1. 7. 21:10
국보, 보령 성주사지 낭혜화상탑비(保寧 聖住寺址 郎慧和尙塔碑) 통일신라 말기 성주사에 머무르면서 선문 구산(禪門九山) 중 성주 산문을 일으킨 무염대사(無染大師, 801~888)를 기리기 위하여 최치원(崔致遠)이 왕명에 따라 지은 비석으로, 10세기 초에 세워졌다. 이 비석에는 5,120여 자의 긴 비문이 새겨져 있는데, 최치원의 화려한 문장을 최인연(崔仁渷)이 해서체로 쓴 것이다. 내용은 무염대사의 성장과 출가, 중국에 유학하여 공부하는 과정, 귀국하여 성주사를 일으키고 불법을 전하는 과정 등이 기록되어 있어 신라 선종사(禪宗史)와 당시의 신분제도 연구 등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남포오석(藍浦烏石)이 재료인 이 비석은 1천여 년의 풍상(風霜)을 견디며 고스란히 남아 있어 남포오석의 뛰어난 품질을 보여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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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치원(崔致遠)국내 나들이/동상(銅像),흉상(胸像),비(碑), 2021. 12. 5. 20:09
최치원(崔致遠) 생존기간 : 857년~? 주요 직위 : 신라 학자, 문장가, 종사관(從事官), 한림학사(翰林學士) 주요 업적 - 경주최씨의 시조이고, 869년(경문왕 9년) 13세로 당나라에 유학하였고, 874년 과거에 급제하였음. - 879년(헌강왕 5년) 황소(黃巢)의 난 때는 고변(高騈)의 종사관으로 황소의 난 당시 이를 비판하는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을 기초하여 문장가로서 이름을 떨쳤음. - 894년 시무 10여 조(時務 十餘 條)를 상소하여 아찬(阿飡)이 되었다. 그후 관직을 내놓고 난세를 비관, 각지를 유랑하다가 해인사에서 여생을 마침 주요 어록 - 우리나라에는 현모(玄妙)한 도(道)가 있으니 풍류(風流)라는 것으로 유불선(儒佛仙)을 포함하고 있다. 그 내력은 선사(仙史)에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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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최씨(慶州崔氏) - 대전 뿌리공원국내 나들이/공원(公園)으로 2021. 12. 4. 04:07
경주최씨 문중 유래(慶州崔氏 門中 由來) 경주최씨는 최씨의 대종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랜 유래를 지닌 씨족의 하나다. 최씨의 원조는 신라의 전신으로 경주에 자리 잡은 사로국 6촌의 하나인 돌산고허촌(突山高墟村)의 촌장 소벌도리공(蘇伐都利公)이시다. 신라를 세운 원훈(元勳)으로 법흥왕 3년에 충선공(忠宣公)으로 시호(諡號) 받았고 태종 무열왕 3년에 문열왕(文烈王)으로 추봉(追封)되셨으며 유리왕 9년에 최씨(崔氏)로 사성 받았다. 이것이 성을 갖게 된 유래이다. 경주최씨의 시조는 소벌도리공의 24세손인 고운 최치원(孤雲 崔致遠) 선생이시다. 오늘날 거의 모든 최씨의 분파는 고운 선생을 1세로 하는 경주최씨에 그 연원(淵源)을 두고 있다. 고운 선생은 12세의 어린나이로 당나라에 유학하여 18세에 과거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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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의 경전, 천부경(天符經)국내 나들이/동상(銅像),흉상(胸像),비(碑), 2021. 11. 30. 21:09
一始無始一(일시무시일)이니 析三極無盡本(석삼극무진본)이고 天一一地一二人一三(천일일지일이인일삼)이라 一積十鉅無櫃化三(일적십거무궤화삼)이니라 天二三地二三人二三(천이삼지이삼인이삼)이니 大三合六生七八九(대삼합육생칠팔구)하고 運三四成環五七(운삼사성환오칠)하니 一妙衍萬往萬來(일묘연만왕만)래라 用變不動本(용변부동본)이요 本心本太陽(본심본태양)이니 昻明人中天地一(앙명인중천지일)할지니 一終無終一(일종무종일)이니라 천부경의 해설 신라(新羅)의 최치원(崔致遠, 857~908년?)이 묘향산 석벽에 새긴 것을 일제강점기 계연수(桂延壽, ?~1920년)에 의해 발견된 글로, 단군이 지은 동이족의 역법으로 일컬어진다. 하나(太極)에서 비롯되나 무(无極)에서 비롯되는 하나이고, 셋(三才 : 天才, 地才, 人才)으로 지극히 나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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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 피향정(井邑 披香亭) - 보물 제289호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0. 7. 18. 04:23
하마석(下馬石) - 노둣돌 노둣돌은 하마석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말(馬)이나 가마를 타고 내릴 때 디딤돌로 이용된다. 보통 직육면체에 가까운 커다란 돌을 솟을대문 옆에 놓아두는 경우와, 석계처럼 잘 다듬어 기단 앞에 놓아두는 두 가지 형태가 있다. 정읍 피향정(井邑 披香亭) - 보물 제289호 피향정은 호남 제일의 정자이다. 원래 이 정자의 앞과 뒤에 상연지(上蓮池), 하연지(下蓮池)라는 연못이 있어 아름다운 경치를 이루었으나 상연지는 일제강점기 때 메워지고 현재는 하연지만 남아있다. 연못에 핀 연꽃의 향기가 주위에 가득하다 하여 이곳의 이름을 피향정이라고 하였다. 신라 정강왕 때 이 고을 태수를 지내던 최치원이 이곳 연못가를 거닐며 풍월을 읊었다 한다. 현재의 건물은 1716년(조선 숙종 42)에 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