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궁
-
사적, 이태조 행궁지(李太祖 行宮址)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1. 12. 31. 20:12
史蹟 李太祖 行宮址(사적 이태조 행궁지) 이태조 행궁지(李太祖 行宮址) 조선 초기에 세운 태조 이성계(太祖 李成桂, 1335~1408)의 행궁으로 2차 왕자의 난 이후 태종 이방원(太宗 李芳遠, 1367~1422)이 왕이 되자, 이성계는 적개심을 품고 개경을 떠났다. 하지만 함흥에 있는 함흥본궁으로 바로 가지 않고 소요산에 행궁을 지어서 살았다. 이 행궁을 이태조 행궁이라 불렀다. 조선시대 우의정을 지낸 미수(眉叟) 허목(許穆, 1595~1682)이 현종 4년(1663년)에 지은 미수기언(眉叟記言) 제9권 소요산기에 따르면 소요산 골짜기 입구 안팎의 산 밑에 사는 사람들이 서로 말하기를 왕궁의 옛터 두 곳이 우거진 숲 속에 두어층의 층계 만이 남아있으니 이것은 영락제 때 태상왕의 행궁이라고 하였다고 적고..
-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영남루(永南樓)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1. 12. 24. 19:18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영남루(永南樓) 영남루는 천안 화축관(華祝館)의 문으로 사용된 누각이다. 이 영남루를 1919년에 중앙초등학교 운동장으로 옮겼다가 1959년에 다시 현 삼거리공원 호숫가로 옮긴 것이다. 화축관은 1601년(선조 35년)에 군수 노대하(盧大河)가 세웠으나 그 후에 여러 차례 고쳐지었다. 천안이 영,호남(嶺,湖南)의 관문이어서 화축관은 역대 왕의 온양온천 행차 시 임시 거처(行宮, 행궁)로 사용하던 곳이다. 처음에는 정청(政廳) 10칸, 전후퇴주(前後退柱) 9칸, 동서랑(東西廊) 각 5칸, 시녀방(侍女房) 3칸, 정문 2칸의 큰 규모였다. 일제강점기에는 경찰서 숙소, 헌병대 사무실로 사용되었고, 해방 후에는 학교 관사로 활용되다가 헐리었다. 현재는 문루인 영남루만이 남아있다. 충청남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