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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대통령으로 부터 "무적해병" 휘호를 하사받은 도솔산지구 전투국내 나들이/안보 현장(安保 現場) 2008. 9. 26. 05:56
- 아군 : 국군 해병 제1연대, 미해병 제1사단 제1연대, 제5연대, 제7연대, 제11포병연대 제3대대
- 적군 : 북한군 제12사단, 제32사단
이승만 대통령으로 부터 "무적해병" 휘호를 하사받은 도솔산지구 전투
강원도 양구의 도솔산 일대는 태백산맥 중 가장 험한 산악지대로서 1,000m이상 고지가 중첩되어 있을 뿐 아니라
연중 이상기후가 계속되고 있는 지대이다.
특히 하절기에는 안개로 수m 전방을 분간하기 어려운 곳이므로 전투를 전개하기가 어려운 지역이다.
1951년 5월 한국전쟁시 춘계공세에서 실패한 인민군 제12사단은 동부전선의 전략 · 전술적 요충지인 펀치볼을
확보할 목적으로 대암산 ~ 도솔산 ~ 대우산으로 연결되는 산악지대에 지뢰를 매설하고 기암괴석을 이용하여
중화기를 배치하는 등 난공불락의 요새 진지를 구축하였다.
6월 3일 미 해병 제1사단 제5연대는 강력한 항공 및 포병화력의 엄호 하에 공격을 개시하였으나 막대한 인명피해만
입고 공격이 저지되었다. 이에 미 해병 1사단장은 6월 4일에 국군 제1해병연대를 이 지역에 투입하였다.
국군 해병대 제1연대장 김대식 대령 지휘아래 도솔산(1,148m) 지구 공격을 강행했으나 북괴군의 완강한 반격과
지형적으로 극히 불리한 아군은 유엔군의 포격지원과 공군지원을 받아 가면서 일진일퇴 공방전을 전개했다.
적은 이같은 자연적인 장애물을 최대한 이용하여 견고한 진지를 구축했다.
해병대 정면에 배치한 북괴군은 최강을 자랑하는 제5군단 예하 제12사단과 제32사단으로서 대우산을 공격목표로
진지를 구축하고 있었다. 장비와 지원포는 우세했지만 병력은 적군은 2개 사단인데 비해 아군은 1개 연대란 열세에
있었다. 아군은 적소에 부대를 배치하고 대소간의 전투를 전개하면서 6월 19일을 기해 도솔산 공격을 개시했다.
영시부터 돌격작전을 감행했는데 아군공격 부대는 야음을 틈타 적진 근처까지 진격해 있다가 5시 30분에 이르러
일제히 적진에 돌격하고 육박전까지 전개했다.
적의 최후 근거지로 알려진 도솔산고지 전투는 악전고투 육박전과 혈투였다. 국군 해병대 제3대대 장병들의 주도
면밀한 작전계획과 용감무쌍한 애국애정의 발로로 적의 주요전술인 야간공격으로 완전히 점령하고 말았다.
해병1연대장 김대식 대령은 3대대가 도솔산을 쉽게 점령할 것으로 예상하였는데 의외로 공격이 부진하여 야간공격을
명령하였다. 연대장의 명령에 따라 3대대장은 긴급 작전회의를 소집하여 야간공격을 토의하였다.
제11중대장 육동욱 중위는 야간공격을 반대하였고 반면 작전보좌관 노원근 소위는 우리가 공격하고 적은 후퇴하는
상황이지만 적이 바위틈에 은신하여 저격사격을 해오기 때문에 부상자만 증가할 뿐 진출이 불가능하고, 그리고
여기서는 지원화력도 효과가 없다.
적은 우리보다 이 지형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야간공격을 할 것으로 예상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이용하여 야간공격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처럼 야간공격에 대한 찬성과 반대의견이 비슷하였지만 대대장은 야간공격을 결심하였다.
10중대가 선봉에 서서 도솔산 정상까지 올라 갔지만 아무도 없었다. 이때 적은 도솔산 정상 부근이 암산으로 되어
있어 아군의 항공 및 포병사격에는 방어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도솔산 정상은 주간에도 올라오기 힘든 지형이기
때문에 야간공격을 못할 줄 알고 고지 후사면에 있었다.선발대에 이어 본대도 도솔산 정상으로 진출하였는데
동이 틀 무렵 대원중 일부가 도솔산 점령에 감격하여 만세를 불렀다.
이에 놀란 적이 고지 하단에서 사격하면서 기어 올라오기 시작하였지만 상황이 불리한 듯 대우산 쪽으로 철수하였다.
적은 장기간의 악전고투와 막대한 사상자의 속출, 보급의 부족으로 극도의 전의를 잃고 있었다.
아군 해병대의 집요한 공격으로 퇴각하기 시작한 적은 주력을 분산하여 패주하면서도 패전참상을 은폐하기 위해
부상병은 물론 수많은 전사자 시체까지 끌고 가고 생포자도 많았다.
아군은 123인이 전사하고 484인의 전상자가 있었으니 도솔산 지구 전투는 필설로 표현하기 어려운 처절한 전투였다.
도솔산 고지를 점령한 아군은 도솔산 인근에 있는 24개 목표를 완전 점령, 차기 작전에 방비하기 위해 견고한
방어진지를 구축했다.
피의 공방전을 벌인 이 전투는 한국전쟁 중 해병대 전통의 금자탑을 이루는 5대 작전 중의 한 전투이며, 격전후에는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무적해병" 이라는 휘호를 하사받은 전투이다.
이곳 전투의 참전부대는
양구 도솔산 펀치볼지구 전투전적비
(도솔산지구 격전도)
도솔산지구 전투의 성과로 당시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무적해병" 이란 휘호 하사 받았고
해병대 5대 작전 중의 한 전투라는 교훈과 펀치볼을 남쪽에서 통제할 수 있는 최종목표인 도솔산 점령 할수 있었다.
1999년 6월 20일 해병대사령부에서 건립한 양구군 해안면의 "양구 도솔산 · 펀치볼지구 전투전적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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