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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안(彼岸 : 열반의 세계)에 이르렀다는 도피안사(到彼岸寺) 사천왕,,
    국내 나들이/사찰(寺刹), 불교(佛敎) 2008. 11. 8. 06:20

    열반의 세계에 이르렀다는 도피안사 사천왕(到彼岸寺 四天王)

     

    도피안사(到彼岸寺)는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관우리에 자리한 아담한 사찰로 대한불교 조계종 제3교구 본산인

    신흥사(神興寺)의 말사이다. 그러나 역사는 깊어 신라 경문왕 5년(865)에 도선국사가 창건한 사찰로 알려져 있다.
    이곳 도피안사에는 국보 제63호로 지정된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이 있고 또 보물 제223호로 지정된 삼층석탑이 있다.

    1898년(광무 2) 화재를 입어 당시의 주지 법운(法雲)이 재건하였고, 1914년 다시 개수하였다.

    8·15광복 후 공산치하에 들어갔다가 6 ·25전쟁 때 전화(戰禍)로 완전 폐허가 된 것을

    1959년 육군 제15사단에서 재건하여 군승(軍僧)을 두어 관리하고 있다.

     

    사천왕(四天王)은??

    수미산(須彌山) 중턱에 살면서 사방을 지키고 불법을 수호하는 네 명의 대천왕을 말한다.

    사대천왕(四大天王), 사왕(四王), 호세사왕(護世四王)이라고도 한다.

    즉 동쪽을 지키는 지국천왕(持國天王), 서쪽을 지키는 광목천왕(廣目天王), 남쪽을 지키는 증장천왕(增長天王),

    북쪽을 지키는 다문천왕(多聞天王)을 각각 동서남북에 배치한 것이다.

    사천왕은 인도 신화에 나오는 호세신(護世神)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고 있지만

    일찍부터 불교에 받아들여져 원시경전인 장아함경(長阿含經)에 등장하고 있다.

    인도에서 처음으로 형상화된 사천왕상은 간다라 출토의 부조(浮彫)나 불전도(佛傳圖) 등에 나타나는 것처럼

    고대 인도의 귀인(貴人) 모습을 하고 있으나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화되어 가는 과정에서 무인형(武人形)의

    사천왕으로 변해 갔으며 이는 중국, 우리나라, 일본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사천왕은 나라와 경전에 따라 도상에 약간씩 차이가 있기 때문에 지물(持物)도 일정하지 않으나

    대체로 칼과 창, 탑 등의 무기를 가지고 있으며 특히 다문천은 손에 항상 보탑(寶塔)을 들고 있어

    사천왕의 명칭을 확인하는 데 하나의 기준이 된다.

    한편 라마 불교의 영향을 받은 티베트 계통의 사천왕은 지국천이 비파, 증장천이 검,

    광목천이 새끼줄, 다문천이 보서(족제비) 또는 보탑을 들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우리나라에서 사천왕상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때는 삼국유사 권 4에 신라 선덕여왕 때 양지(良志)라는

    명장(名匠)이 영묘사(靈妙寺)에 사천왕상을 조성했다고 하는 기록에 따라 7세기를 전후로 한 시기로 볼 수 있으며

    통일신라시대에 와서 크게 유행하면서 많은 작품을 남겼다.

    사천왕사지에서 출토된 녹유사천왕전(679년)을 비롯하여 감은사지 삼층석탑 출토 사리기에 부착된

    사천왕상(682년)과 석굴암 사천왕상(750년경) 등이 가장 대표적인 예이다.

     

    모든 번뇌를 벗어버리면 부처가 되고 해탈을 이룬다고 하는 도피안사  해탈문(解脫門)

     

    東方 持國天王(동방 지국천왕)

    건달바·부단나 등 두 신을 지배하여 東洲를 수호하는 지국천왕은 범어 Dhritarastra의 번역으로

    治國天이라고도 하며, 須彌山(수미산)4층에 머물고 그 宮殿을 賢上城이라 한다.

    지국천왕은 바른 손으로 옆구리를 짚고 왼 손에 칼을 들고 갖가지 天衣로 장식한 형상을 하고 있는데

    경전에 따라 도상의 차이가 약간씩 있으므로 우리나라에선 주로 왼손에 악기를 들고 있다.

     

                 

    西方 廣目天王(서방 광목천왕)

    용·비바사 등 두 신을 지배하여 西洲를 수호하는 광목천왕은 범어 Virupaksa의 번역으로 입을 벌리고

    눈을 부릅떠서 위엄을 나타내어 나쁜 것들을 물리치므로 廣目·惡目·惡眼 이라고도 부르고,

    여러 가지 웅변으로 나쁜 이야기를 굴복시키므로 雜語라고 부르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선 주로 바른 손은 허리춤에서 용의 목덜미를 움켜쥐고 있고

    왼손은 여의주 같은 구슬을 쥔 채 팔을 들고 있다.

     

    南方 增長天王(남방 증장천왕)
    구반다·폐려다 등 두 신을 지배하여 南洲를 수호하는 증장천왕은 범어  Virudhaka의 번역으로

    自他의 善根을 증진 한다는 뜻의 이름이다. 왼손은 주먹을 쥐고 허리에 대고 바른 손은 칼을 들고 있다. 

     

    北方 多聞天王(북방 다문천왕)

    야차·나찰 등 두 신을 지배하여 北洲를 수호하는 다문천왕은 범어 Dhanada 또는 Vaisravana의 번역으로

    毘沙門 이라고도 쓰고, 다른 이름으로 俱吠羅(Kuvera)라고도 한다.

    北洲를 수호함은 물론이요, 항상 부처님의 도량을 옹호하면서 설법을 듣는다고 한다.

    그래서 多聞이란 이름을 사용한다. 왼손은 항상 보탑을 들고 있으며, 바른 손은 창을 쥐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사찰 입구에 위치한 천왕문(天王門)이라는 독립된 공간에 사천왕상을 봉안하였다.

    조선 후기 사천왕 조각상은 대부분 나무나 흙으로 만든 대형 불상으로 높이는 약 3~4m의 거대한 크기에

    시무시한 표정과 화려한 채색, 그리고 역동적인 자세로 장엄한 부처의 세계에 들어오는

    모든 이들을 압도하는  모습으로 조성되었다.

    조선시대 사천왕은 대부분 악귀를 밟고 있지만 일부에는 악귀 대신 음녀나 탐관오리가 해학적으로 표현되어

    웃음을 자아내기도 한다. 사천왕은 불법과 국가를 수호하며 동시에 재난과 질병,

    그리고 흉악한 무리로부터 개인을 보호해주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지국천(持國天) : 수미산에서 동쪽으로 약 1천 유순을 가면 지국천왕이 거주하는 성(城)이 있는데,

    그 성의 이름이 현상성(賢上城)이다. 성주인 지국천왕은 건달바와 비사도 신장을 영도하며,

    동쪽의 인간 세계인 승신주(勝身洲)의 사람들을 보호한다. 

    증장천(增長天) : 수미산에서 남쪽으로 약 1천 유순 가량 떨어진 곳에 있다. 그곳에 증장천왕이 거주하는 성이 있는데,

           이름을 선견성(善見城)이라 한다. 증장천왕은 남쪽 섬부주(贍部洲)의 인간계를 보호하고 있다. 

    광목천(廣目天) : 수미산의 서쪽으로 1천 유순을 가면 광목천이 있다.

    여기에는 천왕이 사는 주라선견성(周羅善見城)이 있는데,

    이 성의 크기는 6천 유순이나 된다. 이곳의 광목천왕은 모든 용왕과 부단나 귀신을 거느리고

           서쪽 하늘 밑에 위치한 우화주(牛貨洲)의 인간계를 보호한다. 

    다문천(多聞天) : 수미산 북쪽으로 1천 유순을 떨어져 있는데, 이 천을 비사문천(毘沙門天)이라고도 한다.

         다문천왕이 거주하는 성은 가외성(可畏城), 천경성(天敬城), 중귀성(衆歸城) 등 세 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 성에서 다문천은 북의 구로주(瞿盧洲)를 수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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