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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속세를 넘어 이상세계에 도달하는 사찰....도피안사(到彼岸寺)
    국내 나들이/사찰(寺刹), 불교(佛敎) 2008. 11. 15. 05:23

                  속세를 넘어 이상세계에 도달하는 사찰....도피안사(到彼岸寺)

     

                   속세를 넘어 이상세계에 도달하는 절집 도피안사(到彼岸寺)에는 『도피안(到彼岸)』이라는 이름 속에 창건자의

                   깊은 원력이 서려 있다. 이 절은 865년(경덕왕 5) 당대의 고승인 도선국사가 1천500여 명의 대중과 함께 철불을

                   조성하고 삼층석탑을 세워 창건한 유서 깊은 고찰이다.

     

                『유점사본말사지(楡岾寺本末寺誌)』에 수록된 사적기에 따르면, 도선국사가 철조비로자나불상을 조성하여

                  철원의 안양사(安養寺)에 봉안하러 가던 도중 불상이 없어져 찾았더니, 도피안사 터에 안좌하고 있어 절을 창건하고

                  불상을 모셨다고 한다.

                  철불은 도피안사가 자리한 화개산이 물위에 떠 있는 연약한 연꽃의 모습이어서 삼층석탑과 함께 산세의 허약함을

                  보충하고 외세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해 조성한 것으로 새 시대의 도래를 꿈꾸는 민중의 정성이 이적을 보인 것이다.

                  도선국사는 이 절을 비보사찰(裨補寺刹) 중 하나로 삼았으며, 창건 이후 천년동안 그 명맥을 이어왔다고 하나

                  자세한 중수나 역사는 전하지 않는다.

     

                  그 뒤의 절의 내력은 『유점사본말사지』에 이임재(李瀮宰)가 지은 「화개산도피안사중수기(花蓋山到彼岸寺重修記)」

                  에 전하는데, 1898년 봄 큰 화재로 사찰의 모든 건물이 전소되면서 비로자나불좌상이 노천에 노출되었다고 한다.

                  이에 영주산인(靈珠山人) 월운 스님이 군하(群下)의 유력자인 강대용(姜大容)의 도움으로 법당 3칸을 지은 후

                  불상을 봉안하고 후불탱을 조성하였으며, 1914년에는 강대용이 화주가 되어 칠성각과 산신각을 중건하였다.

     

                  1927년에는 주지 의권 스님이 모든 건물을 새롭게 보수하였고, 1931년 회명 일승 스님이 도피안사 사적(到彼岸寺

                  事蹟)을 지었으며, 1933년에는 당국과 교섭하여 절 입구의 도로를 확장하였다. 광복 후에는 공산치하에 들어갔다가

                  6·25전쟁 때 전화로 완전 폐허가 되어 불상 또한 땅에 묻히고 말았다.

     

                  그 후 민간인통제구역으로 거의 폐허가 되었으며, 1953년부터 미 34단이 이곳에 주둔하다가 1957년에는

                  국군 15사단의 통제 하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던 중 1959년 어느 날 제15사단 이명재(李明載) 장군의 꿈에

                  도피안사의 부처님이 나타나, 불상이 땅속에 묻혀 답답하다고 계시하였다. 

                  꿈을 꾼 이튿날 전방 시찰을 나갔던 장군은 갑자기 갈증을 느껴 부근의 한 민가에 들어갔다가 그 집 안주인의 모습이

                  꿈에 본 여인과 똑같은 것을 보고 안주인에게 현몽한 꿈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장군은 꿈속에 보았던 절터의 모습을

                  설명하고, 그 여인의 안내를 받아 불타 없어진 도피안사 터를 찾아가서 땅속에 묻혀 있던 철불을 발견하였다.

     

                 이렇듯 천년 전 도선국사에 의해 조성된 철불은 이명재 장군에게 현몽하여 그 몸을 드러냈고, 고주찬 대대장과 함께

                 장병들의 손에 의해 도피안사가 재건되었다. 이후 사찰관리는 군에서 군승(軍僧)을 두어 관리하였으며,

                 1985년 사찰관리권이 민간으로 이관되어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인 신흥사의 말사가 되었다.

     

                 이후 근래에는 1986년 주지로 취임한 대원 스님에 의해 1988년 대적광전과 삼성각ㆍ요사채가 신축되었으며,

                 2002년 주지 도견스님에 의해 사천왕문과 해탈문이 신축되어 현재 가람 불사 중에 있다.

     

                 1985년 이후 민간인이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게 된 도피안사는 잦은 이적을 보이는 비로자나불의 가피와 더불어

                  불자들의 마음을 밝히는 대도량의 면모를 갖추어 나가고 있으며, 영원한 피안의 안식처로서 알려져 있다.

     

     

                   도피안사 안내문

     

                   사천왕문은 도피안사의 일주문으로 근래 도피안사의 가람 정비를 통해 영지(靈地)와 함께 건립되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평면에 풍판을 단 겹처마의 맞배건물로, 좌우 협칸에는 사천왕상 4구를 모시고 어칸은

                   통로가 되도록 하였다.       단층기단 위에 원형초석을 얹고 두리기둥을 세운 모습이며, 창방 뺄목을 초익공으로

                   만들어 1출목의 행공을 걸고 장혀와 보뺄목을 결구하여 외목도리를 받게 하였다. 건물은 단청되어 있으며,

                   건물 내부에는 목조의 사천왕을 배치하였다.  

                   사천왕은 지상의 가장 가까운 하늘에서 동서남북 사방을 담당하며, 인간으로 하여금 선을 행하게 하고 악을 막는

                   기능을 가진 불법의 수호신으로 동방 지국천(持國天)은 칼을 들고, 북방 다문천(多聞天)은 보탑을,

                   남방 증장천(增長天) 용을, 서방 광목천(廣目天) 비파를 들고 있다.

     

                   도피안사의 일주문인 사천왕문을 지나면 왼쪽으로 아담하게 꾸며놓은 연못이 있다.

     

                   기와불사는 연중 언제나 사찰내의 도량이나 법당을 지을때 쓰여지게 되는데 기와 한장 한장에 가족의 화목과

                   안녕,건강기원,소망 등의 발원을 글로써 적고 주소,성명 등을 기재하여 불사한다.

                   간혹 외국인들이 동참하여 그 뜻을 같이 해주는 것은 상생의 일종인가??

     

                   자비로운 모습의 불상...

     

                   도피안사 일주문(사천왕문) 전경

     

                   도피안사에서 부속 도량을 짓고있다....

     

                   도피안사 진입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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