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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리상자에 갇혀있는 국보..."원각사지 10층석탑" (국보 제2호)
    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08. 12. 7. 07:18

                     유리상자 보호각에 보존된 원각사지 10층석탑 (국보 제2호)

     

     원각사는 지금의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2가 탑골공원 자리에 있었던 절로, 조선 세조 11년(1465)에 세웠다.

    조선시대의 숭유억불정책 속에서도 중요한 사찰로 보호되어 오다가

    1504년 연산군이 이 절을 ‘연방원(聯芳院)’이라는 이름의 기생집으로 만들어 승려들을 내보냄으로써 절은 없어지게 되었다.

    이 탑은 조선시대(朝鮮時代)의 석탑으로는 유일한 형태로, 높이는 약 12m이다.

    대리석으로 만들어졌으며, 탑 구석구석에 표현된 화려한 조각이 대리석의 회백색과 잘 어울려 더욱 아름답게 보인다.

    탑을 받쳐주는 기단(基壇)은 3단으로 되어있고, 위에서 보면 아(亞)자 모양이다.

    기단의 각 층 옆면에는 여러가지 장식이 화사하게 조각되었는데 용, 사자, 연꽃무늬 등이 표현되었다.

    탑신부(塔身部)는 10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3층까지는 기단과 같은 아(亞)자 모양을 하고 있고

    4층부터는 정사각형의 평면을 이루고 있다.

    각 층마다 목조건축을 모방하여 지붕, 공포(목조건축에서 처마를 받치기 위해 기둥위에 얹는 부재),

    기둥 등을 세부적으로 잘 표현하였다.

    우리나라 석탑의 일반적 재료가 화강암인데 비해 대리석으로 만들어졌고,

    전체적인 형태나 세부구조 등이 고려시대의 경천사지 10층석탑과 매우 비슷하여 더욱 주의를 끌고 있다.

    탑의 윗부분에 남아있는 기록으로 세조 13년(1467)에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으며,

    형태가 특이하고 표현장식이 풍부하여 훌륭한 걸작품으로 손꼽히고 있다.

     

     

     

    이 일대는 조선(朝鮮) 세조(世祖) 11년(1465)에 세운 원각사의 터이며,

    원각사는 연산군(燕山君) 때 폐사(廢寺)되어 현재 이 탑과 비(碑)만 남아 있다.


     

    3층의 기단(基壇)은 평면이 아자형(亞字形)을 이루고 있으며

    탑신부(塔身部)는 3층까지는 기단과같은 평면이고 4층부터는 방형(方形)으로 되어 있다.

    각 면석(面石)은 용(龍) 사자(獅子) 모란(牡丹) 연꽃(蓮華) 불상(佛像) 보살상(菩薩像)

    나한상(羅漢像) 천왕상(天王像) 등으로 빈틈없이 새겨져 있으며,

    또한 탑신부에는 각 층마다 난간(欄干) 둥근기둥 다포계(多包系)의 공포(공包) 기와지붕 등이 새겨져

    다포계 목조건물(木造建物)의 세부수법을 충실히 모방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 탑은 상층부(上層部)에 명문(銘文)이 있어 세조 13년(1467)에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는데

    일반적인 석탑의 재료가 화강암인 데 비해 대리석으로 만든 점도 특이하며

    조각의 수법이 세련되고 의장(意匠)도 풍부하여 조선시대 석탑으로서는 가장 뛰어난 작품이다.


    원각사지십층석탑은 백탑(白塔)이라고도 불렸는데, 이덕무의 <성시전도(城市全圖)>라는 시(詩)에는

     '원각사에 우뚝한 백탑은 열네 층을 공중에 포개었네(層給遙空十四累 / 亭亭白塔大圓覺)'라는

    구절이 보이고,  정조는 '백탑을 바라보다(望白塔)'라는 시를 지었다.


      포개 놓은 돌이 손바닥처럼 편평한데 / 累石平如掌

    우뚝하게 솟아 유독 홀로 높구나 / 穹崇任獨尊

    스스로 중력을 지니지 않았다면 / 不由持重力

    어떻게 천문에 다다를 수 있으랴 / 何以抵天門

     

    - 민족문화추진회 역주, 『홍재전서(弘齋全書)』



     


    원각사지십층석탑(圓覺寺址十層石塔)


     

     


    이 유리상자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문화재 보호각이라 부르는 문화재 보존시설이다.

     탑, 불상, 석등과 같은 석조문화재의 경우 눈, 비, 바람 등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이로 인한 훼손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세우는 시설을 의미한다.

     즉 석불, 석비와 같은 석조문화재를 주요 대상으로 하고 풍우, 생물 침해 등의

    자연적 요인에 의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건립되었다고 할 수 있다.


     

    원각사지십층석탑에 보호각이 씌워지게 된 주요 원인은 산성비와 비둘기 배설물이었다.

    탑골공원의 그 많은 비둘기들이 탑 위에 올라앉아 실례를 한 것이 탑을 온통 뒤덮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재와 같은 보호각이 세워지게 되었다.

    물론 보호각 건립에 있어서는 석탑이 서울 도심지 내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

    대리석질이 풍화와 우수에 약하다는 점 등 많은 사항들이 고려되었다.


     


    사실 탑을 제대로 보기 힘들게 하는 반사유리는 직사광선으로 인한 탑의 훼손을 막기 위해 사용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각사지십층석탑은 우리에게 아쉬움을 남긴다.

    비둘기 접근을 막기 위해 완전 밀폐형으로 석탑을 가두어 놓으니 비둘기뿐 아니라

    사람들의 접근조차 이루어지기 어렵게 된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은 보호각이 문화재 보존 뿐 아니라 관람환경을 제공한다는

    중요한 또 다른 측면이 간과되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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