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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마리 용(龍)의 승천과 거북 받침의 부조화스러운 대원각사비(大圓覺寺碑)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08. 12. 6. 20:37
두 마리 용(龍)의 승천과 거북 받침의 부조화스러운 대원각사비(大圓覺寺碑)
원각사비는 원각사의 창건 내력을 적은 비. 서울 특별시 종로구 종로 2가 탑골공원에 있다.
전체 높이 4.9m, 비신 너비 1.3m로 보물 제3호이다.
이 비는 흰 대리석 화강암으로 다듬은 귀부 위에 세워 졌고 귀부는 기하학 무늬의 갑문으로 채워져 있으며
그 등에는 연잎 모양이 만들어져서 비신을 받치고 있는데 거북이의 머리는 목이 수평으로 표현되어 있다.
비신은 단면이 장방형으로 이수(머릿돌)와 함께 통짜 돌로 되어 있다. 이수에는 용 두 마리가 여의주를 다루는
모양이 새겨져 있는데, 그 조각 솜씨가 매우 정교하고 치밀하며 아름답다.
제목에는 두 줄로 꺾어서 원각사지비라 전서체로 새겨져 있고 비신 앞 뒷면은 명문을 새겼으나 마멸되어서
읽을 수 없고 겨우 남은 글자에서 세조 10년에 절을 새로 세웠다는 것을 알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조선 《금석총람》이나 《속동문선》 권지 20을 참고하면 앞쪽 비문에는 절의 창건과 이름의 뜻을
비롯하여 절의 위치와 면적, 절의 조성, 탑의 건립 등이 기록되어 있다.
즉, 이 비는 성종 2년에 세워졌고 두전은 강희맹의 글씨이고 비문은 김수온의 글이고 글씨는 성임의 것이며
또 음기는 서거정의 글이고 글씨는 정난종이 쓴 것임을 알 수 있다.
앞 뒤 비문의 글과 글씨가 모두 당대 거장들의 손에 이루어진 것들이어서 다시 없는 보배라 할 것이나
안타깝게도 바람에 갈리고 비에 씻기어 글씨를 알아볼 수 없다.
보물 제3호 원각사비(寶物 第三號 圓覺寺碑) 표석
대원각사비(大圓覺寺碑)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2가 38번지1호 탑골공원내에 있는 대원각사비는
세조11년(1465년)에 원각사(圓覺寺)를 세운 내력을 기록한 기념비로써 성종2년(1471년)에 세웠다.
비문의 앞면은 김수온(金守溫)이 짓고 성임(成任)이 썼으며 뒷면은 서거정(徐居正)이 짓고 정난종(鄭蘭宗)이 썼다.
이 비의 폭은 1.3m, 전체 높이는 4.94m로써 거북받침대는 화강석으로 만들었고 용머리장식과 비몸은 대리석으로 만들었다.
거북받침대는 가느다란 선과 기하학적 무늬로 채워져 있고, 그 틈에는 연꽃잎 모양이 만들어져서 비몸을 받치고 있다.
거북 머리는 목이 수평으로 돌출되어 있으며, 특히 물고기 비늘을 조각한 꼬리나 다리가 독특하다.
용머리장식과 비몸은 하나의 돌로 이루어져 있는데, 용머리장식에는 구슬을 받든
두 마리 용이 서로 엉켜 하늘로 오르는 형상을 세밀하게 조각하였다.
대원각사비는 원각사의 창건에 따른 상세한 내용을 새긴 비(碑)이다.
이 비는 조선 성종 2년, 1471년에 이곳에 세워졌는데.
이 비는 조선 세조 10년, 1464년에 세워진 원각사의 창건과 이름의 뜻, 위치와 면적, 연혁,
절의 조성, 원각사 10층 석탑 건립, 석탑 안에 사리와 원각경을 넣은 사실 등을 낱낱이 새겨놓은 비(碑)이다.
이 비의 머릿돌(이수)에는 승천하는 용의 꿈틀거림을 생동감 있게 새겨놓았다.
이 비의 재질은 대리석이며, 그 아래 비를 받들고 있는 큼직한 돌 거북의 재질은 화강암이다.
까닭에 언뜻 바라보면 이 비와 돌 거북이 한 몸이 되어 잘 어울리는 것이 아니라
제각각 따로 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대원각사 비(碑)의 재질은 비바람에 비교적 약한 대리석이지만,
이 비를 받치고 있는 돌 거북의 재질은 비바람에 아주 강한 화강암으로 되어 있다.
왜? 이 비의 재질은 화강암을쓰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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