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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옛 오색령(舊 五色嶺)
    국내 나들이/영(嶺)현(峴)치(峙)천(遷) 재,고개 2011. 9. 16. 05:08

     옛 오색령(舊 五色嶺)

     

    강원도 인제군과 양양군의 경계인 한계령(寒溪嶺). 이 고개의 본래 이름은 오색령(五色嶺)이다.

     한계령(寒溪嶺)에 대한 기록은 조선조 간행된 사서나 지리지 등의 문헌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한계(寒溪)는 현재 인제군 북면 한계리의 마을명으로, 한계령은 1970년대초 44번국도 도로공사후 붙여진 고개의 이름이다.

    한계령의 옛 이름은 소동라령(所冬羅嶺, 所東羅嶺)과 오색령(五色嶺)으로 생각된다.

    1530년에 간행된 양양도호부 산천조(山川條)에는 소동라령에 대하여,

     "부(府) 서쪽 60리에 있으며 겹치고 포개진 산맥에 지세가 험하고 궁벽지다.

    예전에는 서울로 통하는 길이 있었으나 지금은 없어졌다" 는 기록이 있다.

    이 기록을 살펴볼 때 『신증동국여지승람』이 간행된 조선 중종25년(1530) 이전에

    이미 소동라령은 도로의 기능을 상실했을 것이다.

    또한 남대천에 대해 "부 남쪽2리에 있다. 강릉부 오대산에서 나오며 소동라령의 물과 합치고

    부의 남쪽을 지나 바다에 들어 간다"는 기록을 보면 소동라령이 지금의 한계령 길을 의미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선후기에 간행된 지리지에 오색령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오색령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여지도서』(1757년)에서 찾을 수 있다.

    그밖에『관동지』(1870년 전후), 『대동지지』(1866), 『현산지』(1910년대 초반)에는 소동라령과 오색령이 함께 표기되어 있다. 

    오색령의 지명은 오색에서 찾을 수 있다. 이미 오래 전에 도로의 기능을 상실한 소동라령의 존재는 잊혀지고

    한양을 통하는 고갯길로 오색령이 등장한 것이다.

     

    1800년대 만들어진 ‘해동지도’ 등 대부분의 고지도에도 오색령으로 표기되어 있다.

    서면 오색리 주전골에 고즈넉이 자리한 보물 제 497호 ‘양양 오색리삼층석탑’이 남아 있는

    성국사의 원래의 이름 또한 오색석사(五色石寺)이니

     ‘오색’은 ‘양양’이란 지명이 사용되기 시작한 1416년보다도 훨씬 이전에 불리워진 양양의 역사를 간직한 우리의 소중한 지명이다.

    백두대간에 동해를 굽어보며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오색령!

    한계령을 오색령으로 바꾸어야 하는 이유를 굳이 열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30년동안 사용된 지명을 300년동안 불렸던 지명으로 바꾸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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