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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조(太祖) 이성계(李成桂)의 영정(影幀)을 봉안(奉安)한 곳,
    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13. 5. 15. 07:07

    이성계(李成桂)의 영정(影幀)을 봉안(奉安)한 곳,

    "전주 경기전(全州 慶基殿)"

     

    전북 전주시 풍남동의 전주 경기전(全州 慶基殿)은 

    조선(朝鮮) 이태조(李太祖)의 영정(影幀)을 봉안(奉安)한 곳이다.

    전주(全州)는 원래 조선왕조의 시조인 신라(新羅) 사공(司空) 이한공(李翰公)의

    발상지(發祥地)라 하여 전주이씨(全州李氏) 후손(後孫)들이

    조상(祖上)을 받드는 성역(聖域)으로 삼아온 터전이기도 하다.

    태종(太宗)은 1410년에 완산.전주(完山,全州), 계림.경주(鷄林.慶州), 평양(平壤) 3개소에

    태조(太祖) 강헌대왕(康獻大王)의 영정(影幀)을 봉안(奉安)하여 어용전(御容殿)이라 하였다.

    그후 세종(世宗) 24년(1442)에는 전주(全州)에 경기전(慶基殿),

    경주(慶州)에 집경전(集慶殿), 평양(平壤)에 영숭전(永崇殿)이란 호칭(呼稱)을 붙였다.

    그러나 경기전(慶基殿)은 임진왜란(壬辰倭亂)때 소실(燒失)되었고,

    그후 광해군(光海君)6년(1614)에 중건(重建)된 것이다.

    한편 영조(英祖)47년(1771)에는 경기전(慶基殿) 북쪽에 조경묘(肇慶廟)를 세워

    이왕조(李王朝)의 시조(始祖)인 이한공(李翰公)과 시조비(始祖妃)인

    경주김씨(慶州金氏)의 신위(神位)를 봉안(奉安)하였다.

    현존(現存)하는 경기전(慶基殿) 건물의 배치는 남쪽의 홍살문(紅箭門)을 지나 외삼문(外三門)을 들어서면

    양측에 문간체(門間體)의 익사(翼舍)를 달아낸 내삼문(內三門)에 면(面)하게 되는데

    그 통로(通路)는 전(塼)으로 바르게 깐 신도(神道)이다.

    외삼문(外三門) 내정(內庭) 좌우로는 사고석 담장을 돌렸는데 동측에는 협문(夾門)을 두고

    포장도(鋪裝道)를 전기(前記) 신도(神道)에서 이곳으로 연결하였다.

    그리고 내삼문(內三門) 문간체에 양측으로 연결되는 담장에도 각기 1개소씩 일각문을 두었다.

    내삼문(內三門)을 들어서면 그 북쪽에 내·외삼문(內·外三門)과 남북축(南北軸)을 맞추어

    정전(正殿)이 놓이고 그 동·서 양측에 익사(翼舍) 또는 행각(行閣)이 연결되어 꺾이어

    남향(南向)하다가 끊기어 그 나머지 부분을 담장으로 연결하여 폐쇄공간(閉鎖空間)을 이루고 있다.

    정전(正殿)은 지대석(地臺石)과 면석(面石), 갑석(甲石)으로 이루어진 춤 높은 기단 위에

    정면(正面) 3간(間), 측면(側面) 3간(間) 다포계(多包系) 형식(形式)의 맞배집인데

    그 전면(前面)에 바로 붙여 춤이 약간 낮은 기단을 정전(正殿)기단과 접속시켜 앞으로 돌출시키고

    그위에 첨각(添閣)을 두어 마치 능침(陵寢)의 丁자각(丁字閣)과 같은 평면(平面)을 하였다.

    이 첨각기단(添閣基壇)의 동·서·남면(東·西·南面)에는 각 1개소씩 계단을 두어

    전(塼)을 깐 포도(鋪道)와 연결되게 하였는데 남쪽에는 폭(幅)이 넓은 신도(神道)와 연결되고

    동·서쪽은 폭(幅)이 아주 좁은 도로로 연결되어 한번 꺾이어 내삼문(內三門)쪽으로 향하였다.

    정전(正殿)은 전면(前面)에는 띠살 사분합(四分閤)을 달고

    측면에는 전퇴(前退)쪽으로 외짝의 띠살문을 달았으며 그외의 면은 심벽을 쳤다.

    공포는 창방과 평방위에 배열한 내.외(內.外) 삼출목(三出目)의 다포형식(多包形式)인데,

    측면에는 포작(包作)을 배열하지 않은 것이 특이하다.

    또 전면의 첨각(添閣)은 전 측면이 단칸으로 벽없이 트이었다.

    공포는 주심포(柱心包) 형식이고 지붕은 전면에 풍판(風板)을 두고 정전(正殿)처마 밑으로 연결시켰다.

    남북으로 뻗은 4칸짜리 행각(行閣)과 연결되었는데

    이들은 내정(內庭)쪽으로는 트인 열주(列柱)를 보이고 외측으로는 벽체로 막혀 있다.

    또 정전(正殿), 익사(翼舍), 행각(行閣)의 기단(基壇)을 약간씩 단차(段差)를 두어 위계(位階)를 나타낸 것 같다.

    이 행각의 공포는 초익공(初翼工) 형식이다.

    경기전의 건물 배치에 대하여 상세한 그림으로 그린 “경기전 조경묘도형(慶基殿 肇慶廟圖形)”이 있는데

    여기에는 현재 없어진 부속건물들과 별전(別殿)이 있고 서남쪽에 전사청(典祀廳), 동재(東齋), 서재(西齋),

    수복방(守僕房), 제기고(祭器庫) 등의 부속건물이 배치되었으며 동북쪽에는 별전(別殿)과

    그 앞에 조산(造山)을 두고 있는 광역의 범위를 조영(造營)하였다.

    경기전은 2011년 7월 28일 고시로 통해 명칭이 “전주 경기전(全州 慶基殿)”으로 변경되었으며,

    1991년 1월 9일 사적 제339호로 지정, 관리하고 있다.

     

     

     

     

     

     

     

     

     

     

     

     

     

     

     

     

     

     

     

     

     

     

     

     

     

     

     

     

    수문장(守門將)의 늠름한 모습

     

     

    수문장 임무를 마치고 교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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