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천주교 대구대교구 주교좌성당 계산성당(桂山聖堂)-사적 제290호
    국내 나들이/천주교(天主敎) 2015. 5. 20. 05:18

    천주교 대구대교구 주교좌성당 계산성당(桂山聖堂)-사적 제290호

     

    이 건물은 서울과 평양에 이어 세 번째로 세워진 고딕양식의 성당이다.

    프랑스인 프와넬 신부가 설계하였고, 서울 명동성당의 건립에 참여하였던 중국인들이 공사를 담당하여 1902년 완공하였다.

    1911년에 주교좌성당이 되면서 종탑을 2배로 높이는 등 증축을 하여 1918년 12월 24일 현재의 모습으로 완성되었다.

    평면은 라틴십자형이고, 종탑부에는 8각의 높은 첨탑 2개를 대칭구조로 세웠으며, 앞면과 양측에는 장미창으로 장식하였다.

    대구 최초의 서양식 건물이며 현존하는 1900년대의 성당건축물로 중요한 가치가 있다.

     

    본당신설

    1885년 12월 제7대 조선대목구장 마리장귀스타브 블랑(한국식 이름:백규삼) 주교가 대구본당을 신설하고,

    초대본당 주임으로 프랑스의 아킬레 바오로 로베르(한국식 이름:김보록) 신부를 임명하였다.

    로베르 신부는 읍내에서 멀리 떨어져있는 신나무골에서 3년간 은신하여 전교하였다.

    1886년 조불 수호 통상조약 후에 신앙의 자유가 넓게 허용되었다.

    그래서 1888년 겨울, 로베르 신부는 대구 읍내의 교회 진출을 위해,

    신나무골에서 대구와 가까운 죽전 새방골(대구시 서구 상리동)로 옮겨 3년간 은신하여 전교하였다.

    낮에는 바깥 출입을 삼가고 밤이면 상복으로 변장하고 신자들을 방문하여 성사를 주었다

    1891년 새방골에서 읍내로 들어와서 성밖 대야불 정규옥 승지댁에서 7년 동안 전교하면서

    영구적인 본당을 설치할 부지를 물색하던 중 1897년 3월 김보록 신부는

    현재의 계산동 성당 자리와 그 서편에 있는 동산 두 곳을 물색하였다.

    김보록 신부는 동산 전부를 150냥에 매입하려고 결정하였으나,

    신자들 특히 노인층 신자들은 현 계산성당 자리가 좋다고 하였다.

    그들은 구릉 지대이며, 허허벌판 지대에(당시 황무지) 성당 자리를 잡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었다.

    전국 어느 곳을 막론하고 성당의 위치는 대개 높은 지대에 있어 마을이나 전 시가를 내려다보게 되는데,

    대구에서는 시내에서도 제일 저지대인 평지에 위치하게 되었다.

     

    십자형 성당(十字型 聖堂)

    십자형 성당의 건립

    계산동에 정착한 김보록 신부는 신자들이 성전 건축과 신부의 새 사제관(사랑채)을 짓기 위해서

    한결같이 보여준 열성으로 3년 만인 1899년 이른 봄 한식(韓式)으로 지은 십자형 기와집 성당과

    신부 사랑채와 신자 교육관으로 사용될 해성재(海星齋) 건물 등을 건축했다.

    사제관인 신부 사랑채는 2층으로 지었으며, 채색을 잘하는 스님 5명을 고용하여 성당과 사제관을 화려하게 단청(丹靑)하였다.

    서울에 세워진 약현(중림동)성당, 종현(명동 1898)성당, 인천 답동(1896)성당 등은 모두 서양식 건물인데 반해

    우리나라에서 네 번째로 세워진 대구 성당은 순수한 한식으로 동양 건축이었다.

    1899년 12월 25일 루르드의 성모께 헌당식과 축성식을 성대히 거행하고, 성모성당이라 하였다.

     

    = 대구광역시 중구 서성로 10 (계산동2가) 대구 계산동성당 =

     

     

     

     

     

     

     

     

     

     

     

     

     

     

     

     

     

     

     

     

     

     

     

    교황 요한 바오로2세 성하께서 1984년 5월 5일 대구대교구를 방문하시어 이 성당에서 기도하시고 어린이들을 축복하시었읍니다.

     

     

     

     

     

    계산성당 초대 주임신부 김보록(Paul Robert Achille) 신부상, 1853. 10. 22~ 1922. 1. 2. 

     

     

     

     

     

    옛 계산성당 사제관(1929)

     

    현재의 파고라 자리에 있던 옛 계산성당 사제관은 1929년 완공되어 이후 60여년간 사용되다가 1995년 화재로 철거되었다.

    이때 철거하면서 나온 벽돌로 오래되어 노후된 계산성당 보수공사를 할 수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 결혼식(1950)

     

    계산성당은 천주교 3대 성당에 걸맞게 웅장하고 멋스러워 유명인사들의 결혼식 장소로 많이 사용됐다.

    1950년 12월 12일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결혼식이 있었고, 당시 주례를 맡은 허억 대구시장은

    "신랑 육영수군과 신부 박정희양은..."이라고 말해 하객들이 폭소를 터뜨렸다는 에피소드가 전해진다.

     

     

     

    계산성당 증축(1918)

     

    1918년 5월 20일 계산성당 증축공사를 시작하여 10월 25일 준공하였다.

    증축된 성당은 종각이 두 배로 높아지고 성당 뒤편을 헐어서 증축하였다. 우리가 지금 보는 계산성당의 모습은 이때 완성되었다.

     

     

     

    대구 최초의 악대부(1915)

     

    1915년 대구에서 처음으로 30인조로 구성된 브라스 밴드를 창설하였는데,

    당시 악대부는 대구에서 처음 등장하였으며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이후 해성학교(성립학교) 학생들을 중심으로 해성악대부가 창립하는 데도 기여했다.

     

     

    성립여학교 제2회 졸업식(1913)

     

    이 사진은 성립여학교 제2회 졸업식 모습이다. 학교 창문에 창호지가 아닌 유리창이 사용된 모습을 볼 수 있고

    1912년 대구에 수녀(샬트르 성바오로 수녀원 소속)들이 처음으로 오는데,

    이 사진은 그 수녀들을 촬영한 최초의 사진이기도 하다.

     

     

     

    해성재(성립학교) 학생들 방천으로 소풍(1906)

     

    당시 서당에서 옛날 방식의 교육을 받던 사람들의 눈에는 학생들이 신식교육을 받고 소풍을 떠난다는 것 자체가 신기한 일이었다.

    해성재는 후에 총독부의 인가를 받기 위해 성립학교로 교명을 바꾸게 된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방문(1984)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한국천주교회 선교 200주년과 순교자 103위 시성식을 기념하기 위해

    1984년 5월 3일부터 5월 7일까지 한국교회를 사목 방문햇고, 기간 중 5월 5일 대구 계산성당을 방문했다.

     

     

    계산동 한옥 십자성당과 해성재(1898)

     

    계산성당의 초대 주임신부였던 로베르(한국명:김보록) 신부는 1885년경 경상도지방의 전교담당 사제로 임명되었고,

    특히 대구읍내의 전교에 힘을 쓰면서 신자수가 증가(1,000여명)하여 성당을 새로 짓게 된다.

    처음의 계산성장은 한옥으로 만든 십자형 성당이었으며, 1898년 6월 해성재 건물(오른편)을 완공하고,

    12월 성탄절에 성당(왼편)을 준공하여 봉헌식을 하였다.

     

     

    최덕홍 주교 장례 행렬(1954)

     

    현재는 위와 같은 장례식을 할 수 없겠지만 자동차와 교통량이 많지 않았던 당시에는 가능했다.

    오른족 뒤편으로 계산성당이 보이고, 장례행렬은 남산동의 대구교구청으로 향하고 있다.

    당시에는 달구벌대로도 계산오거리도 없이 현재 계산성당 주변과 많이 다른 모습이다.

     

     

    6.25전쟁과 계산성당(1950)

     

    전쟁의 참화로 안전한 곳이 없었던 6.25당시. 북한군에게 교구 본부가 점령당하지 않은 곳은

    대구교구가 유일했고, 피난민들 역시 대구와 부산으로 모여들었다.

    피난민들과 대구시민들은 신자이든 아니든 성모당과 계산성당에 모이기 시작했으며,

    오로지 평화를 간절히 열망하면서 "대구를 지켜주시고 보호해주소서"라고 기도했다.

     

     

    사적 제290호 계산성당 표석

     

    천주교 대구대교구 계산 주교좌 대성당 표석

     

     

     

    2934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