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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순교자들의 피로 적셔진 거룩한 땅, "배티성지"
    국내 나들이/천주교(天主敎) 2015. 6. 17. 05:29

    순교자들의 피로 적셔진 거룩한 땅, "배티성지"

     

     

    진천 배티성지(鎭川 梨峙聖地)는 한국 천주교회사에서 중요한 성지로

    박해를 피해 숨어들은 천주교 신자들에 의해 1830년대에 교우촌(敎友村)이 형성되었으며,

    1850년에는 프랑스 선교사 다블뤼(한국 성명, 安敦伊, 안토니오) 성인 주교가 설립한

    우리나라 최초의 신학교인 조선교구신학교(朝鮮敎區神學校)가 자리를 잡았던 곳이다.

    또한 우리나라 최초의 유학생이며 두 번째 신부인 崔良業(1821~1861, 세례명: 토마스) 신부를 비롯하여

    프랑스 선교사 프티니콜라(한국 성명, 朴德老) 신부와 페롱(한국 성, ) 신부가 1853년부터 1864년까지

    배티 신학교 건물을 성당(聖堂) 겸 사제관(司祭館으로 삼았고, 1866년의 병인박해(丙寅迫害) 때에는

    수많은 순교자가 배티와 인근 지역에서 탄생하여 순교자 묘(殉敎者 墓)에 안장되었다.

    배티 성지에는 배티 성당(梨峙 聖堂)을 비롯해 주변지역은 천주교 박해기에 교우촌(敎友村)으로 형성되었으며,

    순교자 묘(殉敎者 墓)들이 이 곳 저 곳에 위치하고 있다.

    이 성지는 1958년부터 청주교구 관할이 되었으며, 1977년부터 청주교구장에 의해 성지 개발이 시작되면서

    1978년에 순교자묘가 단장되었고, 1997년 최양업 신부 기념 성당이 건립되었다.

    충청북도기념물 제150(201134)

     

    = 충북 진천군 백곡면 양백리 360번지 일원, 천주교 청주교구 배티순교성지 =

     

     

     

     

     

     

     

     

     

     

     

     

     

     

     

     

     

     

     

     

     

     

     

    최양업 토마스 신부(崔良業 Thomas 神父, 1821~1861) 

     

    한국 천주교회의 첫 번째 신학생이요, 두 번째 사제인 최양업 신부님은 1836년에 유학을 떠나

    마카오와 만주의 소팔가자(小八家子) 등지에서 신학과 서양의 근대 학문을 배운 한국 최초의 유학생이었다.

    1849415일 상해 장가루 성당(張家樓 聖堂)에서 마레스카 주교님에게 사제품을 받은 후

    7개월 동안 요동의 차구 성당에서 중국인 신자들을 대상으로 성직을 수행하고, 같은 해 12월 말에 귀국하였다.

    최 신부님은 1850년 초부터 1861615일 선종하기까지 116개월 동안 교우촌 사도로서 이 땅의 복음화를 위해 헌신하였다.

    전국 5개 도에 흩어져 있는 120여 개의 교우촌 공동체를 찾아 1년에 7천리 이상을 순회하면서

    목자 없는 양처럼 방황하는 신자들을 찾아 성사를 집전하였다.

    최 신부님은 바쁜 선교 일정을 쪼개 한글 교리서와 기도서를 편찬하였으며,

    배티 교우촌에 있는 최초의 조선교구 신학교에서 신학생들을 가르쳤다.

    또한 천주교의 주요 교리를 4.4조의 한글 천주가사(天主歌辭)로 지어

    널리 보급함으로써 천주 신앙의 토착화에서 선구자 역할을 하였다.

    최양업 신부님은 착한 목자땀의 증거자이다. 길에서 살다가 길에서 과로로 선종한

    그 분의 신앙과 삶은 한국 천주교회의 훌륭한 족적으로 남아 이 시대의 귀감이 되고 있다.

     

    (주요약력)

    1821. 3. 1. 순교성인 최경환 프란치스코와 순교자 이성례 마리아의 장남으로

    충남 청양군 화성면 다락골에서 출생

    1836. 2. 6. 조선 최초의 신학생으로 선발되어 모방 신부댁에 도착함

    1836. 12. 3. 마카오 유학 출발

    1844. 12 김대건 성인과 함게 부제품을 받음(한국 천주교회의 첫 번째 부제)

    1849. 4. 15. 상해 서가회 성당에서 사제품을 받음

    1849. 12. 3. 의주 변문을 거쳐 조선으로 귀국 이후 12년 동안 5개도 9만리 이상을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성사를 줌

    1858년경 성교요리문답”, “천주성교공과등 번약, 편찬

    1861. 6. 15. 사목 보고차 상경하던 중 문경 근처에서 과로로 얻은 병으로 선종

     

     

     

     

     

     

    정이품송 후계목(正二品松 後繼木)

     

     

     

     

     

     

     

     

     

     

     

     

     

     

     

     

    배티순교성지(梨峙殉敎聖地)

     

    배티성지(梨峙聖地)는 박해시대의 전형적인 교우촌이며, 유명·무명 순교자들의 피로 적셔진 거룩한 땅입니다.

    이곳에 처음 교우촌이 형성된 것은 1830년 무렵이었습니다.

    그 후 박해가 거듭되면서 골짜기마다 새로운 교우촌이 늘어만 갔고, 병인박해(丙寅迫害, 1866년)와

    무진박해(戊辰迫害, 1868년) 때는 많은 교우들이 체포되어 피로써 신앙을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또 배티성지는 조선의 두 번째 사제이신 최양업(토마스, 1821~1861) 신부님과

    순교자 프타니콜라(朴, 1828~1866) 신부님의 사목 중심지였습니다.

    최신부님은 1850년대 초부터 여러 해 동안 이곳에 거처하면서

    교리 교육에 필요한 '천주가사'를 저술하거나 교회 서적들을 한글로 번역하였습니다.

    그리고 12년 동안 5개 도에 흩어져 있는 교우촌을 순방하기 위해 매년 수천리 이상을 걸어다녔습니다.

    최양업 신부님은 박해로 쓰러져 가는 교회를 다시 세우기 위해 길에서 살다가 과로 때문에 길에서 선종하신 착한 목자입니다.

     

    이 곳은 유명.무명 순교자들과 최양업 신부님의 숨결이 배어 있는 성지입니다.

    선조들의 피와 땀으로 신앙을 지켜 온 한국천주교회의 산실입니다.

    다같이 경건한 마음으로 순례에 임합시다.

    성지내에서는 담배를 피우거나 휴지를 버리는 일이 없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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