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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영대군 이구 묘역 및 사당(臨瀛大君 李璆 墓域 및 祠堂)
    국내 나들이/능, 원, 묘(陵 園 墓) 2016. 5. 11. 05:32

    임영대군 이구 묘역 및 사당(臨瀛大君 李璆 墓域 및 祠堂)


    임영대군 이구(臨瀛大君 李璆, 1418~1469)는 세종의 넷째 아들로 소헌왕후(昭憲王后) 심씨(沈氏) 소생이다.

    1428년(세종 10) 대군에 봉해졌는데 어려서부터 학문을 닦는데 시·서·경·사와 병서에 뛰어났으며

    화포와 화차 등 병기 개발에 남다른 재능을 보여 부왕의 총애를 받았다.

    그는 생존한 왕자들에게 치국진언할 것을 종용하고 동기간 우애 회복에 노력하였다.

    1469년(예종 1)에 별세하였는데 그가 남긴 유훈(遺訓)에 따라 예장(禮葬)도 하지 않았고

    신도비도 세우지 않는 등 검소하게 장례를 지냈다고 한다.
    능안마을의 배산인 모락산 중턱에 임영대군묘가 있고 그 동쪽에 배위인 제안부부인(濟安府夫人) 최씨묘가 있으며

    이곳에서 동쪽으로 약간 떨어진 나지막한 언덕 위에 사당 일곽이 자리잡고 있다.

    묘역은 3단으로 상단에는 봉분과 비석이 있는데 봉분은 둘레가 1,650㎝, 높이가 210㎝로 대형이다.

    봉분주변의 호석은 1981년에 새로 축조한 것으로 동서남북의 모서리에 대나무, 꽃, 새 등의 무늬를 새겨놓았다.

    봉분의 동쪽에는 높이 200㎝, 너비 50㎝의 비석이 있는데 앞면에 "조선국왕자임영대군정간공지묘(朝鮮國王子臨瀛大君貞簡公之墓)"

    뒷면에는 "개국오백삼십삼년알봉곤돈병월일중건신좌(開國五百三十三年閼逢困敦病月日重建辛坐)"가 새겨져 있다.

    중단에는 상석, 망주석 2개, 장명 등이 있다.

    원래의 상석은 없어지고 1981년 새로 만든 이 상석은 140×90×45㎝의 크기이고,

    비석은 너비 43㎝, 높이 36㎝로 중간에 문고리 모양이 양각되어 있다.

    숙종때 세웠다고 하는 장명등은 사방으로 4개의 구멍이 뚫려 있다.

    하단에는 동서 양쪽에 높이 250㎝의 문신석인이 있는데, 얼굴이 새겨진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두 손을 모아쥐고 있는 홀도 선명하다.

    임영대군의 신주를 모신 사당은 묘역에서 동쪽으로 약 200m 떨어진 곳이다.

    원래 사당의 위치는 마을에 있었으나, 지금부터 약 180년 전에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고 한다.

    제향은 음력으로 정월 21일 낮 12시에 행하며 전국에서 많은 후손들이 참여한다고 한다.

    사당은 크지는 않지만 건물의 짜임새나 전체적인 균형이 잘 맞추어져 있다.

    이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남도리집인데 전면에는 개방된 퇴칸이 있고 그 안쪽은 벽체로 각 칸을 막아 3실로 구분하였다.

    어칸에는 주독(主櫝)을 설치하여 임영대군과 제안부부인 최씨의 신주를 모셨으며 그 앞에 제탁과 향탁을 갖추었다.

    좌우 협칸에는 제기와 제복을 보관하고 있다.

    기단은 전면과 측면에 장대석을 일렬로 놓아 마감하였고 초석은 방향으로 잘 다듬은 것인데 춤이 비교적 높은 편이다.

    기둥은 전면만 원주이고 나머지는 모두 방주인데 흘림이 거의 없다.

    어칸과 협칸 창호는 모두 군판(裙板)이 있는 띠살 4분합인데 어칸 창호가 협칸의 것보다 약간 높이가 높다.

    측면과 후면의 벽체는 모두 심벽이며 중방 아래에는 화방벽(火防壁)을 시설하였다.

    가구(架構)는 1고주 5량 형식인데 물매가 비교적 완만하다.

    전퇴 고주와 후면 평주 사이에 대들보를 걸쳤는데 위로 휘어진 만곡재(彎曲材)를 써서 중대공없이 종량 위에 판대공을 세워 종도리를 받쳤다.

    처마는 흩처마이고 지붕은 맞배 형식인데 측면에는 방풍판으로 막았고

    용마루 위에는 회를 발라 만든 양성(兩城)을 두어 이 건물의 품격을 높이고자 하였다.

    현재의 사당은 19세기 후반에 중건된 것이나 묘(墓)와 함께 건립한 신당(神堂)이 많이 남아있지 않으므로

    건축사적 중요성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

    임영대군 이구 묘역 및 사당(臨瀛大君李璆墓域및祠堂)은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98호로 지정, 관리하고 있다.


    = 경기도 의왕시 능안길 32 (내손동) =















    조선국왕자임영대군정간공지묘(朝鮮國王子臨瀛大君貞簡公之墓)











    모락산(慕洛山) 이름 이야기


    의왕시를 대표하는 산인 모락산(慕洛山)은 의왕팔경(義王八景)의 하나로 의왕시민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명산이다.

    구전(口傳)에 의하면 삼국시대에는 취기산(就其山)으로 불리다가 고려시대에는 갈산(葛山)으로도 불렸었다고 한다.

    조선조 세종대왕의 넷째아들인 임영대군(臨瀛大君) 이구(李璆, 1418~1469)의 둘째형 세조(世祖)가 셋째형 안평대군(安平大君)을 죽이고

    조카인 단종(端宗)을 폐위시키고 왕위에 오르자 신병의 위협을 느껴서 몰래 이곳으로 피신하여

    절터골로 불리던 계곡에 토굴을 파고 숨어 지내면서 매일같이 산 정상에 올라서 풍우한서(風雨寒暑)를 무릅쓰고

    대궐을 향하여 망배례(望拜禮)를 드리며 종묘사직(宗廟社稷)과 국태민안(國泰民安)을 기원하였다.

    조카인 단종을 추모하는 마음이 사무쳐서 수시로 유배지인 영월 쪽을 향하여도 절하였다고 한다.

    그로부터 "서울을 사모하는 산"이란 뜻으로 그리움을 뜻하는 모(慕)자와 서울 락(洛)자를 써서  모락산(慕洛山)으로 불려오고 있는 것이다.

    모락산 정상 부근 서북쪽에 있는 사인암(舍人岩)에서 보면 서울이 한 눈에 들어오며, 멀리 서해까지 잘 볼 수 있다. (해발 385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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