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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흥사 적멸보궁(法興寺 寂滅寶宮) - 온 인류 참회 기도도량
    국내 나들이/사찰(寺刹), 불교(佛敎) 2016. 6. 24. 05:00



     

    법흥사 적멸보궁(法興寺 寂滅寶宮) - 온 인류 참회 기도도량





    사자산 법흥사는 신라 선덕여왕 12년(643년) 자장율사가 중국 종남산 운제사에 모셔져 있는

    문수보살의 석상 앞에서 7일간의 정진기도 끝에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문수보살로부터

    부처님의 진신사리와 가사·발우 등을 전수받아 사자산(연화봉)에 불사리를 봉안하고

    흥녕사라 개창한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 중의 하나인 불보 사찰이다.

    '적멸보궁'이란 '온갖 번뇌망상이 적멸한 보배로운 궁'이란 뜻이다.

    본래 사자산 법흥사의 지명 유래는 산세가 불교의 상징 동물인 사자형상의 허리와 같은 모든 지혈이 한 곳에 모이는 길지이며,

    뒤의 산봉우리가 불교의 상징 꽃인 연꽃 같이 생긴 연화봉에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셨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법흥사에서 적멸보궁으로 이어지는 소나무 숲 길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경승지 중 하나다.

    사찰로 들어가는 오솔길의 소나무 숲이 장관이고,

    사찰 앞에 줄줄이 이어진 아기자기한 아홉 개의 봉우리(구봉대) 역시 일품인 곳이다.

    적멸보궁은 경내 입구에서부터 500m 쯤 올라가면 나타난다. 법흥사 인근은 울창한 소나무 숲으로도 유명한데

    특히 적멸보궁으로 오르는 길 양 옆으로는 쭉쭉 뻗은 소나무 수백 그루가 장관을 연출한다.

    적멸보궁은 높고 긴 석축을 쌓아 넓은 대지를 마련하고 그 중앙에 기와로 지은 집이다.

    넓고 큰 돌들을 엮어 1단대의 지대를 마련한 위에 목조건물로서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맛배집이다.

    적멸보궁 기와의 입막새에는 법(法)자가 씌어져 있고 '소화(昭和) 8년 11월 준공 이라는 글씨가 양각되어 있는데,

    이는 1934년에 법흥사의 기와를 굽고 새로 지었다는 뜻이다.

    적멸보궁 내에는 '사자사 법흥사 적멸보궁 훈수(薰修)'라는 제목의 현판이 있다.

    여기에는 '불기(佛紀) 이천구백육십육년 기묘 시월 일일'이라 씌어 있으니 적멸보궁이 1939년에 중수된 사실을 알 수 있다.

    현존하는 적멸보궁 이전에 있었던 적멸보궁은 본래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29호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적멸보궁 뒤에는 자장스님이 불사리를 봉안하고 수도하던 곳이라 전해지는 토굴과 사리탑이 있다.

    적멸보궁 뒤 축대 위에 있는 석조 사리탑 왼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신라 선덕여왕 때 축조됐다고 전해지나 고려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토굴의 외부는 뒷편의 낮은 언덕으로부터 내려오는 완만한 경사를 이용하여 그 흙으로 석실을 엎었는데

    남향한 입구 쪽 정면만 높고 뒷편은 경사 때문에 약간 봉긋한 모양의 원형으로 마치 무덤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봉토의 높이는 1.48m이며 외곽의 지름은 4.72~5.77m이다.

    토굴 안의 평면은 입구부터 약간씩 넓어지다가 중심부에서 서쪽 한쪽만이 확장되고 가 모서리를 죽여서 원형에 가깝도록 했다.

    주위의 벽과 천정은 자연석으로 축조했는데 평평한 면을 가려서 쌓아 마치 치석한 석재로 보인다.

    벽은 10단을 쌓아 올리고 천정석을 놓았는데 6단까지는 거의 수직이고 7단부터는 모서리를 없애기 위해

    장대한 미석을 건너 지르기 시작하여 8,9,10단에서 각을 죽여 거의 원형을 이루는 두팔천정(斗八天井) 형식이다.

    내부의 높이는 키 작은 사람이 겨우 설 수 있을 정도인 160cm 너비는 190cm에 불과해

    앞쪽에 조그마한 숨구멍만 남겨둔 무덤이나 마찬가지다.

    자장 이후 다른 고승들이 이곳에서 수도를 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곳에 석관을 안치하여 고승의 사리나 유골을 봉안하고 경첩을 간직하던 곳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토굴 옆에는 자장이 당나라에서 불사리를 모셔올 때 사리를 넣고 사자 등에 싣고 왔다는 석함이 남아있다.

    몸체의 개석이 모두 파손되어 있으나 각부의 부서진 조각이 잔존함으로서 완전한 형태를 파악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이 석함은 한 개의 장방형 돌로 이루어졌다.

    이에 대해서 또한 징효대사가 쓰던 경함이라도는 설도 있다.

     













    법흥사 적멸보궁 주련(法興寺 寂滅寶宮 柱聯)


    萬代輪王三界主(만대윤왕삼계주) 만대의 왕이며 삼계의 주인이신 부처님

    雙林示滅幾千秋(쌍림시멸기천추) 사라쌍수 열반 이래 얼마나 세월이 흘렀는가

    眞身舍利今猶在(진신사리금유재) 부처님 진신 사리를 지금 여기에 모셨으니

    普使群生禮不休(보사군생예불휴) 뭇 중생으로 하여금 예배를 쉬지 하지 않으리.




    萬代輪王三界主(만대윤왕삼계주) 만대의 왕이며 삼계의 주인이신 부처님



    雙林示滅幾千秋(쌍림시멸기천추) 사라쌍수 열반 이래 얼마나 세월이 흘렀는가



    眞身舍利今猶在(진신사리금유재) 부처님 진신 사리를 지금 여기에 모셨으니



    普使群生禮不休(보사군생예불휴) 뭇 중생으로 하여금 예배를 쉬지 하지 않으리.














    영월 법흥사 석분(寧越 法興寺 石墳)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慈藏律師)가 도를 닦던 곳이라고 전하나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곳으로 보인다.
    돌방의 겉모습은 흙을 봉긋하게 덮어 무덤처럼 보인다.
    돌방의 입구는 네모꼴로 만들었으며 통로를 통해 돌방 안으로 들어가보면 바닥은 평평하고 벽면은 둥그스름하다.
    돌방 벽은 6단을 수직으로 쌓았고 7단부터 큰 돌로 모 줄임하여 10단까지 쌓아 한장의 돌로 덮었다.

    돌방 안의 크기는 높이 160cm, 길이는 150cm, 너비는 190cm정도이다.
    돌방(석실) 지금의 돌방 뒷편에 있는 돌널이 들어 있었다고 한다.

    돌널의 용도는 고승의 유골을 모셨던 곳으로 보이며, 돌방은 스님이 도를 닦던 곳으로 보인다.

    지금은 화강암으로 단을 쌓아 들어갈 수 없다.
    법흥사(法興寺) 적멸보궁(寂滅寶宮) 뒤편 언덕 경사면에 있는 돌방무덤은

    1988년 8월 25일에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09호로 지정, 관리하고 있다.



    영월 법흥사 부도(寧越 法興寺 浮屠)

     
    부도(浮屠)란 스님의 유골이나 사리를 모신 일종의 묘탑이다.

     부도는 징효대사 부도와 같은 형식이나 누구의 부도인지 알려져 있지 않다.

    일명 사리탑이라고 하는 이 부도는 넓고 네모난 돌을 바닥에 깔고 1단의 층을 만들어

    팔각의 아래 받침돌과 겹꽃잎 연꽃 무늬가 새겨진 받침돌을 놓았다.

    아래 받침돌 각 면에는 안상이 조각되어 있고, 그 안에는 큼직한 꽃들이 돋을새김 되어있다.

    가운데 받침돌은 팔각으로 각 면에는 양쪽에 모서리 기둥이 새겨져 있다.

    위 받침돌 옆면은 둥근 모양으로 두 겹의 연꽃을 새겨 놓았다.

    몸돌은 위 아래가 약간 좁아진 배흘림이 있는 팔각으로 앞 뒤 앞면에는 자물쇠가 달린 문들이 새겨져 있고,

    나머지 여섯 면에는 신장상이 돋을새김 하였다.

    지붕돌은 아래 면에는 3단의 괴임이 있으며, 지붕면은 들려 있어

    귀꽃탑 지붕돌의 추녀마루 끝에 꽃무늬를 새긴 장식등과 잘 어울린다.

    지붕돌 위에는 복발을 얹어 놓았으며, 보개는 지붕돌과 같고, 그 위에 보주가 있다.
    이 부도는 1982년 11월 3일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73호로 지정, 관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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