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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태대각간 순충장열 흥무대왕 김유신 신도비(新羅 太大角干 純忠壯㤠 興武大王 金庾信 神道碑)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16. 7. 28. 21:30
신라 순충장열 흥무대왕 김유신 신도비
(新羅 太大角干 純忠壯㤠 興武大王 金庾信 神道碑)
이 비석은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김유신 장군(595~673)의 일대기를 기록한 신도비이다.
김유신은 금관가야의 마지막 왕인 구형왕(仇衡王)의 증손으로할아버지는 관산성(管山城) 전투에서 백제의 성왕(聖王)을 사로잡은 김무력(金武力) 장군이다.
아버지는 만노군(萬弩郡), 현 충북 진천 태수를 역임한 소판(蘇判) 김서현(金舒玄)이고
어머니는 숙흘종(肅訖宗)의 딸인 만명부인(萬明夫人)이다.
신라 진평왕(眞平王) 17년(595년)에 만노군에서 출생하였으며,젊어서는 화랑으로서 수많은 낭도들을 이끌며 중악석굴(中岳石窟) 등
명산대천에서 수련하며 기상을 키웠다. 벼슬길에 나아가서는 탁월한 전략과 전술을 구사하여 밖으로는
백제와 고구려를 상대로 수많은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 나라를 지켰으며,안으로는 비담(毗曇)과 염종(廉宗)의 반란을 진압하여 나라를 안정시켰다.
진덕여왕(眞德女王)이 후사 없이 훙거(薨去)하자 김춘추(金春秋)를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으로 옹립하였으며,삼국통일전쟁의 신라군 총수로서 백제와 고구려를 통합하고 당나라 군대를 몰아내어 삼한일통의 대업을 이룩하였다.
고구려를 통합한 이후 태대각간(太大角干)에 봉하여졌으며.
문무왕(文武王) 13년(673년)에 7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 금산원(金山原)에 묻혔다.
흥덕왕(興德王) 10년(835년)에 공적을 기려 흥무대왕(興武大王)으로 추봉되었으며, 조선 명종 18년에 서악서원에 제향되었다.
국자박사 설인선(薛因宣)에게 명하여 공명을 기록한 비석을 세웠다고 하나 전하지 않으며,현재의 비석과 비각은 1966년에 세워진 것이다.
비문은 1933년에 정인보가 지었으며, 이를 이세호가 1956년에 써서 후손인 김형배가 새겼다.
비석의 재질은 화강암이며 높이는 262c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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