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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창 신재효 고택(高敞 申在孝 古宅) - 중요민속자료 제39호
    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16. 8. 29. 04:30

    고창 신재효 고택(高敞 申在孝 古宅) - 중요민속자료 제39



































    한국의 세익스피어 동리 신재효(桐里 申在孝)


    광대소리를 위해 만장의 기염과 소담한 자료,  이론적 유산을 남겨놓은 이가 바로 신재효이며,

    이제 그의 생전의 업적으로 인하여 판소리의 성자가 되었다.
    그는 서민 판소리 문학의 이론가요, 연출가이며. 광대의 지휘자로서, 광대들 뒤에서 그 사설을 정리하여 준 숨은 공로자로

    해박한 지식과 절묘한 기법으로 판소리 사설(타령)의 창작과 집대성으로 필생의 대업을 이루었다.
    그는1812(순조12년) 11월6일 고창현 천남면 서문리(현 고창읍 읍내리)에서 신광흡의1남 3녀의 외아들로 태어났으며,

    민족문학사의 찬연한 업적의 가치성은 당시 몹시 천대하고 멸시하던 광대와

    우리말과 글을 홀로 사랑하고 키우고자 일생의 정력을 오로지 여기에 바쳤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람 이병기같은 학자는 신재효가 이룩한 판소리의 업적을 국문학사상의 기적인 사업으로 지적하고 있으며

    우리 민족성을 발휘하여 국가문학을 크게 이루어준 우리의 큰 은인이였다고 그의 업적을 높이 평가 하고 있다,



    마당 한쪽에 세워져 있는 동리가비(桐里歌碑)


    고창읍내 홍문거리

    두훈나무 무지기안

    시내우에 정자짓고

    정자겨태 포도시렁

    포도끄태 연못이라


    姓貫은 平山申氏 
    이실在 효도孝는
    帳籍의 啣字이요
    일백百 근원原은
    친구간의 字號로다
    뜰아리핀 碧梧桐은
    壬申生과 同甲이요
    里號는 桐里오니
    너도工夫 하량이면
    가끔가끔 차져오쇼
    에옹에옹 어허
    우겨라  방아로구나





    동리 신재효선생추념비




    고창 신재효 고택(高敞 申在孝 古宅)


    이집은 동리 신재효(1812~1884)가 살면서 후학을 양성하던 곳으로 조선 철종 1(1850)에 건립했다.

    원래는 주변의 물을 끌어 마루 밑을 통해 서재 밖 연못으로 흘러가도록 만든 운치 있는 집이었으나,

    지금은 모두 파묻혔고 연못만 복원하였다.

    정면 6, 측면 2칸의 일자형주택으로 북향으로 있다.

    평면 구성은 건물의 왼쪽으로부터 부엌 1, 온돌방 2, 대청 1, 2칸통의 온돌방으로 되어 있고,

    부엌을 제외한 전면의 5칸은 우물마루로 꾸민 반 칸 너비의 퇴로 연결된다.

    구조는 낮은 기단 위에 막돌 덤벙주초를 놓았고, 앞쪽의 기둥은 모두 맷돌 모양의 주초와 두리기둥이며,

    나머지는 네모기둥을 세운 민도리 3량가(三樑架)이다.

    부엌 벽을 심벽[心壁: 흙만 가지고 쌓아올린 토언제(土堰堤) 등에서 물이 밖으로 새어나가지 못하도록

    진흙 따위로 만들어 그 심에 넣은 벽체]으로 처리하였고,

    부엌과 온돌방 사이에 비교적 넓은 쌍여닫이 출입문을 만든 점과 대청 양쪽 방으로 연결하는 문을 달지 않은 점이 특이하다.

    고창 신재효 고택은 1979123일 중요민속자료 제39호로 지정되었다.

     

    신재효는 심청가, 적벽가, 춘향가, 토끼타령, 박타령, 변강쇠타령(가루지기타령등 판소리 여섯마당의 체계를 세웠으며,

    판소리 창극화와 함께 판소리 사설을 집대성 하는 등 우리나라 판소리 발전에 커다란 공을 세운 사람이다.


    =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읍내리 4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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