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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년 고찰 “공작산 수타사(孔雀山 壽陀寺)”
    국내 나들이/사찰(寺刹), 불교(佛敎) 2016. 11. 3. 04:48

    천년 고찰 공작산 수타사(孔雀山 壽陀寺)”






    수타사 흥회루(壽陀寺 興懷樓)


    흥회루는 1658년(효종 9년)에 건립된  누각 형식의 건물이다.

    정면 5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으로 된 주심포식 건물로 조선후기 건축 양식을 잘 나타내고 있다.
    흥회루는 대적광전과 마주보며 개방되어 있어 설법을 위한 강당으로서의 기능 및

    수륙재와 같은 대형 불교의식을 거행하던 장소로 활용되었다.
    사찰의 중심 공간으로 들어 갈 때 루(樓) 아래로 드나드는 경우가 많은데

    수타사 흥회루는 단층으로 되어 옆으로 돌아 들어가는 진입방식을 지니고 있어 독특하다.

    흥회루는 창건된 이후 변화가 있었지만 건립 당시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어

    조선후기 건축물 연구에 중요한 자료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 172호로 지정, 관리하고 있다.












    수타사 대적광전(壽陀寺 大寂光殿)


    대적광전은 비로자나불을 주존으로 모신 법당으로 대광명전이라고도 한다.

    또한 주불전이 아닐 경우에는 비로전이라고 부른다.
    수타사의 본전(本殿)인 대적광전은 1636년(인조 14)에 공잠대사(工岑大師)가 중건하였다.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단층 겹처마 팔작지붕의 다포집이다.

    공포는 내2출목(內二出目) 외1출목(外一出目)으로 쇠서받침은 앙서로 되고 내부 살미는 일부가 초각(草刻)되어 있다.

    내출목 도리가 없는 것이 특이하다. 높은 장대석 기단 위에 둥근 기둥을 세웠다.

    문은 중앙칸에 4분합문의 띠살문을 달고 양 옆 칸에는 2짝 분합인 빗살문을 달았다.

    한편 기둥 위에 창방(昌枋)을 놓은 다음 기둥머리를 짜맞추고,

    이 기둥머리 사이에 주간포작을 정면인 경우에 각각 1·2·1씩 배열하였다.

    규모는 크지 않으나 부재 간의 비례가 잘 잡혀 있고 전체적으로 짜임새있는 구성을 한 전형적인 조선 후기 불전 건물이다.

    강원유형문화재 제17호(1971년 12월 16일 지정)


    대적광전이 있는 수타사는 강원도 홍천군 동면 덕치리 공작산(孔雀山)에 위치하였으며

    영서 지방의 사찰 중 가장 오래된 고찰로 신라시대인 708년(성덕왕 7)에 원효가 창건하였다.

    산세가 아름다워 일월사(日月寺)라고도 불렀다.

    고려 광종 때 중수하였는데, 고려시대까지는 선을 수행하는 도량으로 널리 알려졌으나 임진왜란 때 불탔다.

    뒤 법륜 등의 노력으로 대웅전 등 일부 건물이 복원되었다.






























    용담


    용담은 명주실 한 타래를 풀어 넣어도 물 깊이를 헤아릴 수 없었다는 곳으로

    이 소(沼)에서 바로 옆의 박쥐굴로 통하여 용(龍)이 승천했다는 전설이 있다.

    지금은 그 곳이 메워져 평범한 소(沼)가 되어있다. 





    천년 고찰 공작산 수타사(孔雀山 壽陀寺)”


    공작산(孔雀山)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月精寺)의 말사이다.

    708(성덕왕 7)에 창건되어 우적산(牛跡山) 일월사(日月寺)라 하였으며

    영서지방의 명찰로 손꼽혀 오다가 1568(선조 2)에 현위치로 이건(移建)하면서 수타사(水墮寺)라 하였다.

    그 뒤 임진왜란의 병화로 완전히 불타버린 뒤 1636(인조 14)에 공잠(工岑)이 중건하였고,

    1644년에 학준(學俊)이 당우(堂宇)를 확장하였다.

    1647년에는 계철(戒哲)과 승가(僧伽)가 승당(僧堂)을 새로 건립하였고,

    1650(효종 1)에는 도전(道佺)이 정문(正門)을 세웠으며,

    1658년에는 승해(勝海)와 정명(正明)이 흥회루(興懷樓)를 세웠다.

    1670(현종 11)에는 정지(正持)와 정상(正尙)과 천읍(天揖)이 대종(大鐘)을 주조하여 봉안하였고,

    1674년에는 여담(汝湛) 등이 사천왕상을 조성하였다.

    그 뒤에도 여민(汝敏지해(智海지행(智行성민(性敏찬징(贊澄선찰(善察성념(省念찬원(贊源상흘(尙吃) 등이

    1683(숙종 9)까지 계속하여 청련당(靑蓮堂향적전(香積殿백련당(白蓮堂송월당(送月堂) 등의

    당우들을 차례로 중건하여 옛모습을 재현하였다. 현재의 이름으로 바꾼 것은 1811(순조 11)이다.

    그 뒤에도 1861(철종 12)에 윤치(潤治)가 중수하였고,

    1878(고종 15)에는 동선당(東禪堂)을 중건하고 칠성각(七星閣)을 신축하였다.

    1976년 심우산방을 중수하였고, 1977년에는 삼성각을 지었으며, 1992년에는 관음전을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적광전(大寂光殿)을 중심으로 흥회루와 봉황문(鳳凰門, 또는 天王門)이 앞에 있으며,

    좌측에 심우산방(尋牛山房, 또는 東別堂)이 있고 좌측에는 요사채가 배열되어 있다.

    또한, 뒷편에는 삼성각(三聖閣)과 성황당이 있는데, 성황당이 있는 것은 특이하다.

    이 중 대적광전은 정면 3, 측면 3칸에 팔작지붕의 다포집으로 1497년 공잠이 이건, 중창한 것이며,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7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밖에도 보물 제745호로 지정된 월인석보(月印釋譜)17권과 제18권이 보존되어 있고,

    기단부와 옥개석만이 남아 있는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11호로 지정된 고려 말기의 3층석탑이 있다.

    또한, 이 절을 거쳐간 고승 중 청송당(靑松堂기허당(騎虛堂서곡(瑞谷유화당(遊華堂중봉당(中峯堂

    홍파(洪波홍우당(紅藕堂) 등의 부도가 있으며, 사리탑비(舍利塔碑)는 서곡의 것만 남아 있다.

    2,999평의 대지에 171평의 건물을 갖춘 이 절은 풍수로 볼 때 공작포란지지(孔雀抱卵之地)라는 명당이며,

    주위는 동용공작(東聳孔雀서치우적(西馳牛迹남횡비룡(南橫飛龍북류용담(北流龍潭)으로 표현되는 포근한 골짜기에 있다.

     

    = 강원도 홍천군 동면 덕치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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