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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우도 영랑나루 쉼터
    국내 나들이/섬(島)으로 2017. 3. 29. 22:30

    가우도 영랑나루 쉼터

     

    가우도 탐방로 좌측 데크길에는 강진의 대표 시인이자 한국 순수시를 개척한 항일민족시인인

    영랑 김윤식 선생의 시와 동상이 전시한 '영랑나루쉼터'가 조성되어 있다.
     영랑나루 쉼터는 33㎡의 공간의 의자에는 바다를 배경으로 실물크기의 영랑 선생 좌상조형물을 설치하였고,

    또한 테크 산책로에는 영랑 김윤식 시인을 알수 있는 약력과 대표작  모란이 피기까지는,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

    마음 고요히 고흔봄 길우에, 동백닙에 빗나는 마음 등 4편을 감상하도록 설치했다.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  (김영랑)

     

    -매 단풍 들것네

    장광에 골 붉은 감닙 날러오아

    누이는 놀란듯이 치어다 보며

    -매 단풍 들것네.

     

    추석이 내일 모레 기둘리리

    바람이 자지어서 걱정이리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

    -매 단풍 들것네.

     

    (시문학 창간호, 1930.3.5.)

     

     

    동백닙에 빗나는 마음 (김영랑)

    내마음의 어듼듯 한편에 끗업는 강물이 흐르네
    도처오르는 아츰날빗이 빤질한 은결을 도도네
    가슴엔듯 눈엔듯 또 핏줄엔듯
    마음이 도른도른 숨어잇는곳
    내마음의 어듼듯 한편에 끗업는 강물이 흐르네

     

    (시문학 창간호, 1930.3.5.)

     

     

    내 마음 고요히 고흔 봄길 우에  (김영랑)

     

    돌담에 소색이는 햇발가치

    돌아래 우슴짓는 샘물가치

    내마음 고요히 고흔 봄길 우에

    오날 하로 하날을 우러르고 십다

     

    새악시 볼에 떠오는 붓그럼가치

    의 가슴을 살프시 젖는 물결가치

    보드레한 에메랄드 얕게 흐르는

    실비단 하날을 바라보고 십다.

     

    (시문학 2, 1930.3.5.)

     

     

    모란이 피기까지는 (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즉 나의봄을 기둘리고 잇슬테요

    모란이 뚝뚝 떠러져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흰 서름에 잠길테요

    五月어느날 그하로 무덥든날

    떠러져누은 꼿닙마져 시드러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최도 업서지고

    뻐처오르든 내보람 서운케 문허졋느니

    모란이 지고발면 그뿐 내 한해는 다 가고 말아

    三白예순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즉 기둘리고 잇슬테요

    찰란한 슬픔의 봄을

     

    (문학 3, 1934.4.1.)

     

     

    한국 순수시 개척한 항일민족시인

    영랑 김윤식 선생

     

    영랑(永郎) 김윤식(金允植, 1903.1.16 ~ 1950.9.29.)은 전남 강진군 강진읍 남성리 211번지에서

    부친 김종호와 모친 김경무 사이에 3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9153월 강진보통학교를 졸업한 그는 이듬해 상경하여 기독청년회관에서 영어를 수학한 후 휘문의숙에 진학하였다.

    휘문의숙 재학시절이던 191931일 기미독립운동이 일어나자 영랑은 자신의 구두 안창에

    독립선언문을 숨겨 넣고 강진에 내려와 독립운동(강진 4.4운동)을 주도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대구형무소 등에서 6개월간의 옥고를 치렀다.

    1920년 일본으로 건너가 청산학원에서 수학한 그는 용아 박용철 등과 친교를 맺었다.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귀국한 후에는 시 창작활동에 몰두하였다.

    영랑은 19303월 창간한 '시문학'지를 중심으로 박용철, 정지용, 이하윤, 정인보, 변영로, 김현구, 신석정, 허보 등

    당대 최고의 시인들과 더불어 우리 현대시의 새장을 열었다.

    19344문학지 제3호에 불후의 명작 모란이 피기 까지는을 발표하였으며,

    1935영랑시집, 1949년에는 영랑시선을 출간하였다.

    영랑은 조국 해방이 이루어질 때까지 창씨개명과 신사참배 및

    삭발령을 거부한 채 흠결 없는 대조선인으로 의롭게 살았다.

    광복 후 신생 정부에 참여해 공보처 출판국장을 지냈던 그는 1950년 한국전쟁 때 부상당하여

    929일 서울 자택에서 47세를 일기로 타계하였다.

    영랑은 생애 87편의 시를 남겼으며, 정부에서 2008년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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