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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주교 순교지(天主敎 殉敎地), 남양성모성지(南陽聖母聖地)
    국내 나들이/천주교(天主敎) 2017. 4. 8. 05:30

     

    천주교 순교지(天主敎 殉敎地), 남양성모성지(南陽聖母聖地)

     

     

    남양 성모 순례지는 병인년(1866) 대박해 때 많은 순교지들이 피 흘리며 죽어간 무명 순교지이다.

    이곳에서는 많은 신자들이 순교하였는데 치명일기(致命日記)와 증언록에 기록이 전해지는

    남양의 순교자는 충청도 내포 사람 김 필립보와 박 마리아 부부, 용인 덧옥돌 사람 정 필립보,

    수원 걸매리 사람 김홍서 토마 네 사람뿐이다.

    남양 순교지는 다른 순교지와는 달리 무명 순교자들의 치명터였기 때문에

    오랜 세월 동 안 무관심 속에 방치되어 오다가, 1983년부터 성역화되기 시작하였다.

    그 후로 많은 어려움 속에서 작은 정성들을 모아 가꾸어져 오던 남양 순교지는

    1991107일 로사리오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축일에 성모께 봉헌되고

    한국 천주교회 사상 처음으로 성모 순례지로 공식 선포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곳은 화성시에서 화성8경 중의 하나로 지정하여

    홍보하고 있을 만큼 아름답게 가꾸어져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은 남양순교성지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화강암의 대형묵주알,

    그리스도왕상, 성 모동굴, 오솔길 소자상, 요셉성인상 등이 있으며,

    아늑하고 성스러운 분위기 조성을 위 한 성지 조성사업을 대대적으로 실시,

    성모님 품 같이 아늑하고 포근한 경관을 지닌 곳 으로

    관광객은 물론 전국의 천주교 신도들의 순례지 겸 휴식장소로도 잘 알려져 있다.

     

    순교지로서의 남양

    조선조 때 남양은 서해안의 군사적 요충지로서 행정과 사법권을 부여받은 종삼품의 도호부사가 부임했던 곳이다.

    남양부사는 경기도 관찰사의 감독 아래 이반행정에 관한 권 한 외에도 민사소송과 형사범을 다루는 사법권까지 갖고 있었다.

    그래서 남양은 물론 그 인근에서 붙잡은 천주교인들을 도호부사가 있던 남양으로 끌어다가 처형했다.

    그리고 남 양은 지리적으로도 신앙 활동이 자유로웠던 중국과의 연락이 용이한 서해안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조선조 당시 이곳에는 많은 천주교인들이 찾아들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또한 남양과 이웃해서 백학 교우촌이 있던 것도 이곳이 순교지가 된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이다.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 남양성지로 112 (남양동)

     

     

     

     

     

     

     

     

     

     

     

    교회는 파티마를 체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나 개인적으로는 파티마에 발현하신 성모님의 메시지를 각별하게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처음에는 1981513일에 있었던 나의 생명을 노리는 저격의 순간이었고

    다음으로는 80년대 말 소비에트 연방 국가들에서의 공산주의의 몰락을 보았을 때입니다

    나는 이러한 일들이 모든 사람이 충분히 간파할 수 있는 경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다 함께 역사를 통한 순례의 길에서 하느님의 백성보다 앞서 가시는 거룩한 동정녀께서

    1989년 이후에도 유럽의 여러 국가들이나 다른 대륙들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난관들을 극복하는 데에 우리를 도와주시고 계신다는 것을 믿읍시다." 

     

    교황 요한 바오로 2

     

     

     

    "어떻게 죽지 않았습니까?

    나는 당신을 정확히 쏘았습니다.

    파티마는 도대체 무엇입니까?"

     

    1981513일 바티칸광장에서 교황 저격사건이 일어났다.

    저격범은 교황과 불과 3m밖에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총알은 심장을 1mm 차이로 비껴갔고, 교황은 나흘 만에 의식을 회복하였다.

     

     

    한 손은 총을 쏘고 또 다른 한 손은 총알을 비껴가게 했다.

     

    "나는 복되신 동정 마리아와 모든 성인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성 베드로 광장에서 일어난 사건이 60여 년 전 파티마에서 가난하고 어린 세 목동들에게

    그리스도의 어머니께서 발현하셨던 바로 그 날 그 시간에 일어났다는 사실을 내가 어떻게 잊을 수 있겠습니까?

    그날 내게 일어 난 모든 사건들 속에서 성모님의 특별한 보호와 돌보심은 나를 죽이려 했던 총알보다도 더 강했습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

     

     

     

    결국 내 티 없는 성심이 승리할 것이다.

     

    저격 사건을 통해 파티마의 충실한 학생이 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파티마에 관한 문헌 전체를 읽고 묵상하며 기도하였다.

    병원에 있는 동안 성모님께 바치는 의탁의 기도문을 작성하였고 이듬해 1982513일 순례자로서

    파티마를 방문하여 티 없이 깨끗하신 성심께 대한 봉헌의 예식을 거행하였다.

    그리고 1984325일 자신이 총에 맞아 쓰러졌던 바티칸 광장에 파티마 성모상을 모시고

    러시아의 회개와 전 세계의 평화를 구하는 봉헌식을 다시 한 번 거행하였다.

    교황은 이 봉헌식에 전 세계 모든 주교들을 초청하였는데 파티마의 목격자 중 한 사람이며

    유일한 생존자였던 루치아 수녀는 이러한 장엄하고 보편적인 봉헌의 행위가

    성모님께서 요청하신 대로 된 것이라고 확인해 주었다.

     

    교황은 나에게 러시아를 봉헌할 것이고, 러시아는 회개할 것이며

    세상에 평화의 시기가 도래할 것이다.”

     

     

     

    너희가 내 말을 따르면 평화가 올 것이다

     

    봉헌에 따른 결과는 놀라웠다. 1985310일 소련 공산당 서기장으로 미하엘 고르바쵸프 선출,

    언론과 종교의 자유를 위한 그의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은 소련 공산주의 체제의 변화와 붕괴를 가속화 시켰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조국 폴란드에 반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나 민주정권이 수립되었고 뒤따라

    많은 나라들이 민주주의 체제로 돌아섰으며 1989119일 독일을 나누던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1989121일 고르바쵸프가 바티칸을 공식 방문하여 공산당 서기장과 교황과의 역사적인 만남이 이루어졌으며

    1990년 소련과 바티칸은 외교관계를 맺었다.

    그리고 다음 해인 1991년 소련이 붕괴되면서 동유럽은 공산주의의 지배에서 해방된다.

     

    합리주의에 물들어 있는 오늘날의 사고방식과는 다른 영성적 관점에서 역사를 깊이 있게 해석해 본다면

    티 없이 깨끗하신 성심께 대한 봉헌 이후부터 이 모든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 신앙교리성 차관 타르치시오 베르토네 명예 대주교 -

     

     

    파티마의 성모가 북한의 회개 도울 것

     

    러시아가 공산주의의 굴레에서 벗어난 후 199510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사도의 모후 신학교를 방문한

    김수환 추기경님은 북한은 아직도 세계에서 가장 원리적이며 폐쇄적인 공산주의 체제라고 하시며,

     “파티마의 성모님께서는 한국을 잊으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비통해 하셨다.

    이에 콘트루비시즈 대주교님은 러시아 주교로 임명된 직후,

    성모 발현을 목격했던 루치아 수녀님께 직접 들었다고 하시며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루치아 수녀님은 파티마 성모님이 약속하신 러시아의 회개는 동유럽과 북한을 포함한 모든 공산권을 말한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나는 파티마 성모님이 반드시 북한의 회개를 도와줄 것으로 믿습니다.”

     

     

     

     

    통일기원 남양 성모마리아 대성당

     

    남양성모성지는 우리나라의 평화통일을 위하여 끊임없이 묵주기도를 바치는 로사리오의 성모성지입니다.

    평화를 위한 기도의 땅, 남양에 통일을 기원하는 많은 이들의 기도와 희생을 모아 성모마리아 대성당을 건립하고자 합니다.

     

     

    마리오 보타

     

    스위스의 세계적인 건축가 마리오 보타가 프랑스 파리의 에브리대성당을 설계할 때,

    파리의 문화부장관이 이런 예술 작품은 모두가 나서서 지어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자산입니다.”라고 말했고, 그래서 에브리 대성당은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지방자치단체, 기업, 교회, 시민이 힘을 합쳐서 지은 성당이 되었다고 합니다.

    마리오 보타가 설계하는 남양 성모마리아 대성당또한 훌륭한 문화자산이 될 것이라 믿으며,

    특별히 우리나라의 평화 통일에 대한 염원이 담겨있는 대성당인 만큼

    종교나 종파를 초월하여 모든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함께 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벽돌

     

    통일기원 남양 성모마리아 대성당의 주재료는 붉은 벽돌입니다.

    대성당 건립에 29cm × 5cm × 9cm 크기의 벽돌 80만장이 필요합니다.

    그 한 장 한 장의 벽돌을 통해 평화통일에 대한 관심과 의지를 모으고자 합니다.

    통일은 한 사람이라도 더 관심을 가지고 간절히 바랄 때 비로서 이루어 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천주교 남양순교성지

     

     

    2017 파티마의 성모 발현 100주년

    "세상에 평화가 오도록 매일 묵주기도를 바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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