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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 러시아공사관과 정동공원
    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17. 5. 18. 05:30

    구 러시아공사관과 정동공원

     

     

    아관파천(俄館播遷)의 현장, 구 러시아공사관

     

    아관파천(俄館播遷)의 아관(俄館)은 아라사(俄羅斯:유럽 대륙의 동부에서 시베리아에 걸쳐 있는 나라) 공사관,

    즉 러시아 공사관을 일컫는 말이다.

    파천(播遷)이란 임금이 도성을 떠나 난리를 피신해 갔다는 뜻이다.

     

    임진왜란 당시 선조가 의주로 피신할 때도 파천이라고 불렀다.

    따라서 아관파천이란 임금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옮겨간 것을 뜻한다.

    1895년 일제가 경복궁에서 명성 황후를 무참히 살해한 뒤, 친일 내각을 구성하였고,

    고종은 신변의 위협을 느끼며 살았다.

    당시 조선 전역에서 일본에 저항하기 위해 의병이 일어나 항일운동을 전개하고 있었던 때였다.
    항일 의병이 전개되면서 조선에서 세력 확장을 꾀하던 러시아는 이 틈을 이용하여

    친러파와 러시아 공사는 고종의 안전을 보장하겠다며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길 것을 권유했다.

    이에 고종은 왕세자(순종)와 함께 궁궐을 몰래 빠져나와 러시아 공사관으로 숨어 들어갔다.(아관파천). 

    아관파천으로 친일 내각은 무너지고 친러 내각이 들어섰다.

    고종이 1년이나 외국 공관에 머무는 동안 나라를 제대로 통치하지 못했고,

    이 틈을 타 우리나라의 철도 부설권, 광산 채굴권, 항만 사용권 등이

    일본을 비롯하여 러시아, 영국, 프랑스, 독일, 미국 등 여러 나라가 이권을 침탈하였다.

    아관파천으로 러시아 공사관에 있던 고종은 약 1년여 만인 1876년에 경운궁(덕수궁)으로 돌아왔다.

    고종은 환구단에서 황제 즉위식을 올리고, 나라 이름을 대한 제국으로 바꾸었다.(대한제국수립선포, 1897).

     

     

     

     

     

     

    공사관은  3층으로 이루어진 탑 형태이다.

    1층은 정면과 양쪽에 아치형 출입문을 두고 있으며, 3층은 주위를 감시하기 위한 망루 형식이다.

    사방에 창을 2개씩 두고 있다.

     

     

     

     

     

     

    구 러시아공사관(러시아公使館) 사적 제253


    이 건물은 스위스계 러시아인 사바틴(A.I.Seredin Sabatine)의 설계로

    1890(고종27)에 준공된 르네상스풍의 벽돌조 건물이다.

    러시아공사관 본관으로 사용되었는데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대부분 파괴되어

    3층 전망탑과 일부 기초 유구, 지하통로 등이 남아 있다.

    러시아 공사관은 경운궁과 서양 각국 공관, 교회, 학교 등이 집중한 정동의 제일 높은 언덕에 자리 잡았으며

    본관과 호위대 막사 등이 있었다.

    본관은 H자형 평면을 하였고 남..서측 3면에 아치열주가 있는 아케이드를 두어 3면 모두가 정면성을 지니고 있었으며,

    또한 각각의 면에 출입문이 나 있고, 북동 측 끝 모서리에 탑이 위치하고 있었다.

    공사관 초입에 4면이 아치로 개방된 개선문 형식의 정문이 있었다.

    러시아공사관은 명성황후(明成皇后, 1851~1895)가 시해된 후

    18962월부터 1년간 고종이 세자(순종)과 함께 머물렀던 곳이다.

    이 기간 동안 친일파 내각이 무너지고 친러시아적인 내각이 조직되었으며,

    고종은 독립문 건설, 각종 도시 개조사업, 파고다공원 등 근대국가 건설의 근간을 마련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구 러시아공사관은 구한말 명성황후 시해 사건 이후 위협을 느낀 고종이 잠시 피신을 했던 곳으로

    역사적인 사건인 아관파천(俄館播遷)의 현장으로 구한말의 힘겨운 역사를 말해주는 건물이다.

    냉전체제하에서 비어 있었던 건물터로 1990년대 초 한.러 수교시 러시아에서 돌려달라는 이야기도 있었다고 한다.

    현재 러시아대사관은 배재고등학교가 이전한 자리 일부에 새로운 건물을 신축하여 사용하고 있다.

     

     

     

    구 러시아공사관 앞에는 한국 가톨릭의 첫 번째 수도원인 정동수녀원이 있었다.

    지금은 정동공원으로 조성해 놓았다.

     

     

     

     

     

     

     

     

    생명의 나무 (강희덕)

     

     

     

     

    한국 가톨릭수도원 첫 자리, 정동수도원

     

    1887726일 조선교구장 블랑(Marie Jean Gustave Blanc, 한국명 백규삼, 1844 ~ 1890.2.21) 주교는

    버림받은 고아들과 가난한 환자들을 돌보기 위해 프랑스의 샬트르성바오로수녀회에 수녀 파견을 요청하였으며,

    188722일 조선교회의 부르심에 응답한 네 명의 수녀들(프랑스인 자카리아 수녀(1대 원장)

    에스텔 수녀, 중국인(수련수녀) 프란치스카 수녀와 비르지니 수녀)이 제물포(濟物浦)에 도착하였다.

    723일 서울에 온 수녀들이 러시아공사관(俄館, 아관)과 담을 맞대고 있던

    정동 한옥에 머묾으로 순교의 땅 조선에 가톨릭 수도공동체가 시작되었다.

    729일에는 순교자의 딸들인 다섯 명의 지원자(김해겸 마리아, 김순이 마리아,

    김복우지 마리아, 박황월 글라라, 심발바라)들이 입회하여 수도생활을 시작하였으며,

    수녀들은 같은 해 97일 종현(鐘峴, 명동)으로 자리를 옮겨 지금에 이른다.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한 성바오로의 수녀들은 오늘도 복음의 은총을 이웃과 나누는 사랑의 여정을 계속하고 있다.

     

    200897일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한국 설립 120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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