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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하의사 상(趙明河義士 像)국내 나들이/동상(銅像),흉상(胸像),비(碑), 2017. 6. 2. 19:30
조명하의사 상(趙明河義士 像)
조명하 의사(趙明河 義士)
함안조씨(咸安趙氏) 황해도(黃海道) 송화인(松禾人)
조의사(趙義士)는 1928년 5월 14일 일본왕(日本王) 히로이토(裕仁, 유인)의 장인(丈人)
구니노미야(久邇宮,구이궁) 육군대장(陸軍大將)을 타이완(台灣, 대만) 타이중(台中, 태중)에서
독검(毒劍)으로 자격(刺擊) 처단(處斷) 망국(亡國)의 한(恨)을 풀고
그해 10월 10일 24세의 꽃다운 나이로 일제형장(日帝刑場)의 이슬로 사라졌다.
대한(大韓)의 젊은이여!
조국(祖國)을 굳게 지켜라
조국(祖國)을 잃으면 자유(自由)와 정의(正義) 평화(平和)를 어디서 찾을 것인가
나라 없는 백성(百姓)은 오직 노예(奴隸)의 곤욕(困辱)과 방황(彷徨)만이 있을 뿐이다.
대만(台灣) 대북(台北) 일제옥중(日帝獄中) 조명하(趙明河)
1928년 10월
조명하의사 상(趙明河義士 像)
국가보훈처지정 현충시설 관리번호 13-1-34
관리자 : 사단법인 조명하의사 기념사업회, 서울대공원
대한민국 독립운동의 표상인 조명하의사는 1905년 황해도 송하에서 태어났다.
조명하는 효제충의 가문인 아버지 조용우의 차남으로 출생하여
풍천마을에서 학문을 수학하고 심신을 단련하며 성장했다.
1926년 신천군청 서기로 근무하였고, 학문을 익히려 일본으로 건너가 학업을 계속 하던 중
독립운동의 큰 뜻을 품고, 대만(臺灣)을 거쳐 상하이(上海)에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1927년 대만으로 건너가 차농장 기사로 근무하며 독검술을 연마하였다.
드디어 1928년 5월 14일 대만 타이중시(台中市)에 일본군 검열관으로 온
일본왕 히로이토(裕仁)의 장인인 구니노미야 구니히코(久邇宮邦彦) 육군대장을
독검(毒劍)으로 주살하는 의거를 성공적으로 결행하였다.
일경에 체포된 후 1928년 10월 10일 24세 청년 조명하는 대만 타이페이(臺北) 형무소에서 사형, 순국하였다.
1963년 3월 1일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1978년 대만 타이페이시 한인학교에 동상을 건립하였고,
1988년 5월 14일 의거 60주년 기념으로 이곳에 동상을 건립하였다.
“나는 조국의 독립을 보지 못하고 죽는 것이 한스러울 뿐이다.
저 세상에 가서도 독립운동을 계속하리라”라는 유언을 남겼다.
경기도 과천시 대공원광장로 서울대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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