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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한양도성 순성길(혜화문~낙산공원)
    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17. 6. 19. 21:47

    서울 한양도성 순성길(혜화문~낙산공원)

     

     

     

     

     

     

     

     

     

     

     

     

     

     

     

     

     

     

     

     

     

     

     

     

     

     

     

     

     

     

     

     

     

     

     

     

     

     

     

     

     

     

     

     

     

    서울 한양도성 순성길

     

    한양도성을 따라 걷는 순성길은 서울의 내사산(백악산, 낙산, 남산, 인왕산)을 잇고,

    사대문(숭례문, 흥인지문, 숙정문, 돈의문 터)를 포함한 다양한 문화유산을 지나는

    총 18.6km의 역사와 문화 체험의 길이다.

     

     

     

    서울 한양도성(서울 漢陽都城, Fortress Wall of Seoul) - 사적 제10

     

    한양도성은 조선왕조 도읍지인 한성부의 경계를 표시하고 그 권위를 드러내며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축조된 성이다.

    1396(태조 5)에 백악(북악산), 낙타(낙산), 목멱(남산), 인왕의 내사산(內四山)

    능선을 따라 축조한 이후 여러 차례 개축하였다.

    평균 높이 약 5~8m, 전체 길이 약 18.6km에 이르며, 현존하는 전 세계의 도성 중

    가장 오랜기간(1396~1910, 514년간) 도성 기능을 수행하였다.

    개보수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한양도성의 성벽은 군데군데 성돌에 새겨진 글자들과

    시기별로 다른 돌의 모양을 통해 축성시기와 축성기술의 발달 과정을 알 수 있다.

    한양도성은 사대문(흥인지문, 돈의문, 숭례문, 숙정문)과 사소문(혜화문, 소의문, 광희문, 창의문)을 두었다.

    이 중 돈의문과 소의문은 멸실되었다.

    또한 도성 밖으로 물길을 잇기 위해 흥인지문 주변에 오간수문과 이간수문을 두었다.

    한양도성에는 우리 역사 전체가 아로새겨져 있다.

    삼국시대 이래 우리 민족이 발전시켜 온 축성기법과 성곽구조를 계승하였으며,

    조선시대 성벽 축조 기술의 변천, 발전 과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축조 당시의 모습은 물론이고 후에 보수하고 개축한 모습까지 간직하고 있어

    성벽을 둘러보며 역사의 자취를 살펴볼 수 있는 특별한 문화유산이다.

    태조 5(1396) 음력 19일부터 228일까지 49일 간, 이어서 86일부터 924일까지 49일 간,

    모두 98일 동안 전국 백성 1974백여 명을 동원하여 쌓았다.

    전체 공사구간(59,500)600척씩 97구간으로 나누고

    각 구간을 천자문 순서에 따라 이름 붙인 뒤 군현(郡縣)별로 할당하였다.

    태조 때 처음 축성할 당시 평지는 토성으로 산지는 석성으로 쌓았으나,

    세종 때 개축하면서 흙으로 쌓은 구간도 석성으로 바꾸었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성벽 일부가 무너져 숙종 때 대대적으로 보수, 개축하였으며

    이후에도 여러 차례 정비하였다.

    성을 쌓을 때에는 일부 성돌에 공사에 관한 기록을 남겼는데, 태조, 세종 때에는 구간명, 담당 군현명 등을 새겼고

    숙종 이후에는 감독관, 책임기술자, 날짜 등을 명기하여 책임 소재를 밝혔다.

    한양도성은 근대화 과정에서 옛 모습을 상당 부분 잃어버렸다.

    1899년 도성 안팎을 연결하는 전차가 개통되면서 먼저 성문이 제 기능을 잃었고

    1907년 일본 왕세자 방문시 길을 넓히기 위해 숭례문 좌우 성벽이 철거되었다.

    이어 1908년에는 평지의 성벽 대부분이 헐렸다. 성문도 온전하지 못하였다.

    소의문은 1914년에 헐렸으며, 돈의문은 1915년에 건축 자재로 매각되었다.

    광희문의 문루는 1915년에 붕괴되었고, 혜화문은 1928년에 문루가, 1938년에 성문과 성벽 일부가 헐렸다.

    일제는 1925년 남산 조선신궁과 흥인지문 옆 경성운동장을 지을 때에도 주변 성벽을 헐어버리고 성돌을 석재로 썼다.

    민간에서도 성벽에 인접하여 집을 지으며 성벽을 훼손하였다.

    해방 이후에도 도로, 주택, 공공건물, 학교 등을 지으면서 성벽이 훼손되는 일이 되풀이 되었다.

    한양도성의 중건은 19681·21 사태 직후 숙정문 주변에서 시작되었고 1974년부터 전 구간으로 확장되었다.

    한양도성은 2014년 현재 전체 구간의 70%, 12.8km(2014년 기준) 구간이

    남아있거나 중건되었다. 숙정문, 광희문, 혜화문을 중건하였지만 광희문과

    혜화문은 부득이하게 원래 자리가 아닌 곳에 세워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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