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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난설헌 허초희상(蘭雪軒 許楚姬像)
    국내 나들이/동상(銅像),흉상(胸像),비(碑), 2017. 6. 27. 05:30

    난설헌 허초희상(蘭雪軒 許楚姬像)

     

    허난설헌(許蘭雪軒, 1563~1589)

     

    강원도 강릉에서 초당(草堂) 허엽(許曄)과 그의 부인 강릉김씨(江陵金氏) 김광철(金光轍)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초희(楚姬) 다른 이름은 옥혜(玉惠)이다.

    호는 난설헌(蘭雪軒), 난설재(蘭雪齋)이고, 자는 경번(景樊)이다. 본관은 양천(陽川)이다.

    이달(李達)에게 시와 학문을 배워 천재적인 시재(詩才)를 발휘하였다.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여성 문인의 한사람으로

    300여 수의 시와 기타 산문, 수필 등을 남겼으며 213수 정도가 현재 전한다.

    또한 서예와 그림에도 능했다.

     

    1577(선조 10) 김성립(金誠立)과 결혼했으나 결혼 생활은 원만하지 못했다고 한다.

    자신의 불행한 처지를 시작으로 달래어 섬세한 필치와 독특한 감상을 노래했으며,

    애상적 시풍의 특유의 시 세계를 이룩하였다.

    남편 김성립과 시댁과의 불화와 자녀의 죽음과 유산 등 연이은 불행을 겪으면서도 많은 작품을 남겼다.

    1608년년(선조 41) 남동생 허균(許筠)이 문집을 명나라에서 출간함으로써 알려졌다.

    사후 남편 김성립이 이조참판에 추증되면서 그 역시 정부인(貞夫人)으로 추증되었다.

     

    사후, 작품 일부를 동생 허균이 명나라 시인 주지번(朱之蕃)에게 주어

    중국에서 시집 난설헌집이 간행되어 격찬을 받았고,

    1711년 분다이야 지로(文台屋次郎)에 의해 일본에서도 간행, 애송되어

    당대의 세계적인 여성 시인으로써 명성을 떨치게 되었다.

    1612년에는 취사원창이란 이름으로 미간행 시집이 발간되기도 했다.

    당대에는 고부갈등과 남편과의 불화 등으로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으나,

    사후 조선 후기에 이르러 그녀의 시들의 작품성과 예술성을 인정받게 되었다.

     

    홍길동전의 저자로 유명한 허균(許筠)은 바로 그의 동생이며,

    오라버니인 허성(許筬)과 허봉(許篈) 또한 뛰어난 문장가이니 가히 당대의 명문이라 할 것이다.

    ()과 함께 4자녀는 강릉의 5문장가로 불리어지고 있다. [허씨 5문장 : 허엽, 허성, 허봉, 난설헌, 허균]

    어의 허준은 그의 11촌 숙부뻘이었다.

     

    특히 난설헌(蘭雪軒)은 규수시인(閨秀詩人)으로 이름이 나서

    황진이(黃眞伊신사임당(申師任堂)과 함께 '삼대여류시인(三大女流詩人)'으로 꼽히기도 한다.

     

    강원도 강릉시 초당동 허균.허난설헌기념공원

     

     

     

     

     

     

     

     

     

    哭子(곡자) 아들딸 여의고서

     

    허난설헌

    去年喪愛女(거년상애녀) 지난해 귀여운 딸애 여의고

    今年喪愛子(금년상애자) 올해는 사랑스런 아들 잃다니

    哀哀廣陵土(애애광릉토) 서러워라 서러워라 광릉땅이여

    雙墳相對起(쌍분상대기) 두 무덤 나란히 앞에 있구나

    蕭蕭白楊風(소소백양풍) 사시나무 가지엔 쓸쓸한 바람

    鬼火明松楸(귀화명송추) 도깨비불 무덤에 어리비치네

    紙錢招汝魂(지전초여혼) 소지 올려 너희들 넋을 부르며

    玄酒奠汝丘(현주전여구) 무덤에 냉수를 부어놓으니

    應知第兄魂(응지제형혼) 알고말고 너희 넋이야

    夜夜相追遊(야야상추유) 밤마다 서로서로 얼려놀 테지

    縱有腹中孩(종유복중해) 아무리 아해를 가졌다 한들

    安可冀長成(안가기장성) 이 또한 잘 자라길 바라겠는가

    浪吟黃臺詞(랑음황대사) 부질없이 황대사 읊조리며서

    血泣悲呑聲(혈읍비탄성) 애끊는 피눈물에 목이 메인다.

     

    <해설>

    어린 아들과 딸을 잃어버린 어머니의 말할 수 없는 슬픔을 그려낸 한시이다.

    작가 허난설헌이 자식들을 떠나보낸 후 피눈물 나는 슬픔을 노래하고 있는 작품으로,

    젊어서 딸과 아들을 연이어 잃고, 자식의 무덤 앞에서 그 슬픔을 곡진하게 노래하고 있는 한시이다.

    시에서 광릉 땅이 슬프다고 한 이유는 죽은 두 아이의 무덤이 광릉에 있기 때문이다.

    무덤 앞에서 종이돈을 태우며 명복을 빌고, 두 아이가 혼백만이라도 꼭 붙어 다니며 이승에서 다하지 못한 정을

    나누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하는 화자의 모습에서 극한의 슬픔과 안타까운 모정을 읽을 수 있다.

     

     

     

    허균, 허난설헌 기념공원 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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