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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설악산 장수대(雪嶽山 將帥臺)
    국내 나들이/관광지(觀光地)로 2017. 6. 28. 05:30

    설악산 장수대(雪嶽山 將帥臺)

     

    6.25 한국정쟁 때 설악 전투의 대승을 기념하고

    인근의 대승폭포,옥녀탕, 가마탕, 한계산성, 하늘벽을 찾아드는 관광객들의 휴식처로 세워진 한식 건물은

    규모로 보나 건물의 우수성으로 보아 근래에 보기드문 훌륭한 산장(48)이다.

    더욱이 기암괴석과 낙락장송이 우거진 속에 위치하고 있다.

    국립공원 장수대 분소 맞은편에 6.25때 설악산을 수복한 국군 용사들이 지은 장수대라 불리우는 이 한식집은

    요즈음 새로 지은 커다란 휴게소와는 대조를 이루며 자연과의 조화가 어떤 것인가를 느끼게 한다.

    3금강이라 부를 정도로 아름다운 설악산을 배경으로 자리잡은 이 산장은

    1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사철을 통하여 이곳을 찾는 이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장수대란 이곳에서 6.25의 치열한 전투가 있었던 그 옛날을 회상하며 전몰장병들의 명복을 기원하는 뜻에서 명명한 것이며

    3군단장인 오덕준 장군의 후의로 설악산의 개발을 위하여 건립되었다.

    * 건립 - 1959101

     

    강원도 인제군 북면 설악로 4200

     

     

     

     

    장수대 표석(將帥臺 標石)

     

     

     

    설악산

     

    노산 이은상

     

    설악산이여!
    이 밤만 지나면
    나는 당신을 떠나야 합니다.
    당신의 품속을 벗어나
    티끌 세상으로 가야합니다.
    마지막 애닯은 한말씀
    애원과 기도를 드립니다.

     

    설악산이여!
    내가 여기와
    흐르는 물 마셔 피가 되었고
    푸성귀 먹어 살과 뼈 되고
    향기론 바람 내 호흡되어
    이제는 내가 당신이요
    당신이 나인걸 믿고 갑니다.

     

    설악산이여!
    내가 사는 동안
    무슨 슬픔이 또 있으리이오.

    아픔이 있고, 외로움이 있고
    통분할 일이 겹칠적이면
    언제나 사랑의 세례를 받으려
    당신만을 찾으리이다.

     

     

     

     

     

     

     

     

     

     

     

     

     

    안타깝게도 오랜 가뭄으로 계곡물이 졸졸졸 흐르고 있다.

     

     

     

     

     

     

     

     

     

     

    폭포수 없는 대승폭포(大勝瀑布)

     

    설악산(雪嶽山) 대승폭포(大勝瀑布)는 금강산(金剛山)의 구룡폭포(九龍瀑布),

    황해북도 개성의 박연폭포(朴淵瀑布)와 함께 우리나라 3대폭포의 하나로 여겨지고 있다.

    높이 88m, 면적 약 60나 되는 이 폭포는 본래 한계폭포(寒溪瀑布)라고 불리었으나

    옛날에 부모를 일찍 여읜 대승(大勝)이라는 총각이 어느 날 절벽에 동아줄을 매달고 내려가서

    석이(바위에서 피는 버섯)를 따고 있었는데, 갑자기 죽은 그의 어머니가 그의 이름을

    다급하게 부르는 소리에 놀라 올라가보니, 지네가 동아줄을 쏠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그가 목숨을 건진 뒤로 이 폭포는 대승폭포로 불리게 되었다고 하며,

    이 폭포의 물소리를 들어보면 대승아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듯 들린다고 한다.

    내설악에서는 폭포의 왕자라 불리울 만큼 물줄기가 장엄하다.

    폭포를 포함한 주변 일대는 신라시대 때 경순왕의 피난지였고 폭포 맞은편에는

    조선시대 때 풍류가이면서 명필가였던 양사언의 글씨라 하는 '구천은하(九天銀河)'가 새겨진 반석이 있다.

    설악산국립공원 장수대탐방지원센터에서 대승령(大勝嶺) 방향으로 0.9km 지점에 있으며,

    50분 정도 소요되는 거리에 있다.

     

     

     

     

     

     

     

     

     

    장수대(將帥臺)

     

     

     

     

     

     

     

     

     

    한계(寒溪) 지명이야기

     

     

     

     

    한계산(寒溪山)

     

    분류 : 자연지명()

    시대 : 고려~조선시대

    고려사에 현재의 한계산성을 가르키는 한계성(寒溪城)이라는 명칭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이미 한계산이라는 지명이 있었으며, 조선 초기부터 설악산과 대별되는 큰 산으로 인식하여 왔다.

    한계산은 현재의 안산(鞍山)과 그 일대의 산봉을 의미하는 명칭이며,

    역사적으로 한계동, 한계천, 한계성, 한계동봉산 등 주변 지명의 유래가 된 토착지명이다.

     

     

     

    한계령(寒溪嶺)

     

    분류 : 자연지명(고개)

    시대 : 조선시대

    한계령이라는 지명은 19세기 제작한 김정호의 동여도(東輿圖)’에 한계산과 함께 표기되어 있다.

    오색령과는 거리를 두고 북쪽에 표기되어 있어 별도의 고개지명으로 인식. 전승되어 왔다.

     

     

     

    한계(寒溪)

     

    분류 : 인문지명(유적:관방)

    시대 : 고려~조선시대

    한계산성은 고려사(조휘열전, 고종 46)’한계성(寒溪城)’이라는 명칭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대몽항전에서 드물게 승전한 중세시기의 대표적인 산성이다.

    조선 초기에 저술된 세종실록지리지에 한계산석성(寒溪山石城)’이라고 하여

    이 산성이 한계산에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으며, 상성(上城)과 하성(下城)이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한계동봉산(寒溪洞封山)

     

    분류 : 인문지명(마을과 산)

    시대 : 조선시대

    한계리 마을주변 산림에서 황장목의 벌목을 금지하였던 봉산(封山)의 위치를 기록한 지명으로 한계금산(寒溪禁山)이라고도 하였다.

    조선 중기 한계리 지역의 황장목을 보호하였던 국가제도와 마을이름의 역사를 담고 있다.

    봉산의 위치와 범위를 음각한 황장금산(黃腸禁山) 바위가 한계리 치마골에 위치하고 있다.

     

     

     

    한계사(寒溪寺)

     

    분류 : 인문지명(유적:절터)

    시대 : 통일신라~조선시대

    한계사는 647(진덕여왕 원년)에 창건된 사찰 이름으로 한계라는 지명을 사용한 오래된 사찰이다.

    한계리마을 명칭의 유구성과 한계산, 설악산 일대에 일찍이 불교가 전래된 역사를 밝혀주는 지명이다.

     

     

     

    한계천(寒溪川)

     

    분류 : 자연지면(하천)

    시대 : 통일신라~

    한계천이라는 명칭은 각종 지리지와 고지도에 표기되어 있는 오랜 하천 이름으로 한계산에서 유래된 지명으로 여겨진다.

    한계사(寒溪寺), 한계성(寒溪城), 한계동(寒溪洞) 등의 지명이 모두 이에서 비롯되었으며,

    한계리 마을의 역사와 주변 지리를 알려주는 유구한 자연지명이다.

     

     

     

    한계폭포(寒溪瀑布)

     

    분류 : 자연지명(폭포)

    시대 : 조선시대

    한계폭포는 현재 대승폭포의 본래 이름으로, 적어도 17세기 이전부터 불린 명칭이다.

    조선시대 명승을 유람하고 쓴 많은 여행기에 나타나며, 조선 후기까지 그 명칭이 주로 사용되었다.

    조선시대 고지도, 지리지 등에 대승폭포(大乘瀑布)”, “대승폭(大乘瀑)”, “대폭(大瀑)” 등으로 쓰이기도 하였는데,

    조선시대 한계산과 설악산을 서로 다른 명산(名山)으로 인식하였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지명이다.

     

     

     

    한계령풀(Leontice microrhyncha)

     

    분류 : 식물명(식생)

    시대 : .현대

    한계령풀은 한계령 능선에서 처음으로 발견되어 붙여진 이름으로

    해발 800m 이상의 높은산에서 자라며 강원도에서는 메감자라고 부른다.

    한계령이라는 자연지명에서 유래된 식물 이름으로 자연지명을 식물의 학명으로 전승하고 있는 사례이다.

     

     

     

    寒溪山(한계산) / 구사맹(具思孟)

     

    雅性愛泉石(아성애천석) 우아한 성품이 자연을 좋아하여

    一癖老未化(일벽노미화) 일종의 벽이 되어 늙어도 고쳐지지 않네

    寒溪聞未窺(한계문미규) 한계산 아직 구경 못했다는 말을 들었는지

    每被游僧詑(매피유승이) 매번 유람하는 스님들의 자랑만 들었다네

    忽驅使者車(홀구사자차) 갑자기 하인에게 수레 몰게 하여

    東來天所借(동래천소차) 동쪽으로 하늘이 만들어 준 산에 왔다네

    雨雪阻賞心(우설조상심) 비와 눈이 감상하고픈 마음 막을까 싶어

    輾轉淹館舍(전전엄관사) 뒤척이면서 객사에 머물렀지

    朝起見晴暾(조기견청돈) 아침에 일어나 맑게 떠 오른 해를 보고

    飄然仍促駕(표연잉촉가) 표연히 수레를 재촉한다네

    入洞已忘憂(입동이망우) 골짜기에 들어서자마자 근심이 사라지니

    泠泠碧流瀉(영영벽류사) 시원스레 푸른 물줄기 흘러내린다

    南峯斵立壯(남봉착입장) 남쪽 봉우리 깎아지른 듯 웅장하게 서 있어

    詭怪眞可訝(궤괴진가아) 기궤한 모습 참으로 놀라워라

    旣抵古寺基(기저고사기) 옛 절터에 도착하여

    帟幕征鞍缷(역막정안사) 장막치고 말안장 푼다

    酒飯解飢渴(주반해기갈) 술과 음식이 배고픔과 갈증을 풀어주고

    談笑偷小暇(담소투소가) 담소 나누느라 겨를이 없다

    籃輿煩白足(람여번백족) 가마타고 스님들 발을 힘들게 하여

    直上岩硤罅(직상암협하) 곧바로 갈라진 바위틈으로 올라간다

    絶險固難杖(절험고난장) 험난함은 진실로 형용하기 어렵거니와

    石墮尤堪怕(석타우감파) 돌이 떨어질까 더욱 두렵구나

    遂陟歡喜巓(수척환희전) 드디어 환희령 정상에 오르니

    坐無草可藉(좌무초가자) 깔고 앉을 만한 풀조차 없다네

    扶杖立斯須(부장입사수) 지팡이에 기대 잠시동안 서서

    騁目窮高下(빙목궁고하) 산의 위아래를 모두 바라본다네

    峕崒幾疊巒(시줄기첩만) 가파르게 솟아있는 몇 겹의 산봉우리

     

     

     

    馳逐或迎迓(치축혹영아) 내달리듯 혹은 마주해주는 듯

    挺拔揷蒼穹(정발삽창궁) 뽑아서 푸른 하늘에 세워 놓아

    未嘗屈腰胲(미상굴요해) 일찍이 허리 굽힌 적 없다네

    褒鄂整冠劒(포악정관검) 褒公(포공)卾公(악공)이 관과 검을 가지런히 하고

    彷彿聞叱吒(방불문질타) 꾸짓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陰崖常凜凜(음애상늠름) 그늘진 벼랑은 항상 서늘한데

    白雲留朱夏(백운유주하) 흰 구름은 무더운 여름에 머물러있다네

    森爽不可駐(삼상불가주) 삼엄하고 서늘하여 머물 수가 없는데

    漸降如噉蔗(점강여담자) 점점 내려가니 사탕수수 씹는 것 같다네

    千丈展蒼壁(천장전창벽) 천 길 높게 펼쳐져 있는 푸른 절벽에

    倒掛飛泉射(도괘비천사) 물줄기가 거꾸로 매달려 날듯이 쏟아진다

    匡廬與朴淵(광려여박연) 여산폭포와 박연폭포가

    唐突論聲價(당돌론성가) 당돌하게 명성을 논하더니

    所恨久旱餘(소한구한여) 아쉬운 것은 가뭄이 오래되어

    未見長虹跨(미견장홍과) 길게 걸리는 무지개 보지 못한 것이라네

    暮投上乘庵(모투상승암) 날 저물어 상승암에 투숙하니

    林端絶啞啞(임단절아아) 숲속 끝 외진 곳에 새 울음소리

    金堂照素秋(금당조소추) 금당은 서늘한 가을 빛 비치고

    玉燈輟長夜(옥등철장야) 옥등은 긴긴 밤 내내 빛난다

    上雲有遺墟(상운유유허) 상운에 옛 터가 남아 있으니

    雨髡曾所架(우곤증소가) 우곤이 일찍이 세운 곳이라지

    惑世焉能久(혹세언능구) 세상사 혹한 마음 어찌 오래 가겠는가?

    掃盪不少假(소탕불소가) 쓸고 씻어 조금의 거짓도 없다네

    嚴程輟窮搜(엄정철궁수) 빠듯한 일정이라 샅샅이 가보지 못하니

    來去寧免乍(래거영면사) 오고감에 어찌 잠깐이라도 면하랴

    亦足慰平生(역족위평생) 또한 나의 평생 위로할 만하니

    且向山靈謝(차향산영사) 산을 향해 신령께 감사드리리

    緬懷金剛秀(면회금강수) 멀리 금강산의 빼어남 떠 올리니

    玆山合居亞(자산합거아) 이 산도 버금가는 정도는 충분히 되리

    五嶽尊岱宗(오악존대종) 오악 가운데 대종(太山)을 높이고

    其次數嵩某(기차수숭모) 그 다음은 숭산을 자주 거론한다네

    縱未敵純王(종미적순왕) 비록 순수한 왕도를 만나지는 못하더라도

    猶能作偏覇(유능작편패) 오히려 아쉬운대로 패도를 이룰 수는 있겠지

     

     

     

    구사맹(具思孟, 1531~1604)

     

    호는 팔곡(八谷). 조선 중기의 문신.

    유희춘(柳希春), 이황(李滉) 등에게 배웠다. 왕의 인척이면서 청렴하다는 평을 받았다.

    구사맹은 소문으로만 듣던 설악산을 탐방한 감격을 노래하면서 금강산에 버금가는 승경을 장엄하게 노래하고 있다.

     

     

     

    寒溪瀑 三百六十七言(한계폭포 367) / 李裕元(이유원)

     

    天下有名廬山瀑(천하유명여산폭) 천하에 여산폭포 유명하나니

    長川遙掛三千尺(장천요괘삼천척) 긴 물줄기 아득하게 삼천 척으로 걸려있다지.

    膾灸古今人皆誦(회구고금인개송) 옛날과 지금 사람들 입에 오르내려 모두 읊조리는데

    靑蓮仙子先我獲(청련선자선아획) 이백이 나보다 먼저 읊어버렸다네.

    我乃尋瀑入雪嶽(아내심폭입설악) 내가 이에 폭포 찾아 설악산 들어오니

    如饞如飢山水癖(여참여기산수벽) 탐욕부리 듯 굶주린 듯한 산수벽 때문.

    水聲遠聞十里路(수성원문십리로) 물소리 멀리 십리 떨어진 길에서도 들리는데

    東有一溪洞天僻(동유일계동천벽) 동쪽에 냇물 하나 신선골짜기 한 편에 있다네.

    詩人吟咏餘幾篇(시인음영여기편) 시인들이 읊조린 것이 몇 편 남아 있고

    先輩品題留舊蹟(선배품제류구적) 선인들 읊은 시가 옛 유적으로 남아 있다네.

    僂僂匐匐窮日力(루루복복궁일력) 허리 숙이고 기어서 종일토록 올라가는데

    攀藤架枝又附壁(반등가지우부벽) 등나무 가지 잡거나 또 벽에 붙어서.

    暫歇叢林按喘息(잠헐총림안천식) 잠시 숲속에서 쉬며 거친 숨을 고르고

    暗想遊筇閱疇昔(암상유공열주석) 지난날 유람했던 일을 머릿속에 그려 본다네.

    朴淵尊嚴三釜穩(박연존엄삼부온) 박연폭포의 높은 바위, 삼부연의 안온함

    隱注吊詭首陽脊(은주적궤수양척) 몰래 가서 수양산 등성이를 조문하듯 하였지.

    邊山含包威鳳懸(변산함포위봉현) 변산엔 위엄 있는 봉황을 머금듯 매달려 있고

    白雲杳邈搜勝臺(백운묘막수승대) 백운산엔 아득하게 있는 수승대.

    最是蓬萊九龍淵(최시봉래구룡연) 최고는 봉래산 구룡연이니

    對峙寒溪誰是伯(대치한계수시백) 한계폭포와 마주 하면 어느 것이 뛰어날까?

    九龍可畏寒溪愛(구룡가외한계애) 구룡연은 위압감을 느끼고 한계는 사랑스러우니

    共是白頭派一脉(공시백두파일맥) 모두 백두대간의 한 맥()이라네.

    鐵嶺關嶺支幹延(철령관령지간연) 철령과 대관령 줄기 길게 이어져 있는데

    霜嶽雪嶽門戶闢(상악설악문호벽) 상악과 설악산이 문처럼 열려 있다네.

    衆瀑羅列八隅間(중폭나열팔우간) 여러 폭포들 사방에 늘어서 있어

    繄我壯觀歲年積(예아장관세년적) 내가 장관을 구경하는데 몇 년이 걸렸다네.

     

     

     

    今日來坐大勝峰(금일래좌대승봉) 오늘에야 와서 대승령 봉우리에 앉으니

    山之黼黻水弘璧(산지보불수홍벽) 뒤로 펼쳐진 산, 커다란 옥 같은 물들.

    往事蒼茫何必究(왕사창망하필구) 지난 일 아득하니 반드시 찾을 필요 있을까

    竟成留約我願適(경성류약아원적) 마침내 오래된 내 소원 이루었으니.

    撩空匹羅光捲舒(요공필라광권서) 하늘에 솟아 있는 넝쿨엔 햇빛 비치고

    射日虹霓氣蒼赤(사일홍예기창적) 무지개에 햇빛 비쳐 푸르고도 붉도다.

    輕輕素花風吹絮(경경소화풍취서) 살랑살랑 핀 흰 꽃엔 바람이 불어 솜처럼 날리고

    薄薄流影雲觸石(박박류영운촉석) 가벼이 흐르는 시내 그림자 구름은 바위에 닿아 있다네.

    我欲抽毫描寫之(아욕추호묘사지) 내가 붓을 들고 그것을 묘사해보니

    不似是似自合格(부사시사자합격) 비슷한 듯, 비슷하지 않은 듯 모두 들어 맞다네.

    寶珠通明千劫幻(보주통명천겁환) 진귀한 구슬을 품은 것처럼 맑게 흐르는 천겁의 신기함

    錦衣璀燦萬疊襞(금의최찬만첩벽) 비단 옷처럼 찬란하게 빛나는 만 겹의 주름.

    此身疑在岷彭會(차신의재민팽회) 내 몸이 민산과 팽려가 만나는 곳에 있는 듯한데

    廬山之外東國亦(여산지외동국역) 여산 이외에 우리나라에도 또한 이런 곳이 있구나.

    偶得半日浮生閒(우득반일부생한) 부질없는 인생에서 우연히 반나절이나마 올 수 있었으니

    浪淘千古英䧺惜(랑도천고영) 천고에 걸쳐 물결치는 걸 영웅은 애석해 한다네.

    黃花將近落我帽(황화장근락아모) 국화는 근처에서 피어 내 모자 위로 떨어지고

    綠苔幾回斑我屐(녹태기회반아극) 푸른 이끼는 몇 번이나 내 신발을 얼룩지게 했던가?

    我鄕亦有紫芝洞(아향역유자지동) 내 고향 또한 자지동에 있으니

    橫石縮水洽丈百(횡석축수흡장백) 비껴 있는 돌과 웅크린 물이 백 길은 충분히 될 듯.

    几案淸音日夜送(궤안청음일야송) 책상에서 맑은 소리 밤낮으로 들리는데

    憫來無時引大白(민래무시인대백) 아쉬워라, 때때로 큰 술잔 기울이지 못함이여.

    君不見(군불견) 그대는 보지 못하였나.

    妙香內院落來水(묘향내원락래수) 묘향산 내원암에 떨어지는 물

    石竇崒崒人嘖嘖(석두줄줄인책책) 험한 돌구멍 사이로 시끄러운 사람들 소리.

    名山宿債尙未了(명산숙채상미료) 명산과 맺었던 인연 아직 갚지 못했으니

    何時復作關西客(하시부작관서객) 어느 때나 다시 관서 쪽으로 유람갈 수 있으려나

     

     

     

    이유원(李裕元, 1814~1888)

     

    호는 귤산(橘山), 조선의 마지막 법전 대전회통 편찬의 책임자를 지냈으며,

    19세기 중반 인천항 개항을 주장하여 수구파의 비판을 받기도 했으며, 전권대신으로 제물포조약에 서명을 하기도 했다.

    뛰어난 문장과 방대한 독서를 바탕으로 임하필기(林下筆記)”를 저술하였다.

    그의 작품 한계폭포는 장편시로, 우리나라 여러 지역의 명승과 비교하면서 대승폭포의 아름다움을 노래하였다.

     

     

     

    14세의 소녀가 남장을 하고 홑몸으로 설악산을 오르다.

     

    조선 말기의 여류시인인 금원(錦園) 김씨(金氏, 1817~미상)는 강원도 원주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병을 자주 앓아 부모가 글을 배우도록 하였는데, 시문을 잘 지었을 뿐만 아니라 경전과 역사에도 능통했다.

    27세 때는 시문으로 명성을 떨쳐서 여자 사마천(閨秀 司馬子長, 규수사마자장)이라는 이름을 얻기도 하였다.

    그녀는 평생 남자로 태어나지 못한 것을 한탄하였는데,

    1830(순조 30) 314세 때 남자로 변장을 하고 금강산을 비롯한 관동팔경과 설악산을 여행하였다.

    또한 1845년에는 의주부윤으로 부임하는 남편 김덕희(金德喜)를 따라 서도지방(황해도와 평안도)을 유람하였다.

    이후 1850년 그녀는 충청도, 금강산 및 관동팔경, 황해도 및 평안도, 한양일대를 두루 유람하면서

    보고 느긴 것을 호동서락기(湖東西洛記)로 기록하였다.

    금원 김씨는 금강산과 관동팔경을 두루 유람하고도 미련이 남아 인제의 설악산을 찾았다고 하였다.

    그녀는 대승폭포와 수렴동의 경관을 활달하고 호방한 필치로 묘사하였는데,

    특히 대승폭포를 읊은 시에서는 중국의 여산(廬山)폭포보다 낫다고 찬탄하였다.

     

    千峯突兀䅤天餘(천봉돌올집천여) 천봉 우뚝 서 하늘 찌르는데

    輕霧初敍畵不如(경무초서화불여) 가벼운 안개 걷히니 그림도 그만 못하리

    好是雪岳奇絶處(호시설악기절처) 좋구나. 설악산의 기이한 절경이여

    大乘瀑㳍勝庶廬(대승폭포승서여) 대승폭포가 여러 여산폭포보다 낫네

     

     

     

     

    寒溪瀑布 贈玉上人(한계폭포 증옥상인) / 이명한(李明漢)

     

    어두침침했던 장맛비 그쳐

    파란 하늘에 새로운 햇살 펼쳐진다

    폭포는 옛날보다 더 흰 빛으로 쏟아지고

    단풍잎은 처음 붉은 빛 띠어 아름다워라

    나그네 모두 신선인 듯하고

    산은 봉래산인가 의심스럽다

    일년간 공무에 시달려있다가

    애써 숲속 절간에서 잠든다.

     

     

     

    이명한(李明漢, 1595~1645)

     

    호는 백주(白洲)로 당대를 대표하는 문장가이다.

    남한산성에서의 항쟁이 끝난 뒤 척화파로 지목되어 심양에 억류되기도 했고, 소현세자를 모시고 오기도 했다.

    그는 옥상인이라는 스님에게 주는 시에서 한계폭포(대승폭포)

    단풍의 선연한 색채의 대비를 통해 설악산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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