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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남산 봉수대 봉수의식
    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17. 9. 10. 05:30

    서울 남산 봉수대 봉수의식

     

    봉수(烽燧)는 국가 방어체계의 원거리 통신수단 중에 전근대의 기술적 수준에 있어서

    가장 원시적이면서 매우 우수한 통신수단의 하나였다.

    봉수는 봉(:횃불)과 수(:연기)로 이루어졌으며,

    ()은 야간에 횃불을 피워 의사를 전달하는 형태이고,

    ()는 낮에 여기를 피워 의사를 전달하는 통신수단이다.
    서울 남산(당시는 목멱산)봉수대는 전략적으로 가장 중요한 지점에 있는 봉수대다.

    한양 도성에 바로 상황을 보고하는 최종 봉수대이기 때문이다.

    왕에게 전국의 상황을 종합 보고하는 역할을 한 것이다.
    원래 남산에는 동쪽에서부터 서쪽으로 5개소의 봉수대가 있어,

    여기에서 전국 각지에서 오는 5개의 기관선로 봉수의 결과를 받았다.

    하지만 현재 그 5개소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현재 남산봉수대는 그 가운데 1개소를 복원한 것이다.

    이것도 본래 봉수대 터만 남아 있을 뿐 당시의 형태를 알 수 없었다.

    수원 화성의 봉돈을 참고로 최근 복원한 것이다.

     

     

     

    목멱산 봉수대터(木覓山 烽燧台址) - 서울특별시기념물 제14

     

    목멱산 봉수대터(木覓山 烽燧台址)는 조선 태조 3(1394)에 도읍을 한양으로 옮긴 뒤 설치하여,

    갑오경장 다음해까지 약 500년간 사용되어 왔다.

    서울에 있다고 하여 경봉수(京烽燧)라고도 불렸었는데, 전국의 봉수가 집결되었던 곳이다.

    봉수제도는 신호체계에 따라 연기나 불을 피워서 변방의 긴급한 사정을 중앙까지 전달하여 알리며,

    해당 지역의 주민들에게도 알려 빨리 대처하도록 하는 일종의 통신수단이다.

    멀리 바라보기 좋은 높은 산봉우리에 봉수대를 설치하여 불을 피워서

    낮에는 연기, 밤에는 불빛으로 신호를 알아볼 수 있도록 하였다.

    평상시에는 1, 적이 나타나면 2, 적이 경계에 접근하면 3, 경계를 침범하면 4,

    경계에서 아군과 전투를 벌이면 5개의 불을 올리도록 하였다.

    전국 각지에서 오는 봉수는 남산에서 집결하였고,

    남산 봉수대는 제1봉수대부터 제5봉수대까지 다섯 곳의 봉수대가 있었다.

    1봉수대는 함경도-강원도-양주 아차산, 2봉수대는 경상도-충청도-광주 천림산,

    3봉수대는 평안도 강계-황해도-한성 무악 동봉, 4봉수대는 평안도 의주-황해도 해안-한성 무악 서봉,

    5봉수대는 전라도-충청도-양천 개화산에 이르는 봉수를 받았다.

    이 곳은 1993년에 김정호의 청구도등의 관련 자료를 참고해서 남산의 다섯 개 봉수대 중 하나를 복원한 것이다.

    목멱산 봉수대터1993920일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14호로 지정, 관리하고 있다.

     

    서울특별시 중구 예장동 8 남산공원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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