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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왕릉전시관(朝鮮王陵展示館)
    국내 나들이/전시관(展示館) 2017. 10. 2. 04:30

    조선왕릉전시관(朝鮮王陵展示館)

     

     

     

     

    세계가 주목한 조선왕릉

     

    조선왕릉은 519년 동안 27대에 걸쳐 조선을 통치한 왕과 왕비의 무덤이다.

    20096월 조선왕릉 42기 중에 북한에 있는 2기를 제외한 40기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 되었다.

    유교를 통치 이념으로 삼았던 조선왕조는 왕릉 조성과 관리에 효와 예를 갖추어 정성을 다하였다.

    왕릉을 조성할 때에는 풍수사상에 따라 최고의 명당을 선정하고,

    최소한의 시설을 설치하여 주변 자연 경관과 잘 어우러지도록 하였다.

    왕릉 조성과 관련된 모든 절차와 이후 관리 실태는 상세한 기록으로 남겨

    후대에 모범으로 삼으면서 왕릉관리에 만전을 기하였다.

    현재까지도 조선왕릉에서는 매년 산릉제례를 행하면서 역사적 전통을 잇고 있다.

    500년 이상 이어진 한 왕조의 왕릉들이 거의 훼손 없이 온전히 남아 있는 예는 세계적으로 조선왕릉이 유일하다.

    조선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조선왕릉은 왕을 기리는 공간으로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면서

    오늘날까지 우리 가까이에서 살아 숨쉬는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조선왕릉(朝鮮王陵)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조선왕릉'은 조선시대 왕과 왕비의 능(40)으로

    우리의 전통문화를 담은 독특한 건축양식과 아름다운 자연이 어우러진 신성한 공간이며,

    지금까지도 이 곳에서 제례가 이어져 오는 살아 있는 문화유산으로 2009630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장렬왕후 빈전도감의궤(莊烈王后 殯殿都監儀軌)

    조선 숙종 14(1688), 프랑스 국립도서관

     

    인조 비 장렬왕후(16241688)가 돌아가신 후 빈전에서 행하였던 의례 절차를 정리한 의궤이다.

    어람용으로 제작하여 붉은 줄로 테두리 선을 넣었고 고급 종이를 사용하여 정성껏 제작하였다.

     

     

     

    순조인릉 산릉도감의궤(純祖仁陵 山陵都監儀軌)

    조선 헌종 1(1835),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183411월부터 18354월까지 순조 인릉의 조성 절차와 과정을 기록한 의궤이며 상하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산릉도감의궤 하권에는 왕릉의 제작과정과 석인상, 장명등 등 도설이 함께 그려져 있다.

     

     

     

    조선의 국장(國葬)

     

    왕이 승하하면 왕실 법도에 따라 장례를 치르고 왕릉에 모신다.

    왕과 왕비의 장례인 국장은 왕실의 주요 의례인 오례(五禮) 중에서 흉례(凶禮)에 속하며 최고의 예를 갖추어 치러졌다.

    조정에서는 임시 관청인 도감(都監)을 설치하여 국장 업무를 진행하였다.

    왕의 관(재궁,梓宮)을 왕릉으로 모시기까지 약 5개월의 기간이 소요되며,

    삼년상을 치른 후 왕의 신주를 종묘에 모시면 국장 절차가 모두 끝나게 된다.

    국장 종료 후에는 의궤(儀軌)를 편찬하여 진행 절차를 기록으로 남기고 후대에 모본으로 삼게 하였다.

     

     

     

    왕릉(王陵)의 부장품(副葬品)

     

    조선왕릉에는 사후에도 살아계실 때와 같은 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왕이 실제로 착용했던

    의복(복완, 服玩)과 생활용품을 축소하여 만든 명기(明器) 등의 부장품(副葬品)을 함께 묻는다.

    부장품은 조선왕릉의 내부가 석실(石室)인 경우에는 석실 내부와 편방(便房),

    회격(灰隔)경우에는 회격 앞 퇴광(退壙)에 넣는다.

    조선왕릉 부장품은 문헌을 통해 그 내용을 파악할 수 있다.

    '국장도감의궤(國葬都監儀軌)'를 통해서는 피장자에 따른 세부적인 차이를 파악할 수 있으며,

    조선 초기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1474)'와 조선 후기 '국조상례보편(國朝喪禮補編, 1758)'을 통해

    시대에 따른 부장품 항목과 수량의 변화를 살펴볼 수 있다.

    복완은 가장 격식을 갖춘 예복인 면류관(冕旒冠)과 면복(冕服) 등으로 구성된다.

    명기는 크게 왕이 일상생활에서 사용했던 식기, 제기, 악기, 무기로 구성된다.

    조선 초기 명기의 항목이었던 목인(木人)은 순장 풍습의 흔적이었는데,

    영조의 명으로 18세기 중반부터 부장품 목록에서 사라지게 된다.

     

     

     

    정조 국장도감의궤(正祖 國葬都監儀軌)

    조선 순조 즉위년(1800),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1800628일 정조가 승하한 후 국장 과정을 기록한 의궤이다.

    의궤에는 반차도를 비롯하여 국장에 쓰인 가마류, 부장품 등 각종 기물을 그린 채색 도설이 상세히 실려 있다.

     

     

     

    조선왕릉의 관리

     

    조선왕조는 왕릉 조성 이후에도 매년 제례(祭禮)를 올리고 예를 다하여 정성껏 관리하였다.

    효를 중시하였던 조선의 왕은 자주 능에 행차하여 참배를 드리고, 능 관리에 만전을 기하였다.

    왕릉 주변에는 선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제례를 지내는 사찰(寺刹)을 두었고, 왕릉의 관리는 연륜있는 자에게 맡겼다.

    능 관리자는 능지(陵誌)제낙하여 관리상의 주요 사항을 기록으로 남겼는데,

    이 기록을 보면 왕릉 관리에 얼마나 많은 인력과 공을 들였는지 알 수 있다.

    왕릉의 관리에는 많은 비용도 소요되었기 때문에 각 왕릉마다 약 80(80)의 땅이 주어졌다.

    조선왕릉은 왕의 직접적인 관심과 철저한 능 관리로 현재까지도 원형을 잘 보존할 수 있었고,

    왕릉에서의 산릉제례가 조선시대부터 지금까지 6백년 넘게 이어지면서 조선왕조 무형문화의 전통을 잇고 있다.

     

     

    조선왕릉의 관리자

    조선왕릉의 관리자(능관, 陵官)는 주로 종9품 참봉(參奉) 2명으로 구성되었다.

    '속대전(續大典, 1746)'에 의하면 관리자 2명 중 1명 종5(), 7품 직장(直長),

    8품 별검(別檢) 등으로 때에 따라 교체하여 임명할 수도 있었다.

    능관은 연륜이 있는 자를 선발하였는데, 왕릉의 관리와 제례를 지내는 책임이 막중하였기 때문이다.

    능관은 왕릉 내 재실에 거주하며 왕과 왕비의 제례와 능을 살피고 능역 내의 수목 관리 등을 담당하였다.

    수복(守僕)과 수호군(守護軍)을 잘 보살피는 것도 능관의 중요한 역할이었다.

     

     

     

     

     

     

     

     

     

     

     

     

     

     

     

     

     

     

     

     

     

     

    태릉 조선왕릉전시관(泰陵 朝鮮王陵展示館)

     

    조선왕릉전시관은 연면적 999, 지상 1층 규모로 조선왕릉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돕고

    역사적 가치를 국민에게 알릴 목적으로 2007년 착공, 200912월 개관하였다.

    이 전시관은 조선왕실에서 국왕이 승하하는 순간부터 왕릉에 모셔지기까지 국장 절차, 왕릉에 담긴 역사와 사상,

    산릉제례를 포함한 왕릉의 관리 등을 패널, 모형, 영상 등 다양한 전시기법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조선시대 국장은 왕이 승하하는 순간부터 시작되며, 주요 절차를 보면, 도감의 설치 빈전에 안치 왕의 즉위

    시호를 올림 명당 선정 왕릉 조성 왕릉으로 모심 삼년상 후 종묘에 모시는 순서로 진행된다.

    왕릉으로 모시기까지 5개월의 기간이 소요되며 종묘에 모시기까지는 전체적으로 3년의 기간이 소요된다.

    국장이 종료된 후에는 의궤를 편찬하여 진행절차를 기록으로 남긴다.

     

    서울특별시 노원구 화랑로 727 (공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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