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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달문 상량문 현판 탑본(八達門 上樑文 懸板 搨本)국내 나들이/박물관(博物館) 2017. 10. 7. 23:01
팔달문 상량문 현판 탑본(八達門 上樑文 懸板 搨本)
1794년(정조 18) 팔달문 상량문 현판 탑본이다.
팔달문은 1794년 2월 28일 터파기를 시작하여 그해 8월 25일 상량식을 거행하였다.
이명식(李命植)이 짓고 이면응(李冕膺)이 쓴 상량문이다.
상량은 전통 건물의 축조과정 가운데 종도리를 얹는 과정으로 곧 건물의 완공을 의미한다.
한옥은 ‘아침에 입주하고, 저녁에 상량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조립이 빠르게 진행된다.
팔달문의 경우도 기둥을 세우고 채 한 달이 되지 않아 상량식을 거행하였다.
팔달문은 정조가 팔달산의 이름을 따서 사통팔달의 의미를 담아 지은 것으로
축성 당시의 원형이 잘 남아 있어 1964년 보물 제402호로 지정되었다.
화성남문 상량문(華城南門 上樑文)
엎드려 생각하건대
중요한 국방의 요새지에 새로운 고을을 설치하니
높은 담장이 우둑하니 서 있구나
큰 규모를 층층 누각에 헤아리니
서로 마주보는 화려한 집이 세워졌네
어찌 한갖 사방에 서울의 아름다움만 보겠는가
참으로 구중궁궐 임금이 선친의 무덤 받드는 정성이라네
이 화성 한 구역은
옛부터 경기 지방의 웅장한 진(鎭)이었고
서울과 100리도 안 되는 가까운 거리라
하늘이 이러한 형편을 만들어 놓았네
국방의 요새지로서 삼도의 교차지점에 있고
땅은 둘러싸고 막는 위치에 속해 있네
육천이나 되는 병마를 거느리니
오히려 외도감(外都監)이라 호칭이 전하고
구십 개의 마을에 백성과 재물이 매우 풍부하니
한나라 우부풍(右扶風)의 중요함에 뒤지지 않는구나
아버님 무덤을 옮겨 모셔서
갑절이나 고향을 공경하는 마음 느끼게 따르니
다시는 도호부(都護府)의 옛 관아가 아니라네
해마다 임금께서 수레 타고 오시니
드디어 팔다리같은 중요한 고을로 새로운 규모를 만들었네
여기 흐르는 물과 높은 언덕은
무성히 한나라 고조가 풍읍을 옮기는 효도 같고
이 땅을 가르고 정리하니
아아! 주나라 무왕이 낙읍을 세우기를 도모함과 같구나
집들이 아주 편안하니
어느덧 임금께서 행차를 머무르시고
백성들이 강보에 싸서오고 수레를 타고오니
어느덧 큰 도회지를 이루었구나
돈과 곡식과 군사가 없는 곳이 없고
선비와 농사꾼, 쟁이와 장사치기 반드시 여기에 있네
거리를 따라 가게가 벌려 서 있으니
북적이던 제나라 시장에 사람들의 어깨 비비듯하고
부(賦)를 바치고 경서를 이야기하니
노나라의 거문고 소리가 귀에 가득하구나.
태어나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니
거듭해서 노적을 쌓고 창고에 쌓아두네
일의 면모가 더욱 높아지니
어찌 성을 쌓고 연못을 파지 않겠는가
남쪽 이웃과 북쪽 거리에는마땅히 높이 대접하는 방법을 다해야 하고
서로 연결되는 방법을 철처히 써야 하고
큰 도회와 이름난 성에는스스로 막아 호위하는 장소가 있네.
이에 주역의 모든 사물을 기르는 모양을 본받고
드디어 옛 사람의 비오기 전 집을 고치는 계책을 따른다네
임금의 수레가 머물러서 이 언덕을 살펴보고
토규(土圭)를 가지고 땅의 경계를 정하고
호부(虎符)를 주어 일을 감독하게 하니
삼태기와 삽을 들고 일하러 나간다네
구름을 떠받칠 만한 나무는 무진장 많은데
땅이 어찌 보배를 아끼겠으며
역사북(歷史鼓)이 일하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니
사람들 스스로 바람처럼 달려드네
일군들 부지런함을 본받으니
혹시나 귀신의 힘을 빌렸음인가?
목수들 재주는 교묘함을 다하니
갑자기 무지개의 모양이 생겨나는구나.
북문의 누각의 잠깐동안 완성되더니
남쪽 성의 기둥이 이미 높이 솟아오르네
문설주와 문지방이 법도에 꼭 맞으니
북쪽과 남쪽의 방위가 틀리지 않고
일이 이루어지는 기약이 가까우니
밤 늦게까지 걱정하던 임금의 마음이 조금 놓이네.
안면도에서 재목을 가져오니
배와 수레가 날마다 편안히 실어오는 것이 보이고
길이 높은 산에도 나 있으니
황홀하여라! 임금께서 성묘하러 오시는 것 같구나
남자와 여자들 떼로 몰려 기뻐하며 이야기하고
나그네들 모여들어 새로운 광경 구경하네
무쇠같은 성과 끓는 연못같은 이곳
오래오래 가이없는 일을 보호하고
푸른 기와와 붉은 서까래는
길이길이 뽑히지 않는 기틀을 정하였네
멀리 쌀밥 먹고 고기 먹는 마을 끝까지 바라보니
따로 이것은 아름다운 경치라
산이 두르고 내가 흐르는 곳에 유서 깊은 집들이 있어
여기서 새로이 사는 것을 즐거워하네
비록 보호하고 다스림은 강화와 개성에 견줄 만하지만
한가지 중요한 것은 팔도에 으뜸이라
참으로 해자와 참호를 준비하여
백성들이 사는 곳을 아름답게 하지 않는다면
어찌 무덤을 지키는 법도가 높다고
임금께 마음 속으로 좋아하겠는가?
공사 비용은 전부 임금이 사사로이 지출했으니
진실로 임금의 밝은 덕을 베풀었고
부역은 농사 때를 빼앗지 않았으니
모두 선대의 백성들을 감싸주는 아름다운 덕이라네
감히 상량의 노래를 본받아
일꾼들의 노고를 위로하고자 한다.
어여차 대들보를 동쪽으로 던져라
용이 사는 연못에 밝은 해가 먼저 붉게 떠 오르니
무성하게 상서로움이 한 구역에 조화하니
해마다 비바람 순조로워 풍년이 드네
어여차 대들보를 서쪽으로 던져라
팔달산 높이와 가지런한데
높은 밭 밭가는 소 왔다갔다 하니
중정(中亭)과 화곡(畵鵠)이 평평하게 낮구나
어여차 대들보를 남쪽으로 던져라
버드냇가 봄물은 쪽빛처럼 푸르른데
무덤과 사당이 아주 가까이 있으니
아름다운 기운이 아침 저녁 비치네
어여차 대들보를 북쪽으로 던져라
붉은 구름 곧게 서울을 가리키니
노인들은 임금님의 행차를 기쁘게 맞이하고
봉인(封人)은 임금의 덕 축복하길 청하네
어여차 대들보를 위쪽으로 던져라
높이 솟아 경기 지방의 장막이 되어
여러 사람 마음이 오랫동안 성쌓기를 생각하여
거리의 노랫소리가 나무꾼의 노래소리에 화답하네
어여차 대들보를 아래로 던져라
풍년 들어 누런 곡식 들에 가득한데
문으로 가르침도 삼사(三舍)를 써서 거문고 소리 드높고
군대의 위용은 백개의 부대에 활과 말이라네.
엎드려 바라건대 상량한 뒤에
땅의 신령이 몰래 붙들어 주고
하늘의 아르다움 많이 이르게 하소서
산과 시내의 안과 밖은
큰 나라 당겨서 빛이 있게 하고
기둥과 서까래는 둥그렇게 높이 솟아
오래오래 내려가서 견고하게 되소서
정조 18년 갑인년(1794) 8월 25일에 부국승록대부 행판중추부사 신 이명식(李命植)은 교서를 받들어 이 글을 짓고,가선대부 개성부유수 겸 관리사 신 이면응(李冕膺)은 교서를 받들어 이 글을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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