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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화 고려궁지 외규장각(江華 高麗宮址 外奎章閣)
    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17. 12. 5. 19:08

    강화 고려궁지 외규장각(江華 高麗宮址 外奎章閣)

     

     

     

     

     

     

    휘경원천봉도감의궤(徽慶園遷奉都監儀軌)와 경모궁의궤(景慕宮儀軌)

     

     

     

    종묘의궤속록(宗廟儀軌續錄)

     

     

     

    의궤의 뜻과 자료적 가치

     

    의궤란 의식과 궤범을 합한 말로 의식의 모범이 되는 책이라는 뜻이다.

    국가나 왕실에서 거행한 주요행사를 기록과 그림으로 남긴 보고서로 국가행사의 시행착오를 줄일 목적으로 간행됐으며,

    행사에 동원된 인력은 물론, 각종 물품, 재료 등이 그림과 함께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왕실의 주요 행사를 의궤의 형태로 남긴 것은 조선시대에만 보이는 독특한 전통으로서

    서양은 물론이고 같은 문화권인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이와 같은 형식의 기록문화는 발견되지 않는다.

    의궤는 조선왕조의 종합적인 역사자료로서 경제, 정치, 미술, 음악 등 여러 분야의 연구에 이용되며,

    20076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어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의궤의 제작과 보관

     

    의궤 편찬은 도감(都監)이라는 임시기구에서 주관하였다. 조선 초기부터 제작됐으나,

    현재 남아 있는 것은 모두 조선 후기의 것이다.

    대체로 5~9부 정도 제작되었는데, 임금의 열람을 위해 고급 재료로 화려하게 만든 어람용 1부가 포함되었다.

    정조대부터 왕실의 잔치나 기념행사에 관한 의궤는 활자본으로 제작되면서 보다 많은 양이 보급되었다.

    당시 어람용 의궤는 대부분 강화도 외규장각에 보내졌으며,

    나머지는 관련 관서 및 사고에 분상하여 보관하였다.

     

    현재 의궤를 소장하고 있는 곳은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파리국립도서관, 일본 궁내청 등이며, 그 수는 약 630여종에 이른다.

     

     

    강화 외규장각 의궤 귀환일지

     

    186610월 병인양요 프랑스군 강화 외규장각 의궤 약탈

    1867년 프랑스 해군성 외규장각 도서를 현 프랑스 국립도서관으로 이관

    1975년 박병선 박사가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의궤 발견

    1991년 한국 외무부, 프랑스 외무성에 공식 반환요청

    1993년 프랑스 미테랑 대통령 반환 약속

    2003년 외교통상부 실사단, 파리 국립도서관 소장 외규장각 의궤 조사연구 발간

    2011년 한,불 협상대표간 협의문 서면

    20113월 국립중앙박물관, 프랑스도서관 약정 서명

    2011527일 외규장각 의궤 반환

     

     

     

    강화 외규장각 의궤 귀환

     

    강화 외규장각 의궤는 1975년 박병선 역사학자에 의해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이후 박병선 박사와 시민단체, 정부가 협력하여 의궤 반환운동을 추진하였고

    1993수빈휘경원원소도감의궤, 1822(순조 22)1권이 먼저 반환되었다.

    2010년 서울에서 개최된 G20정상회의 중 대한민국.프랑스 양국 정상의 합의가 체결되고

    후속 조치에 따라 외규장각 의궤가 돌아오게 되었다.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잠자고 있던 강화 외규장각 의궤 297권이 145년만에 모두 고국의 품으로 돌아온 것이다.

     

     

     

    프랑스군의 의궤 약탈

     

    병인양요 당시 강화도에 상륙했던 프랑스군은 조선군의 강렬한 저항에 부딪혀 퇴각하면서
    외규장각에 보관된 우리 문화의 보고에 약탈의 손길을 뻗었다.

    은괴 19상자와 함께 그들의 눈을 자극한 것은 채색 비단 장식에 선명한 그림이 들어있는 어람용 의궤였다.

    프랑스군은 퇴각하면서 의궤와 기타 자료를 약탈한 후 외규장각 건물을 불태워 버렸으며,

    이때 약탈해간 의궤는 현재 파리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밖에 프랑스군이 약탈해간 물품은 다음과 같다.

    가철된 큰 책 300, 가철된 작은 책 9, 흰색 나무상자에 들어 있는 작은 책 13,

    소책자 18, 한국 중국 일본 지도 1, 평면 천체도 1, 여러 가지 기록이 있는 족자 7,

    한문을 기입한 회색 대리석판 3, 구리로 된 돌 쩌귀와 백색의 연접된 대리석판이 들어있는 작은 상자 3,

    갑옷과 투구 3, 가면 1

     

     

     

    조선의 보물창고 외규장각

     

    외규장각은 1782년 정조 때 왕실과 관련된 서적을 특별히 보관할 목적으로

    강화부에 설치한 도서관으로, 왕립도서관인 규장각(奎章閣)의 부속 역할을 하였다.

    이곳을 외규장각또는 규장외각이라 이름한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며,

    이후 100여년간 조선후기 왕실문화의 보고 역할을 하였다.

     

    규장각은 국가 주요행사 기록을 담은 의궤 및 각종 어필, 지도, 문집 등

     조선후기 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들을 간행하고 이를 보존하였으며,

    외규장각에는 이중에서도 가치 있는 자료들이 보관되었다.

    특히 의궤 외에도 족보, 도장을 비롯한 왕실관련 문서가 다수 소장되어 있었다.

     

     

     

    외규장각(外奎章閣)

     

    외규장각은 조선 정조 때 왕실 관련서적을 보관할 목적으로 설치된 곳으로,

    특히 왕이 친히 열람하는 어람용 의궤를 보관하던 곳이다.

    어람용 의궤의 표지는 특별하게 비단을 사용하고, 종이는 고급 초주주(草住紙)를 사용하였으며,

    해서체(楷書體)로 정성들여 글씨를 쓴 다음 붉은선을 둘러 왕실의 위엄을 더하였다

    병인양요 때에도 외규장각에 보관중이던 은괴 19상자와 함께 프랑스군의 눈을 자극한 것도

    채색비단 표지에 선명한 그림으로 장식된 어람용 의궤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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