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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전 소대헌 호연재 고택(大田 小大軒·浩然齋 古宅) - 중요민속문화재 제290호
    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18. 3. 26. 22:00

    대전 소대헌 호연재 고택(大田 小大軒·浩然齋 古宅)

    - 중요민속문화재 제290호 -

     

    대전 소대헌·호연재 고택은 조선 후기 기호학파의 대표적인 학자인 동춘당 송준길(同春堂 宋浚吉, 1606~1672)

    둘째 손자인 송병하(宋炳,1646~1697)1674년 분가하여 건립한 고택으로서,

    송병하의 아들 소대헌 송요화(1682~1764)1714년 이축하였다.

    소대헌 송요화의 부인 호연재 김씨(1681~1722)

    17~18세기 여류문학을 대표하는 시인으로서 한시 134수를 남겼다.

    고택은 조선 중기 대전지역의 살림집을 이해할 수 있는 건축적 가치를 가지고 있으며,

    충청지역에서는 보기 드물게 큰 사랑채와 작은 사랑채를 동시에 갖추고 큰사랑채는 양통집이다.

    대청을 한쪽에 두는 방식이나 안채의 마루방과 툇마루 등이 전면뿐만 아니

    사방에 다양한 크기로 배치하는 양식은 지역적 특색을 나타낸다.

     

    대전광역시 대덕구 동춘당로 70 (송촌동)

     

     

     

     

     

     

    오숙재(寤宿齋, 寤宿) 현판

     

     

     

     

     

    송씨가묘(宋氏家廟)

     

     

     

     

     

    소대헌(小大軒) 현판

     

     

     

     

     

     

     

     

     

    금암(琴巖)

     

    금암 송목인(琴巖 宋夢寅)이 거문고를 연주했다고 전해지는 바위.

    금암의 글이라는 설과 동춘의 글이라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호연재김씨시비(浩然齋金氏詩碑)

     

    夜吟(야음)

    月沈千山靜(월침천산정) 달빛 잠기어 온 산이 고요한데
    泉暎數星澄(천영수성징) 샘에 비낀 별빛 맑은 밤
    竹葉風煙拂(죽엽풍연불) 안개바람 댓잎에 스치고
    梅花雨露凝(매화우로응) 비 이슬 매화에 엉긴다
    生涯三尺劍(생애삼척검) 삶이란 석자의 시린 칼인데
    心事一懸燈(심사일현등) 마음은 한 점 등불이어라
    調帳年光暮(조장연광모) 서러워라 한해는 또 저물거늘

    衰毛歲又增(쇠모세우증) 흰머리에 나이만 더하는구나

     

     

     

    호연재 김씨(浩然齋 金氏, 1681~1722)

     

    호연재 김씨는 조선 후기의 여류시인이자 안동김씨로 고성군수를 지낸 김성달의 넷째 딸이다.

    19세에 송준길의 증손인 소대헌(小大軒) 송요화(宋堯和)와 결혼하여

    28세에 아들 송익흠(宋益欽, 보은현감, 호는 오숙재)을 낳고, 딸을 낳았으며 4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호연재 김씨는 출가한 이래 지금의 대덕구 송촌동에 있는 소대헌 고가(小大軒 古家(송용억가옥: 민속자료 제2)에서 살아

    이 지역과 인연을 맺게 되었으며, 생활하는 틈틈이 한시를 지어 194편의 작품이 전해져오고 있다.

    호연재의 시작(詩作) 재능은 가통을 이어받은 것으로 그녀의 부친도 유고가 있으며, 서모(庶母) 또한 시문을 남겼다.

    아울러 형제들 간에도 시를 주고 받았음을 호연재시집에서 엿볼 수 있다.

    호연재의 선조인 김상용과 김상헌도 뛰어난 시작품을 남겼음을 생각할 때,

    그녀의 시에 대한 재능은 집안의 내력에 의해 배태되었음을 짐작케 한다.

    이러한 호연재의 시적 재능은 회덕의 명망있는 사족인 동춘당 후예와 혼약을 맺음으로써 결실을 보게된다.

    그녀는 조선 후기 사대부 여성이 지닌 절제된 감정과 사유를 시문에 담게 되는바, 이는 3책으로 필사되어 가전되었다.

    1책은 鰲頭追致(오두추치)라고 표지에 쓴 시집이고,

    또 다른 1책은浩然齋遺稿(호연재 유고)라 표제한 것이며, 1책은 自警篇(자경편)이라고 한 것이다.

    3책은 후손 송용억에 의해 원문 영인과 더불어 변역 출간된 호연재유고

    조선 후기 여류문학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새로운 발굴 자료로 떠오르고 있다.

    16세기 후반부터 19세기에 이르기까지 여류 문인들이 대체로 고르게 분포되어 있는 편인데,

    그 동안 호연재의 생존연대는 여류 문학사의 공백기를 채워주는 것으로,

    17세기에서 18세기로 넘어가는 여류 문학사의 맥을 형성한다.

     

     

     

    선기일감회득고언기가(先忌日感懷得古言寄家)

    아버지 기일에 감회하여 고언 체를 얻어 집에 부치노라

     

    莽莽故國遙(망망고국요) 망망히 고국이 멀었고
    天高白雲飛(천고백운비) 하늘이 높고 흰 구름이 나는도다.
    小女遠于歸(소녀원우귀) 이 아우 멀리 우귀하니
    一去消息稀(일거소식희) 한 번 가매 소식이 드물도다.
    孤村長夏日(고촌장하일) 외딴 마을 긴 여름날에
    寂寞掩荊扉(적막엄형비) 적막히 사립을 닫았도다.
    回首憶家鄕(회수억가향) 머리 돌려 고향을 생각하니
    先忌此裡經(선기차리경) 아버지 기일이 이 가운데 지나시는도다.
    轉覺餘生痛(전각여생통) 여생이 설운 줄 점점 개달으니
    難堪追慕情(난감추모정) 추모하는 정을 견디기 어렵도다.
    千懷哀願結(천회애원결) 일천 회포 애원히 맺혔고
    萬里愁恨長(만리수한장) 만리 수한이 길었도다.
    悲風吹切切(비풍취절절) 슬푼 바람이 불기를 절절히 하니
    令我益(령아익최상) 나로 하여금 더욱 마음 상하게 하는도다.
    欲作寄兄書(욕작기형서) 형에게 부치는 글을 지으려니
    一行淚一行(일행누일행) 한 줄 눈물에 또 한 줄이로다.

     

     

    孤鴻(고홍) 외로운 기러기라 

     

    何處孤鴻度我門(하처고홍도아문) 어느 곳 외로운 기러기 내 문을 지나는고

    數聲凄切怨離群(수성처절원리군) 두어 소리 처절하여 무리를 떠남을 원망하는도다

    寒窓獨宿思家客(한창독숙사가객) 차가운 창에 홀로 자며 집을 생각하는 사람이

    中夜無眠欲斷魂(중야무면욕단혼) 깊은 밤에 잠이 없어 혼이 끊어지려 하는도다

     

     

    自悔(자회) 스스로 뉘우치다

     

    맑은 밤이 초초히 오경에 사무치니

    반생에 끼친 허물 눈 속에 밝았도다

    성쇠는 힘쓴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선악은 성실함에 좌우되는도다

    말씀은 기틀만 갖추면 스스로 취하는 것이요

    덕은 괴로움을 못 참으면 뉘우침이 나는도다

    이제 늙어 이에 이르렀으나 행한 것이 없으니

    어느 낯으로 다른 때에 부형께 뵈오리오

     

     

    醉作(취작) 술에 취하여 짓노라

     

    醉後乾坤闊(취후건곤활) 취하고 나니 천지가 넓고
    開心萬事平(개심만사평) 마음을 여니 만사가 편안하도다
    悄然臥席上(초연와석상) 초연히 자리 위에 누웠으니
    唯樂暫忘情(유락잠망정) 즐겁기에 잠시 세상의 정 잊노라

     

     

    感春(감춘) 봄을 느끼도다

     

    달이 희니 일천 산이 고요하고

    꽃이 피니 일만 나무 향기롭도다

    봄 근심이 희미하여 취코자 하니

    어느 곳이 이 나의 시골이뇨

     

     

    自傷(자상) 스스로 슬퍼하노라

     

    아까워라, 이내 마음이여

    탕탕한 군자의 마음이로다

    표리에 하나도 감추는 게 없으니

    명월이 흉금에 비추었도다

    맑고 맑아 흐르는 물 같고

    좋고 좋아서 흰구름 같도다

    화려한 것을 좋아 아니하고

    뜻이 구름과 물 곁에 있도다

    세속 무리들과 더불어 합하지 않으니

    도리어 세상 사람들이 그르다 하도다

    스스로 규방 여인의 몸인 줄 설워하니

    창천은 가히 알지 못하리로다

    어찌하리오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

    다만 능히 각각 뜻을 지킬 뿐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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