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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여 정림사지 5층석탑과 석불좌상
    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18. 3. 30. 04:51

    부여 정림사지 5층석탑과 석불좌상

     

     

     

     

     

     

    부여 정림사지 5층석탑(扶餘 定林寺址 五層石塔) 국보 제9

     

    이 탑은 백제가 부여로 도읍을 옮긴 후 6세기 말에 세워진 석탑이다.

    정림사 절터 한가운데 자리한 오층석탑은 높이가 8.33m의 결코 작지 않는 탑으로

    탑신부에는 모서리마다 기둥을 세워 민흘림 기법을 적용해 상승감을 보여주는 등

    장중하면서도 부드럽고 육중하면서도 단아한 백제의 멋을 느낄 수 있는 백제석탑의 완성된 모습을 보여준다.

    신라군과 연합해 백제를 멸망시킨 당나라 장수 소정방의 백제를 정벌하고 세운 기념탑이란 글씨를 새겨놓아

    한동안 소정방이 세운 평제탑으로 잘못 알려지기도 했다.

     

     

     

     

     

     

     

     

     

     

    부여 정림사지 석불좌상(扶餘 定林寺址 石佛坐像) - 보물 제108


     이 불상은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작품이다.

    불에 타고 심하게 마모되어 대좌와 불상이 형체만 남아 있다.

    좁아진 어깨와 가슴으로 올라간 두 손의 표현으로 보아 진리를 나타내는 비로자나불상으로 짐작된다.

    머리와 갓은 후대에 복원한 것이다. 대좌는 비교적 잘 남아 있는데 단정하면서도 균형있는 조각솜씨를 엿볼 수 있다.

    석불이 있던 절은 6세기 중엽에 창건된 것이다.

    정림사는 이 절의 고려시대 이름인데 1028년에 만들어진 기와명문을 통하여 알 수 있다.

    고려초에 절을 다시 세울 때 백제시대의 강당자리를 금당으로 삼아 이 석불을 주존불로 모셨다.

    남원 만복사 대좌와 함께 11세기 고려 불상 양식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백제의 옛 사비성 부여 정림사 절터에 남아 있는 석조불상이다.

    이 불상은 고려시대 정림사를 크게 중건할 때 세워진 본존불로 추정되며,

    정림사가 고려시대에 다시 번창했던 것을 보여주고 있다.

    현재 불상이 위치하고 있는 곳은 정림사 강당이 있던 자리이다.

    강당터에서 정림사(定林寺)’라고 적힌 명문기와가 발견되었다.

    불상은 신체가 극심한 파괴와 마멸로 형체만 겨우 남아 있어 세부적인 양식과 수법을 알아보기 어렵다.

    가슴으로 올라간 왼손의 표현으로 볼 때 비로자나불을 형상화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머리와 보관은 후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심하게 손상된 불상에 비해 대좌(臺座)는 비교적 원형이 잘 남아 있다.

    상대.중대.하대로 이루어졌는데 세련된 조각수법을 보여주고 있다.

    상대는 연꽃이 활짝 핀 모양이며, 중대에는 각면에 큰직한 눈모양을 새겼다.

    하대에는 연꽃이 엎어진 모양과 안상을 중첩되게 표현했다.

     

     

     

     

     

     

     

     

     

     

     

     

     

     

     

    정림사지(定林寺址) - 사적 제301

     

    부여 정림사지는 백제사찰을 대표하는 중요한 유적 중 하나로

    백제가 부여로 도읍을 옮긴 사비시대(538~660)의 중심 사찰터이다.

    이 절터는 주요 건물인 중문, 석탑, 금당, 강당을 건축하고 주위에 회랑을 구획한 형태로

    주요 건물을 남북 일직선상에 배치한 전형적인 백제식 가람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건물의 기단은 기와를 사용하여 축조한 와적기단으로

    이 역시 백제의 독특한 건물 축조 방식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특징들은 고대 일본의 사찰에도 영향을 주었다.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정림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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