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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양계곡(華陽溪谷)의 제9경 파천(巴串)에서 피서를~~
    국내 나들이/계곡(溪谷)으로 2018. 7. 19. 04:30

    화양계곡(華陽溪谷)의 제9경 파천(巴串)에서 피서를~~























    화양계곡(華陽溪谷)의 제9경 파천(巴串)에서 피서를~~


    흰 반석이 펼쳐진 파천(巴串)’


    화양구곡의 마지막 명승지인 제9곡은 파천(巴串)’이다.

    편평하게 이어지던 오솔길은 학소대를 지나면서 점점 높아지며 길이 가파라지고 유람객들도 뜸해진다.

    오솔길에서 파천의 아름다움이 바로 보이는 것은 아니다.

    파천을 보려면 오솔길 아래쪽으로 난 산책길을 따라 내려가야 한다.

    파천은 계곡 전체에 희고 넓은 바위가 넓게 펼쳐져 있으며, 그 위로 흐르는 물결이 마치

    용의 비늘을 꿰어 놓은 것처럼 보여 파천이라 부른다.

    200평쯤 되는 널찍한 반석에서 신선들이 술잔을 나누었다는 전설이 있으며

    물과 모래와 반석과 녹음이 어우러져 사람들이 가장 즐겨 찾는 경승지이다.

    이곳이야 말로 화양계곡의 백미이며 숨겨진 계곡이라 할 수 있다.

     

    조선시대에 파천의 한자 표기는 파곡(葩谷), 巴谷, 파계(葩溪), 巴溪, 파곶(葩串), 파천(巴串) 등 다양하게 사용하였으나,

    공통으로 사용한 파()자는 화()자와 통한다. , 파는 꽃처럼 아름답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파곡이나 파계는 꽃처럼 아름다운 계곡이란 의미로,

    파곡은 꽃처럼 아름다운 계곡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자는 현재 으로 읽고 있는데, 지명에 쓰이는 자는 으로 읽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화양구곡 제9곡이 파천으로 불리어지든, ‘파곶으로 불리어지든, 이곳의 아름다움은 변함이 없다.

    꽃이 피는 봄날의 파천은 무릉도원 같고, 녹음이 우거진 여름의 파천은 시원스러움 그 자체이며,

    단풍으로 물든 가을날 찾는 파천은 마치 아름다운 그림 속에서 노니는 것 같다.

    잔설이 쌓인 겨울날의 파천은 마음속 깊은 데까지 어루만질 수 있는 온기를 느끼게 한다.

    참으로 아름답고 다시 찾고 또 찾고 싶은 곳이다.

    그런데 옛날 파천 계곡은 파곶산(巴串山)에서 흘러내린 물이 흐르는 계곡으로 알려져 왔다.

    노수진(盧守愼, 1515~1590)이 쓴 소재집(蘇齋集)”에 수록된 환희사(歡喜寺)’라는 제목의 한시 주석에는

    환희사는 속칭 파곶사(葩串寺)라 하는데, 파곶(葩串)은 실제 산의 이름이다라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조선후기에 작성된 청주읍지(淸州邑誌)”는 파곶산을 낙영산으로 보고 있다.

    그렇다면 파천은 파곶산(낙영산)에서 흘러내린 계곡으로 불리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그곳에는 파곶사라는 유명한 절이 있어 대곡 성운(1499~1579)이나

    퇴계 이황(1501~1570), 서애 유성룡(1542~1607)과 같은 저명한 인물들이 찾곤 하였다.

    이와 같이 꽃처럼 아름다운 파천 계곡이 지금과 같은 특정 장소로 불리어진 것은 우암 송시열 이후부터이다.

    특히 우암의 수제자 수암 권상하(1641~1721)가 화양구곡 각각의 이름을 짓고

    단암 민진원(1664~1736)의 글씨로 바위에 구곡의 이름을 새기면서,

    파천은 화양구곡의 제9곡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러면서 파천은 많은 선비들과 시인묵객, 관리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지금도 파천에는 이곳을 다녀간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바위에 새겨져 있다.

    1841년에 충청도관찰사로 부임한 김정균(金鼎均)은 계묘년 4월에 아들과 함께 파천을 찾았고,

    관찰사 원재명(元在明, 1763~1817)도 아들과 함께 숭정4 신미년 가을에 파천을 찾았다.

    그밖에 임금의 명을 받고 화양동에 내려온 이서, 관찰사 김려김광묵,

    절도사 정충달김익빈구병훈원세현 등도 파천을 찾아 바위에 이름을 새겨 놓았다.

    그들이 이름을 바위에 새긴 것은 이름 석자를 후대에 알리기 위함이 아니라,

    파천에서 느낀 아름다움을 영원히 잊지 않기 위함일 것이다.

    파천의 아름다움은 바위글씨로만 전해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많은 선비와 학자들이 파천을 찾은 뒤 느낀 바를 시로 지어 후대에 전하고 있다.

    그 중에 세 편의 시를 읊어보자.

     

     파천 - 임상주 -

    憶昔漢昭烈 옛날 유비의 행적을 생각하니

    都邑在西巴 그 도읍지가 서파에 있었다네.

    崢嶸彼劒閣 우뚝한 저 검각(劒閣)

    坦然成中華 의젓하게 중화를 이루었네.

     

    嗟玆一巴字 ! 이곳 파천과

    地名胡相似 지명이 어쩌면 서로 같은가?

    磷磷白石上 희끗희끗한 흰 돌 위로

    千載空流水 천년 세월 부질없이 물만 흐르네.

     

     파천 - 권진응 -

     八曲寬平眼忽開 팔곡이라, 넓적하고 평평하고 눈이 확 떠지고

     素磐千頃水縈洄 하얀 반석 널찍하며 물이 빙빙 도네.

     蒼苔細逕渾依舊 푸른 이끼가 오솔길에 의구한데

     尙想吟風詠月來 아직도 음풍영월하던 일 상상할 수 있네.

     

    파천 - 송흠학 -

    九曲心眸頓擴然 구곡이라, 마음과 눈이 갑자기 떠지는데

    長松白石鴻靑川 긴 소나무와 흰 돌이 맑은 시내에 펼쳐졌네.

    巴溪別是源頭水 파천 계곡이 특별히 발원의 머리가 되는 물인데

    宛在中央一洞天 완연히 화양동 중앙에 있네.

     

    이들 한시에서 느낄 수 있듯이 파천은 참으로 아름다운 곳이다.

    넓은 흰 반석 위에 앉아 있는 나는 신선과 다름없으며, 곧 무아지경에 빠진다.

    찾는 이가 많지 않아 더욱 좋다. 혼자 자연과 벗하면서 노닐기에는 더더욱 좋은 곳이다.

    신선도 같은 생각이리라. 우암 송시열은 화양동을 떠너기 직전 1686(숙종 12)에 파천에서 와서

    물은 청룡처럼 흐르고 사람은 푸른 벼랑으로 다닌다(水作靑龍去 人從翠壁行)” 라고 읊었다.

     

    파천이 좋은 것은 계곡이 있기 때문만도 아니다. 고즈넉한 오솔길로 이어지기에 더욱 좋다.

    파천에서 올라와 자연학습원으로 길을 잡으면, 어느 곳에서도 맛볼 수 없는 한적한 오솔길을 걸을 수 있다.

    파천부터 자연학습원에 이르는 구간은 오가는 사람이 거의 없고 차량도 다닐 수 없을 뿐 아니라,

    주변 경관이 빼어나다. 공기도 참 맑고 시원하다. 이곳을 걸으며 화양동에 서린 우암 송시열의 혼을 생각한다.

     

    http://cafe.daum.net/hwayangdongsarang 화양동을 사랑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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