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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보산 용화사 미륵불(七寶山 龍華寺 彌勒佛)수원사랑/문화재(文化財) 2018. 7. 30. 05:10
칠보산 용화사 미륵불(七寶山 龍華寺 彌勒佛)
칠보산 용화사 미륵불(七寶山 龍華寺 彌勒佛)
수원 칠보산에 있는 용화사 미륵불에 대해서는 여러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 미륵불이 언제 만들어졌는지는 전해진바 없으며 조선 중엽이거나 말엽쯤으로 추정될 뿐이다.
칠보산에 자그마한 마을이 있었다.
사람들은 산을 오르내리며 미륵골에 서 있는 미륵을 향해 합장을 하는 정도의 경의를 표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미륵의 받침돌에 작은 돌을 문지르면 잘못이 있는 사람은
그 돌이 거기에 들러붙고 죄가 없으면 돌이 붙지 않는다고 믿으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에 김실개라는 여자가 나타난다.
그의 꿈에 이곳에 가면 미륵불이 계시니 치성을 다하라는 선몽이 있어 이곳을 와보니 정말로 미륵불이 있었다 한다.
김실개는 미륵불 앞에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치성을 다했다.
대수롭지 않게 미륵을 대하던 마을 사람들은 실개의 지극 정성에 미륵의 영험함을 새삼 느끼게 되었고
이에 허름하게나마 움막을 지어줌으로써 그녀로 하여금 치성을 다하게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죽고 나자 마을의 유지들이 합심하여 절을 짓게 된다.
그러면서 미륵불을 보다 잘 모실 요량으로 미륵에 칠을 하게 되는데
미륵의 눈에 칠을 하던 이는 그 자리에서 눈이 멀었다 한다.
그리하여 두려움을 느낀 사람들은 미륵의 칠을 벗기고 지금 전하는 바와 같은 미륵의 모습을 유지하게 되었다 한다.
또한 비교적 근래의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다음과 같은 이야기도 전한다.
약 70년전 용화사에서 한문을 수학하던 이가 용화사 미륵당 뒤뜰에서 돌부처를 캤다고 한다.
함께 공부하던 이도 돌부처를 캤으며, 그 날 밤 당시 수학하는 이들에게 한문을 가르치던 주지스님의 꿈에
또 하나의 돌부처가 있다는 선몽이 있어 다음 날 그 자리를 캐어보니 정말로 돌부처가 나왔다.
그리하여 세 개의 돌부처를 캐내었는데 돌부처의 밑에 구멍이 있어 보니
돌부처의 내력과 어느 날 이 돌부처가 발견될 것이라는 쪽지가 나왔다고 한다.
당시 발견된 돌부처는 용화사 너머 어느 암자로 옮겨졌다 하는데 그 암자가 어디인지는 현재 알 수는 없다.
또한 칠보산 용화사 아래 마을에는 밀양 박씨들의 집성촌이 있는데, 여기에도 전해오는 이야기가 있다.
이 마을은 대대로 장사(壯士)가 많이 나는 곳이었다 한다.
빙판(氷板) 위에서 나막신을 신고 커다란 연자 방앗돌을 새끼로 묶어서 이빨로 끌 정도의 장사가 있었다고 하며,
심지어는 겨드랑이에 날개가 돋친 장사가 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어찌된 까닭인지 노방(路傍)의 미륵불을 당(堂)을 지어 모시면서부터는 더 이상 장사가 나지 않는다고 한다.
마을의 토박이인 밀양 박씨들은 절을 지으면서 땅의 기운을 막았고
그러면서 칠보산의 정기를 받지 못하기 때문이라고들 믿고 있었다.
일본이 칠보산의 혈(穴)을 막기 위해 박았다는 쇠말뚝이 이를 입증한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칠보산 용화사에 이와 같이 많은 설화의 각 편이 전승되고 있다는 사실은 그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그만큼 용화사의 미륵은 우리 고장 수원 사람들의 세상살이에 있어 많은 영향을 수수(授受)하며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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