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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장리 선사유적지(石莊里 先史遺蹟地) - 사적 제334호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18. 10. 31. 20:30
석장리 선사유적지(石莊里 先史遺蹟地) - 사적 제334호
석장리 유적을 처음 찾은 것은 1964년 봄,
미국인 대학원 학생인 앨버트 모어(Albert Mohr)와 그의 아내 샘플(L. L Sample)이었다.
그들은 부산의 영도 동삼동 신석기시대 조개더미 유적을 발굴하고 난 다음
이곳 금강가를 답사하던 중 무너진 층에서 뗀석기를 찾았다.
그 후 선사유적의 가능성을 알아보기 위해 연세대 사학과 손보기교수와 더불어
1964년 5월 21일 석장리 유적을 답사하여 쌓임층이 무너진 곳에서 석기를 다시 찾고, 발굴허가 절차를 거쳐
그 해 11월 11일부터 연세대학교 대학원 사학과에서 발굴을 시작하여
1965년~1974년 10차까지 연세대학교 박물관 발굴단에 의해,
11,13차는 (1990~2010년) 한국 선사문화연구소에의해 발굴. 조사되었다.
석장리유적은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우리의 역사가 단군시대(청동기시대)보다 앞서는
구석기시대부터 이 땅에서 사람이 살아왔다는 귀중한 사실을 밝히게 한 유적이다.
발굴 결과 석장리 유적에서는 구석기시대 전기, 중기, 후기
그리고 중석기시대의 문화층이 가늠되었고, 신석기, 청동기시대의 유물도 찾아냈다.
이렇듯 석장리유적은 선사시대 전시기에 걸쳐 사람이 살았던 매우 중요한 유적으로 밝혀졌고,
우리나라 학계에서는 처음으로 구석기 고고학의 뿌리를 내리게 한 유적이기도하다.
발굴 결과 1지구 81구덩이에서는 28개의 쌓임층에서 6개의 문화층이 확인되었고,
2지구 1구덩은 27개 쌓임층에서 13개의 문화층이 확인되었으며,
후기 구석기시대의 집터, 화덕자리, 사람 머리카락 등도 찾아졌다.
방사선 탄소 연대측정 결과 bc 5만 년, 3만 년, 2만 년의 연대로 확인되었다.
충청남도 공주시 장기면 석장리동
금강
구석기 석장리 유역의 금강은 선사시대에 같은 지역과 지역을 연결하는 중요한 수단이었으며,
구석기인들의 이동생활에 길잡이가 되어 주었다.
금강 주변은 넓은 평야와 낮은 산들로 선사시대부터 현재까지도 생활하기 매우 좋은 조건이다.
금강의 대전 둔산동, 옹호도 진안 진 그늘 등의 유적 등이 잇따라 발견되며,
금강 따라거주했던 구석기인들의 이동 경로도 짐작 할 수 있게 되었다.
석장리 선사유적지 표석 - 사적 제334호(1990년 10월 26일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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