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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항미정(杭眉亭) - 수원시 향토유적 제1호​
    수원사랑/문화재(文化財) 2019. 2. 28. 19:30

    항미정(杭眉亭) - 수원시 향토유적 제1호​

     

    서호 옆에 위치한 항미정은 1831년(순조 31) 화성유수 박기수(朴綺壽, 1774∼1845)가

    장안문 바깥의 폐사(廢寺)에서 건물 자재를 옮겨 만들었다.

    항미정이란 이름은 송대(宋代)의 문장가인 소식(蘇軾, 호는東坡)이 항주의 태수(太守)를 지내며

    서호(西湖)가 항주(杭州)를 대표하는 아름다운 미목(眉目)이라 하였던 데서 따온 것으로

    중국 서호의 절경에 비견할만한 아름다운 경치를 가졌음을 과시한 이름이다.

    항미정은 1872년 한차례 중수(重修)한 후, 1897년 낡고 허물어진 것을

    관찰사 오익영(吳益泳)이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1986년 4월 8일 수원시 향토유적 제1호로 지정되었다.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서둔동

     

     

     

     

     

     

     

     

     

     

     

     

     

     

     

     

     

     

     

     

     

     

    이토 히로부미 수원방문기념사진(伊藤博文 水原訪問記念寫眞)

     

    1907년(광무 11년) 3월 26일 수원 권업모범장(勸業模範場, 현 농촌진흥청) 인근의

    항미정(杭眉亭)에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1841~1909)와 그 일행들이 찍은 기념사진이다.

    초대 조선통감(朝鮮統監)이었던 이토 히로부미는 조선을 무력으로 장악한 군부 실세인

    조선총독(朝鮮總督) 하세가와 요시미치(長谷川好道, 1850~1924) 육군대장을 전별하기 위해

    수원에 내려와 권업모범장, 수원공립보통학교(水原公立普通學校, 현 수원신풍초등학교),

    삼일여학교(三一女學校, 현 매향여자정보고등학교)를 시찰하였다.

    이후 이토 히로부미는 1909년 6월 14일 조선통감 임기를 마치고

    그해 10월 26일 중국의 하얼빈역(哈爾濱站)에서 독립운동가 안중근에게 저격돼 죽었다.

     

    1907년 병합기념조선사진첩(倂合記念朝鮮寫眞帖) - 수원광교박물관

     

     

     

     

     

    항미정(杭眉亭) - 수원시 향토유적 제1

     

    항미정은 축만제(서호)에 있는 정자로 순조31(1831) 당시 화성유수였던 박기수(朴綺壽, 1774~1845)가 현재의 자리에 건립하였다.

    박기수는 1831221일 화성유수에 임명되어 이듬해 1832년 윤94일 대사헌으로 이임하기까지 11개월간 재임하면서

    항미정을 창건하였을 뿐만 아니라 화성지(華城誌)를 편찬하기도 하였다.

    항미정이라는 이름은 중국 시인 소동파(蘇東坡)의 시구(詩句)

    "서호는 항주(杭州)의 미목(眉木)과 같다"고 읊은 데서 그 이름을 따서 지었다고 한다.

    항미정의 구조는 남북으로 자형 4칸과 전퇴(前退)가 있는 건물을 기본구조로 하고,

    북쪽 끝에서 서쪽으로 2칸의 공랑(公廊)을 붙였고, 남쪽 끝에서 동쪽으로 1칸의 마루칸을 내어 달았다.

    항미정은 1908102일 순종황제가 기차를 타고 수원 능행(陵幸)을 하였을 때,

    융건릉 참배 후 서호 임시 정거장에 도착하여 축만제 뚝방길을 지나 항미정에서 차를 마시며 잠시 쉬었던 유서 깊은 정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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