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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년의 보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태화산 마곡사(泰華山 麻谷寺)
    국내 나들이/사찰(寺刹), 불교(佛敎) 2019. 6. 24. 04:00

    천년의 보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태화산 마곡사(泰華山 麻谷寺)

     

    태화산 기슭 맑은 계곡을 끼고 위치하는 마곡사는 조계종(曹溪宗)의 대전. 충남지역 70여 사찰을 관장하는 대본산이며

    춘마곡 추갑사(春麻谷 秋甲寺)라는 말이 전해질만큼 봄() 경치가 뛰어나다.

    백제 의자왕 3(서기 643)자장율사(慈藏律師)가 창건하고 고려 명종 2(서기 1172)에 보조국사가 중건하였다.

    절의 이름은 신라보철화상(輔綴和商)이 법문을 열때

    모인 대중(大衆)이 삼밭(麻田)의 삼대()같이 많다하여 마곡사(麻谷寺)라 이름 지은 것이라 한다.

    가람의 배치는 태극도 형으로 사찰을 감싸고 흐르는 태화천(泰華川)을 중심으로

    북쪽으로는 오층석탑(보물 제799)및 대광보전(大光寶殿)과 대웅보전(大雄寶殿) 등 부처님의 공간(極樂世界)을 상징하며,

    하천 남쪽으로는 영산전(靈山殿) 및 매화당(梅花堂) 수선사(修禪舍) 등을 배치하여 스님들의 수행(修行) 공간으로 배치하였고,

    이를 극락교(極樂橋)로 연결하여 스님들의 수행 목적을 일깨우고 있다.

    주위에 영은암(靈隱庵) 대원암(大元庵) 은적암(殷寂庵) 백련암(伯蓮庵) 청련암(靑蓮庵)

    부용암(芙容庵) 북가섭암(北伽葉庵) 등의 부속암자가 산재해 있다.

    2018630일 바레인에서 열린 제42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마곡사를 비롯하여

    통도사, 부석사, 봉정사, 법주사, 선암사, 대흥사 등 대한민국의 산사(山寺) 7곳을

    유네스코 세계유산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으로 등재하였다.

     

     

    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마곡사로 966(운암리),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 마곡사

     

     

     

     

    일주문(一柱門)

     

    일주문(一柱門)이란 사찰에 들어서는 산문(山門) 가운데 첫 번째 문으로 기둥이 한 줄로 되어 있는 데서 유래된 말이다.

    네 기둥(四柱)을 세우고 그 위에 지붕을 얹는 일반적인 가옥 형태와는 달리

    일직선상의 두 기둥 위에 지붕을 얹는 독특한 형식을 갖추고 있다.

    사찰에 들어가는 첫 번째 문을 독특한 양식으로 세운 것은 일심(一心)을 상징하는 것이다.

    신성한 가람에 들어서기 전에 세속(世俗)의 번뇌(煩惱)를 불법의 청량수로 말끔히 씻고

    일심으로 진리의 세계로 향하라는 상징적인 가르침이 담겨 있다.

    , 사찰 금당(金堂)에 안치된 부처의 경지를 향하여 나아가는 수행자는

    먼저 지극한 일심으로 부처나 진리를 생각하며 이 문을 통과해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태화산 마곡사(泰華山 麻谷寺)

     

     

     

     

     

     

     

     

     

     

     

     

    태화산 마곡사(泰華山 麻谷寺)

     

    춘마곡(春麻谷)’이란 별칭에서 알 수 있듯이

    봄볕에 생기가 움트는 마곡사의 태화산(泰華山)은 나무와 봄꽃들의 아름다움이 빼어나다.

    마곡사 사적입안(事蹟立案)의 기록에 따르면 '마곡사는 640(百濟 武王 41)

    신라의 고승 자장율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오고 있으며

    고려 명종(明宗) 때인 1172년 보조국사(普照國師)가 중수하고 범일(梵日) 대사가 재건하였다고 한다.

    도선국사(道詵國師)가 다시 중수하고 각순(覺淳) 대사가 보수한 것으로 전해오고 있다.

    조선시대에도 세조가 이 절에 들러 영산전(靈山殿)’이란 사액(賜額)을 한 일이 있었다.

    신라의 고승 자장 율사가 창건할 당시만 하더라도 30여 칸에 이르는 대사찰이었으나

    현재 마곡사는 대웅보전(大雄寶殿, 보물 제801)을 비롯한 대광보전(大光寶殿, 보물 제802),

    영산전(보물 제800), 사천왕문, 해탈문(解脫門) 등의 전각들이 가람을 이루고 있다.

    이 밖에도 도량의 성보(聖寶)로는 5층 석탑(보물 제799)과 범종(梵鐘,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62),

    괘불(掛佛) 1, 목패(木牌), 세조가 타던 연(), 청동 향로(지방유형문화재 제20)가 있으며,

    감지금니묘볍연화경(紺紙金泥妙法蓮華經) 6(보물 제270)과 감지은니묘법연화경 제1(보물 제269)이 보존되어 있다.   

     

     

     

     

     

    해탈문(解脫門) -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66

     

    해탈문은 마곡사의 정문으로 이 문을 지나면 속세(俗世)를 벗어나 

    불교 세계에 들어가게 되고, 해탈(解脫)을 하겠다는 마음을 갖게 된다고 한다. 

    중앙 통로 양쪽 편에 금강역사상(金剛力士像)과 문수동자상(文殊童子像) 등을 모시고 있다. 

    고종 1(1864)에 중수하였다는 기록을 보아 그 이전에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1984517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66호로 지정, 관리하고 있다.

     

     

     

     

     

     

     

     

     

     

     

     

     

     

    천왕문(天王門) -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62

     

    마곡사 입구에 있는 천왕문은 앞면 3옆면 2칸 규모이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자 모양인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다. 

    천장은 지붕의 뼈대가 그대로 드러나 있는 연등천장으로 꾸몄고, 

    안쪽에는 동서남북 4지역을 지키는 사천왕상(四天王像)과 그림이 있다. 

    사천왕은 천상계(天上界)의 가장 낮은 곳인 

    사천왕천(四天王天)의 동서남북 4지역을 관할하는 신격적 존재이다. 

    이들은 부처님이 계신다는 수미산(須彌山)의 중턱 사방을 지키면서 

    인간세계의 인간들이 불도(佛道)를 따라 사는지 살피어 그들을 올바로 인도하는 천왕들이다.

    1984517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62호로 지정, 관리하고 있다.

     

     

     

     

     

     

     

     

     

     

     

     

    응진전(應眞殿) -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65
    응진전은 부처님을 중심으로 부처님의 제자인 16나한을 모시고 있다.부처님에게는 16명의 뛰어난 제자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모두 아라한의 경지에 이른 분들이며석가모니 부처님으로부터 장차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은 분들이다.아라한은 성자를 이르는 말로써 이들은 진리로써 사람을 이끌 수 있는 능력인 응진의 소유자들이다.아라한을 모신 전각을 나한전 또는 응진전이라 한다.1852년에 중수하였다는 기록으로 보아 그 이전에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건물 전면에만 창호를 달아 출입하도록 하고, 나머지 삼면의 회사벽(灰沙壁)으로 마감한 특징이 있다.

     

     

     

     

     

     

     

    마곡사에는 백범 김구 선생이 머물다 간 백범당이라는 건물이 있고 그 옆으로는 김구 선생이 해방 후

    1946년 여러 동지들과 이곳을 찾아와 기념식수를 한 향나무가 아직도 파랗게 자라고 있다.

    백범선생은 마곡사를 떠난 지 근 50년 만에 돌아와 대광보전 기둥에 걸려있는

    주련 却來觀世間 猶如夢中事(각래관세간 유여몽중사 : 돌아와 세상을 보니 모든 일이 꿈만 같구나)라는

    원각경에 나오는 문구를 보고 감개무량하여 이 향나무를 심었다 한다.

    백범 선생은 동학교도에서 승려, 독립군, 상해 임시정부 초대 주석에 이르기까지 투쟁과 투옥

    그리고 망명으로 점철된 삶이었지만 언제나 해방된 조국, 하나 된 조국의 뚜렷한 목표가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후대의 사람들은 선생의 고절한 생을 흠모하는 것이다.

    백범 선생은 명성황후가 시해된 1896년 일본군 중좌를 살해하고 살인범으로 낙인찍혀

    인천교도소에서 사형수로 복역 중 그곳을 탈옥하여 1898년 마곡사에서 은신하다가

    하은당이라 불리는 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여 법명을 원종(圓宗)이라 하였다.

    백범일지에는 그의 출가에 대한 기록이 다음과 같이 기록되고 있다.

    사제(師弟) 호덕삼(扈德三)이 머리털을 깎는 칼(削刀을 가지고 왔다.

    냇가로 나가 삭발진언을 쏭알쏭알 하더니 내 상투가 모래 위로 뚝 떨어졌다.

    이미 결심을 하였지만 머리털과 같이 눈물이 뚝 떨어졌다.

    출가 당시의 착잡했던 심경이 잘 묘사되어 있다. 지금도 마곡사에는 김구 선생이 삭발했던 바위가 있고

    지금은 마곡사와 공주시청이 이곳 삭발바위와 마곡천을 잇는 다리를 놓아 백범교라 부르고

    그곳에서 마곡천 절경을 굽어보는 마곡사 또 다른 명소가 되었다.

    또한 마곡사 생태농장에서 군왕대로 이어지는 <백범 솔바람 명상 길>을 두어

    마곡사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1시간가량 산보하기 좋다.

    백범 선생이 지냈던 백범당에는 백범선생의 진영(眞影)1946년 마곡사를 방문했을 때

    마을 사람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 걸려 있는데 백범 선생 뒤로는 왼쪽에는 완장을 찬 좌익이 서있고

    오른 쪽에는 넥타이를 맨 우익이 서있다.

    이렇듯 백범선생은 사상 보다는 하나 된 조국을 더 원하였다.

    사진 옆에는 백범선생이 평생 좌우명으로 삼았던 친필 휘호가 있는데 그것은 서산대사의 선시로 다음과 같다.

     

    雪野中去(답설야중거)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는

    不須胡亂行(불수호란행) 어지러이 걷지 말라

    今日我行跡(금일아행적) 오늘 나의 발자국은

    遂作後人程(수작후인정) 뒷사람들의 이정표가 되리라.

     

     

     

     

     

     

    조사전(祖師殿) 

     

    조사전에는 개산조 자장을 시작으로 범일국사, 서산대화상 휴정, 사명당대사 유정, 시허대화상 영규,

    대선사 금호당 약효,  옥룡자 도선국사 , 불일 보조국사, 대공주 금파당 묘화, 인월당 지행대선사,

    경허당 대선사 성우, 만공당 월면 대선사, 용음당 법천 대선사 진영 등이 모셔져 있다.

     

     

     

     

     

     

    마곡사 대웅보전(麻谷寺 大雄寶殿) - 보물 제801 

     

    대웅보전 원래의 건물은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졌고,

    현재의 건물은 1651(효종 2)에 각순대사와 공주목사 이주연이 다시 지은 것이다.

    외관상으로는 2층 건물 형태인 중층이나 내부는 하나의 공간이다.

    현존하는 전통 목조건축물 가운데 많지 않은 중층건물로 목조 건물의 아름다운 조형미를 잘 표현하고 있다.

     대웅보전은 대광보전(大光寶殿, 보물 제802)과 함께 마곡사의 본전(本殿)이다.

     

     

     

     

     

     

     

     

     

     

     

     

    공주 마곡사 대광보전(公州 麻谷寺 大光寶殿) - 보물 제802 

     

    대광보전 원래의 건물은 임진왜란(1592) 때 불타 없어졌는데, 1813(순조 13)에 다시 지었다.

    건물 안바닥에는 참나무로 만든 돗자리가 깔려있고, 그 위에 양탄자가 깔려있으며,

    비로자나부처님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보고 있는 것이 특이하다

    건축양식은 외관이 장대하면서도 화려한 특징을 갖는 다포식이며,

    건물의 앞쪽에는 다양한 무늬의 꽃살무늬의 문을 달았다

    건물 내부의 화려한 공간 구성과 함께 조선 후기 건축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훌륭한 전통 목조건물이다

    부처님 뒷벽에는 18세기 후반에 조선회화의 특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백의 수월관음도가 조성되어 있으며

    보는 사람들이 저절로 신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관음보살상(觀音菩薩像)으로 유명하다.

    대웅보전(大雄寶殿, 보물 제801)과 함께 마곡사(麻谷寺)의 본전(本殿)이다.

     

     

     

     

     

     

    공주 마곡사 오층석탑(公州 麻谷寺 五層石塔) - 보물 제799

     

    대광보전 앞에 우뚝 서 있는 오층석탑은 탑 전체의 무게를 받쳐주는 기단(基壇)2단으로 쌓고,

    그 위로 5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후 머리장식을 올린 모습이다.

    탑신의 몸돌에는 부처, 보살 등을 조각해 놓았고, 지붕돌은 네 귀퉁이마다 풍경을 달았던 흔적이 보이는데,

    현재는 5층 지붕돌에만 1개의 풍경이 남아 있다.

    청동으로 만들어진 꼭대기의 머리장식은 이 탑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으로,

    중국 원나라의 라마탑과 그 모습이 비슷하다.

    길쭉한 감이 있어 안정감은 적으나 당당한 풍채로 버티고 서있다.

    만들어진 시기는 머리장식의 독특한 모습으로 보아 원나라의 영향을 받았던 고려 후기 즈음으로 여겨진다.

    즉 고려 후기 당시 원나라와의 문화 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지면서

    라마교 계통의 문화도 고려에 들어오게 되는데 이 탑은 그 문화의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탑 안의 보물들을 거의 도난당하였으나,

    1972년 해체하여 수리하는 과정에서 동으로 만든 향로와 문고리가 발견되었다.

    19841130일 보물 제799호로 지정, 관리하고 있다.

     

     

     

     

    마곡사 심검당(麻谷寺 尋劍堂) 및 고방(庫房)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35

     

    심검당이란 지혜의 칼을 찾는 집이라는 뜻으로 스님들이 일상생활을 하는 방이다.

    심검당이 언제 지어졌는지 알 수 없지만, 정조 21(1797)

    보수공사가 이루어졌다는 기록으로 보아 그 이전에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건물은 자형으로 온돌방과 부엌 및 마루를 만들어 조선시대 상류층 가옥과 비슷한 구조로 되어 있다.

    기둥은 네모기둥과 둥근기둥을 혼합하여 세웠고,

    마루 한편에는 효종 5(1654) 충청도 대흥의 안곡사에서 만들어진 마곡사 동종과 목어 등이 있다.

    고방은 심검당 북쪽에 있는 2층으로 된 창고이며, 심검당과 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범종루(梵鐘樓)

     

    범종루는 1996년에 건립한 ()형 또는 ''형 평면의 건물로 조선후기 건축 양식이다.

    누각에는 사방에 석조 난간을 돌렸고 원형초석을 놓은 위에 기둥을 세워 목조 건물을 올렸다.

    지붕형태의 변화, 3출목 공포, 길게 뻗은 살미, 기둥과 창방 사이의 낙양각 등으로

    범종각은 변화 있고 화려한 외관을 보여준다.

    범종루에는 범종(梵鐘)과 법고(法鼓), 목어(木魚), 운판(雲版)의 사보(四寶)를 두었는데, 모두 근래에 조영된 것이다.

    범종은 중앙에 위치하며,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면서 벌어지다 중간 부분부터 수직으로 내려오고

    구연부가 약간 오므라든 종신(鐘身)은 전형적인 한국 종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

    종신에 '佛紀三00甲寅年秋 麻谷寺千佛殿 住持楞嚴'이라고 쓴 명문이 돋을새김 되어 있다 

     

     

     

     

     

     

     

     

    명부전(冥府殿) -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64

     

    명부전은 지장보살과 염라대왕을 비롯한 시왕을 모신 곳으로 1939년에 건립되었다.

    지장보살은 불교에서 구원의 상징으로 모든 인간을 교화시켜 성불토록 인도하는 역할을 맡은 보살이다.

    시왕은 사람이 죽은 후에 지옥에서 죄가 크고 작음을 가리는 10명의 왕으로 염라대왕은 그 중 다섯 번째 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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