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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가 와서 더욱 운치있는 천하제일경 화순적벽 - 명승 제112호
    국내 나들이/명승(名勝) 2019. 6. 28. 04:30

    비가 와서 더욱 운치있는 천하제일경 화순적벽 - 명승 제112호



    천하제일경 화순적벽(天下第一景 和順赤壁)





    화순적벽투어 목걸이용 명찰





    천하제일경(天下第一景) 화순적벽(和順赤壁)


    조선마술사, 쌍화점, 근초고왕, 대왕의 꿈, 밤을 걷는 선비 등 영화와 드라마의 촬영지로 유명한 화순적벽은

    동복댐 상류에서부터 물염적벽, 창랑적벽, 보산적벽, 장항적벽(일명 노루목적벽) 4개 군으로 나뉘어 있다.

    1519년 기묘사화 후 동복에 유배 중이던 신재 최산두가 이곳의 절경을 보고

    마치 소동파가 읊었던 중국의 적벽보다 더 웅장하고 아름답다고 하여 적벽(赤壁)’이라 이름 지었다.

    다산 정약용, 방랑시인 김삿갓 등 시인묵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던 천하제일경 화순적벽이다.

     



    화순투어 홈페이지 http://tour.hwasun.go.kr






    설렘화순 적벽투어 출발장소 : 이용대체육관 앞(화순공설운동장 내)





    화순적벽


    동복천 상류인 창랑천에는 약 7km에 걸쳐 수려한 절벽경관이 발달하고 있는데

    대표적인 것으로는 동복댐 상류에 있는 적벽(노루목 적벽)과 보산리, 창랑리, 물염적벽 등 4개의 군으로 나뉘어 있다.

    적벽은 수려한 자연경관이라든가 웅장함 그리고 위락공간으로서 주변의 적절한 자연조건 때문에,

    동복댐이 만들어지기 직전까지 옛날부터 널리 알려진 명승지이다.

    1519년 기묘사화 후 동복에 유배중이던 신재 최산두가 이 곳의 절경을 보고 중국의 소동파가 선유하며

    그 유명한 적벽부를 지어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했던 적벽에 버금간다하여 적벽이라 명명하였다고 한다.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깎아세운 듯한 수백척 단애절벽의 절경에 젖어

    방랑시인 김삿갓(김병연)도 이곳에서 방랑을 멈추고 생을 마쳤다.

    그러나 김삿갓을 비롯한 많은 시인, 묵객들이 좋아했던 상류의 노루 목적벽은

    1985년 동복댐 준공을 계기로 수몰되어 25m 가량 잠겨버렸다.








    적벽(赤壁, Red Cliffs)


    적벽은 암석에 드러난 층리와 이를 조화롭게 덮고 있는 식생들로 인해

    그 풍경이 중국 양자강 상류의 적벽과 비슷하다고 하여 이름 붙여졌다.

    적벽은 사암(沙巖), 이암(泥巖), 응회암(凝灰巖) 등 다양한 퇴적암이 얇게 교대로 쌓여 줄무늬(층리)를 만들고 있다.

    이곳은 중생대 백악기 이후에 생성된 능주분지의 일부이며,

    당시의 능주분지는 지금의 광주, 나주, 담양, 화순 일대에 걸쳐 호수를 이루고 있었다.

    적벽에서는 사층리, 연흔, 건열, 증발광물흔 등의 최적구조들이 나타나며, 이로서 이곳이 호수의 주변부였음을 알 수 있다.














    노루목적벽(장항적벽)


    화순적벽 가운데 최고 절경으로 이서면의 노루목적벽을 꼽는다.

    수많은 시인들이 영감을 얻어갈 정도로 경치가 수려하였다.

    산의 형세가 노루()의 목을 닮았다고 '노루목적벽(獐項赤壁)'으로 불린다.

    물염적벽과 창랑적벽은 아무 때나 쉽게 만날 수 있는 반면, 노루목적벽과 보산적벽은 화순 적벽투어를 통해서만 볼 수 있다.

    높이 65m, 너비 300m








    망미정(望美亭) - 화순군 향토유적 제37


    망미정은 1646(인조 14) 병자호란 의병장으로 활동했던 적송(赤松) 정지준(丁之雋, 15921663)이 적벽 강가에 지었다.

    동복댐(同福)이 들어서면서 1985년 현 위치로 이축하였다.

    현판은 추사 김정희의 아우 금미 김상희의 글씨가 걸려 있었으나 수몰 과정에서 이축 당시 편액과 현판이 모두 도난당하고

    현재의 현판은 소암 현중화가 대통령인 김대중의 글을 받아 1986년에 새로 새갸 보존하고 있다.

    정면 3, 측면 2칸의 골기와 팔작지붕의 건물로 1칸의 방을 두어 겨울이면 불을 지필 수 있도록 하였다.

    200819일 화순군 향토유적 제37호로 지정, 관리하고 있다.










    적벽동천(赤壁洞天)







    망향정(望鄕亭)


    1983년 동복댐의 완성으로 적벽의 절반은 물에 잠기게 되고 그 주위에 살던 마을 주민들은 고향을 떠나게 된다.

    적벽의 맞은편에 고향을 잃은 사람들의 설움이 담긴 정자, 망향정이 있다.

    망향정은 장두석 선생님이 주도하에 전라도의 윤창병 목수가 지었다.

    지금도 이곳에서는 고향을 잃고, 선산에 가지 못하는 수몰민들이 매년 모여서 시제(時祭)를 모시고, 천제(天祭)를 지낸다.

    망향정 주변에는 적벽동천과 적벽팔경이 새겨진 비석, 수몰된 15개 마을의 비석을 세운 망향비와 망배단, 천제단 등이 남아 있다.






    망배단(望拜壇)

       







    망향탑(望鄕塔)





    화순적벽(和順赤壁) -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제112


    동복천(同福川) 상류인 창랑천(滄浪川)에는 약 7km에 걸쳐 크고 작은 수려한 절벽이 장관을 이루는데,

    장항(노루목)적벽, 창랑리에 있는 창랑적벽(滄浪赤壁), 물염정이 있는 물염적벽(勿染赤壁) 등이 가장 유명하다.

    적벽은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선경으로 아름답고 빼어난 자연경관과 웅장함, 그리고 유락 공간으로서 옛부터 잘 알려진 명승이다.

    이곳의 지형이 노루의 목처럼 생겼다하여 노루 장(), 목 항()자를 써서 장항적벽(노루목 적벽)이라고도 부르며,

    이곳이 전체 적벽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다.


    조선조 중종(1506~1544) 때 기묘사화로 동복현으로 유배를 왔던 신재 최산두(1483~1536)가 적벽이라는 이름을 붙였으며,

    당대의 뛰어난 유학자였던 김인후(1510~1560) 등은 적벽 관련된 시를 남겼으며,

    조선 중기 때 문인이었으며, 임진왜란 시 의병장이었던 제봉 고경명(1533~1592)

    1574년 무등산 일대를 유람하고 기행문인 유서석록을 써 기록을 남기는 등

    많은 당대의 시인묵객들이 적벽을 보고 그 절경을 노래하였다.

    또한 1777(정조 1)에 화순현감인 아버지인 정재원을 따라 왔던 청년의 다산 정약용 선생도 적벽에서 시를 읊었으며,

    방랑시인 김병연(김삿갓)도 다음과 같이 적벽을 노래하였다.

    무등산이 높다하되 소나무 가지 아래 있고, 적벽이 깊다더니 모래 위를 흐르는구나.


    특히 동복읍지에는 동복팔경이 기록되어 있는데 다음과 같다.

    1. 한산모종(寒山暮鐘) : 한산사의 저녁 종소리

    2. 금사낙안(金沙落雁) : 모래밭에 내리는 기러기

    3. 부암관어(浮岩觀魚) : 부암 앞에서 고기 구경

    4. 적벽낙화(赤壁落火) : 적벽에서의 저녁 낙화놀이

    5. 학탄귀범(鶴灘歸帆) : 학탄을 돌아가는 돛단배

    6. 고소청풍(姑蘇淸風) : ·고소대에서 불어오는 맑은 바람)

    7. 선대관사(仙臺觀射) : ·강선대에서의 활쏘기

    8. 설당명월(雪堂明月) : 설당의 밝은 달빛


    현재는 1985년 준공된 동복댐에 15개 마을이 물에 잠기고 적벽 일부도 물에 잠겼지만 여전히 그 절경을 자랑하고 있다.

    또한 이곳의 수려한 산세를 따라 물염정, 망미정, 송석정, 창랑정 등 30여 개소의 누정이 있었지만

    지금은 모두 수몰 및 퇴락하여 없어지고 물염정과 망미정, 송석정 등만이 남아있다.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장항리, 창랑리 일대

     






    적벽동천(赤壁洞天)


    184712월에 부임한 동복현감 이인승(李寅昇, 1783~1849)赤壁洞天이라는 글자를 석면에 새겼다.





    천제단(天祭壇)




    상수원보호구역(광주광역시 상수도사업본부 용연정수사업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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