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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훈기념관(沈熏記念館)국내 나들이/기념관(記念館) 2021. 4. 22. 19:46
심훈기념관(沈熏記念館)
일제강점기 소설가이자, 시인, 영화인이었던
심훈의 대표적 농촌계몽소설인 “상록수”를 집필한 당진 필경사 일원에
그의 항일 및 계몽정신을 후세에 선양하고자 심훈기념관을 건립하였다.
개관시간 (하절기 3월~10월) 09:00~18:00
(동절기 11월~2월) 09:00~17:00
입장료 : 무료
심훈기념관(필경사) 전화 041-360-6883
충청남도 당진시 상록수길 105 (부곡리)
바로가기 심훈기념관 dangjin.go.kr/shimhoon/
심훈(沈熏, 1901년 10월 23일 ~ 1936년 9월 16일)
심훈은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 소설가, 시인, 언론인, 영화배우,
영화감독, 각본가로 본명은 심대섭(沈大燮)이다.
경기도 과천군에서 3남 1녀 중 삼남으로 출생하였으며,
아명으로 삼보(三保)나 삼준(三俊)을 사용하였다.
친일 성격을 띠었던 가족들과는 달리 1919년 3.1운동에 참여하였고,
이로 인해 감옥에 투옥되고 학교선 퇴학 처분이 되었다.
이후 중국에서 잠시 체류하기도 했으며, 귀국 후에는 동아일보의 기자로 활동하였다.
1927년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영화 공부를 하여
영화 ‘먼동이 틀 때’를 제작하기도 하였다.
동아일보에서 브나로드운동(v narod movement)을 진행할 때에는
장편 소설 ‘상록수’를 집필해 당선되었으며, 이듬해 장티푸스에 사망하였다.
심훈(沈熏, 1901~1936)
저항의식과 예언자적 지성, 민중적 생명력을 문학으로 표현하다.
천부적인 예술가 기질과 진보주의적 정열을 함께 지닌 시인,
영화예술인, 소설가, 언론인으로서 온 몸으로 항일 저항운동을 펼치며,
현실과 민족의식을 작품에 담았다.
대표작으로는 '상록수'와 '동방의 애인', '영원한 미소', '직녀성'과
최초의 영화소설 '탈춤', 시 '그날이 오면', '통속 슥에서' 등이 있다.
심훈기념관 자료 기증자
심재광(차남), 심재호(삼남), 심천보(심훈가 종손),
심덕보(심재영 선생의 차남), 심영보(심재영 삼남),
김형환(심훈 상록수기념사업회장), 인주승(최용신선생 기념사업회 이사장)
심훈(沈熏, 1901~1936)
심훈기념관은 소설가이자 시인이자 영화인이었던 심훈 선생을 기리는 기념관이다.
심훈은 농민계몽문학에서 이후의 리얼리즘에 입각한 본격적인 농민문학의 장을 여는 데
크게 공헌한 작가로서 의의를 지니고 있으며, 대표작은 농촌계몽소설인 '상록수'와
'영원의 미소'와 우리나라 최초의 영화소설 '탈춤' 등이 있다.
심훈의 본관은 청송(靑松), 호는 해풍(海風), 본명은 심대섭(沈大燮), 아명은 삼준 또는 삼보이며
서울 출생으로 아버지 심상정(沈相珽)의 3남 1녀 중 3남이다.
심훈은 1915년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현 경기고등학교)에 입학하였고,
1917년 왕족인 이해영(李海暎)과 혼인하였으며 1919년 3·1운동에 가담하여 투옥되어 퇴학당했으며
출소 후 1920년 중국으로 망명하여 1921년 항저우(杭州) 치장대학(之江大學)에 입학하였다.
1923년 귀국하여 연극과 영화 및 소설집필 등에 몰두하였는데
처음에는 특히 영화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으며, 1924년 이해영과 이혼하였고 같은 해
동아일보사에 입사하였고, 1925년 조일제(趙一齊) 번안의 ‘장한몽(長恨夢)’이 영화화될 때
이수일(李守一)역으로 출연하였고, 1926년 우리 나라 최초의 영화소설 ‘탈춤’을
동아일보에 연재하기도 하였다.
1927년에 도일하여 본격적인 영화수업을 받은 뒤 귀국하여
영화 ‘먼동이 틀 때’를 원작집필, 각색, 감독으로 제작하였으며
이를 단성사에서 개봉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는데 식민지 현실을 다루었던 이 영화는
‘어둠에서 어둠으로’라는 제목이 말썽을 빚자 개작한 작품이며 영화제작은 이것으로 마지막이었다.
이듬해인 1928년 조선일보사에 다시 입사하였고, 1930년 안정옥(安貞玉)과 재혼하였으며
1931년 경성방송국(京城放送局)으로 옮겼으나 사상 문제로 곧 퇴직하였으며,
1932년 고향인 충청남도 당진으로 낙향하여 집필에 전념하다가 이듬해 상경하여
조선중앙일보사에 입사하였으나 다시 낙향하여 1936년 장티푸스로 사망하였다.
심훈은 영화 ‘먼동이 틀 때’가 성공한 이후 그의 관심은 소설 쪽으로 기울었는데
1930년 조선일보에 장편 ‘동방(東方)의 애인(愛人)’을 연재하다가 검열에 걸려 중단 당하였고,
이어 같은 신문에 ‘불사조(不死鳥)’를 연재하다가 다시 중단 당하였으며,
같은 해 시 ‘그날이 오면’을 발표하였는데 1932년 향리에서 시집 ‘그날이 오면’을 출간하려다
검열로 인하여 무산되었으나 1949년 유고집으로 출간되었다.
‘동방의 애인’과 ‘불사조’ 등 두 번에 걸친 연재 중단사건과
애국시 ‘그날이 오면’에서 알 수 있듯이 심훈의 작품에는 강한 민족의식이 담겨 있다.
또한 대표작 ‘상록수’는 젊은이들의 희생적인 농촌사업을 통하여
강한 휴머니즘과 저항의식을 고취시키고 있으며, ‘영원의 미소’에서는
가난한 인텔리의 계급적 저항의식, 식민지 사회의 부조리에 대한 비판정신,
그리고 귀농 의지가 잘 그려져 있다.
특히 심훈은 농민계몽문학에서 이후의 리얼리즘에 입각한
본격적인 농민문학의 장을 여는 데 크게 공헌한 작가로서 의의를 지닌다.
심훈(沈熏)
늘 푸르르고자 했던 항일 민족문학의 영원한 청년
심훈의 가족사진
2000년 8월 15일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고있는 심재광(심훈 선생의 차남) 사진
건국훈장 애국장 흉장
문학으로 독립운동을 펼친 심훈
심훈은 일제강점기 민족이 겪는 차별과 억압에 분개하며
3.1운동에 적극 참가해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됐다.
출소 후 중국으로 망명해 신채호, 이회영 등 여러 독립운동가들과 교류하면서
일제 탄압에 지친 우리 민족을 위로하고 독립에 대한 희망을 심어주는 글을 써야겠다고 다짐했다.
특히 1930년 조국 독립을 갈망하는 저항시 ‘그 날이 오면’과
당시 젊은 계층이 무엇을 해야하는지 방향을 제시한 1935년 소설 ‘상록수’를 통해
우리민족이 아픔을 이겨내고 새로운 희망과 자긍심을 찾을 수 있도록 했다.
야구 - 심훈
식지 않은 피를 보려거던 야구장으로 오라!
마음껏 소리질러보고 싶은 자여,달려오라!
6월의 태양이 끓어내리는 그라운드에
상청수와 같이 버티고 선 점ㆍ점ㆍ점...
꿈틀거리는 그네들의 혈관 속에는
붉은 피가 쭈ㄱ 쭈ㄱ 뻗어 흐른다.
피처의 꽂아넣는 스트라익은 수척의 폭탄.
HOME-RUN BAT! HOME-RUN BAT!
배트로 갈겨내친 히트는 수뢰의 포환,
시푸른 하늘 바다로 번개 같이 날은다.
VICTORY! VICTORY, VICTORY, VICTORY!
고함소리에 무너지는 군중의 성벽,
찔려 죽어도 최후의 일각까지 싸우는
이 나라 젊은이의 의기를 보라!
지고도 웃으며 적의 손을 잡는
이 땅에 자라난 남아의 도량을 보라!
식지 않은 피를 보려거던 야구장으로,
마음껏 소리질러보고 싶은 자여, 달려오라!
1929년 6월 10일
야구(野球)
심훈이 1929년 6월 10일 지은 시 야구는
서구 스포츠인 야구와 관련된 일제강점기 유일한 문학 작품으로
신문물에 깊은 관심을 보였던 심훈의 모던보이적 성향이 잘 나타나있다.
2016년 9월 16일, 프로야구단 한화이글스는 심훈의 야구에 대한 업적을 기념하고,
심훈 작고 80주년을 추모하여 심훈Day로 지정하였고,
심훈 종손인 심천보씨가 시구에 참여하여 그 의미를 더했다.
오오, 조선의 남아여!
1936년 베를린올림픽에서 마라톤 승전보를 알린 손기정, 남승룡 선수!
심훈이 두 선수의 낭보에 감격하여 호외 뒷면에 쓴 시 “오오, 조선의 남아여!”
2016년 심훈 작고 80주년, 손기정 베를린 올림픽 금메달 80주년을 기념하여
잠심주경기장에서 열린 2016 손기정 평화마라톤 대회에서
심훈 종손 심천보씨가 참가자 15,000여 명 앞에서 “오오, 조선의 남아요!”를 낭송하였다.
오오, 조선의 남아여! - 심훈
백림(伯林, 베를린)마라톤에 우승한 손, 남 양군에게
그대들의 첩보를 전하는 호외 뒷등에
붓을 달리는 이 손은 형용 못할 감격에 떨린다!
이역의 하늘 아래서 그대들의 심장 속에 용솟음치던 피가
이천삼백만의 한 사람인 내 혈관 속을 달리기 때문이다.
“이겼다!”는 소리를 들어보지 못한 우리의 고막은
깊은 밤 전승의 방울소리에 터질듯 찢어질듯.
침울한 어둠 속에 짓눌렸던 고토故土의 하늘도
올림픽 거화炬火를 켜든 것처럼 화닥닥 밝으려 하는구나!
오늘 밤 그대들은 꿈 속에서 조국의 전승戰勝을 전하고자
마라톤 험한 길을 달리다가 절명한 아테네의 병사를 만나보리라
그보다도 더 용감하였던 선조들의 정령이 가호하였음에
두 용사勇士서로 껴안고 느껴느껴 울었으리라.
오오,나는 외치고 싶다!마이크를 쥐고
전세계의 인류를 향해서 외치고 싶다!
“인제도 인제도 너희들은 우리를
약한 족속이라고 부를터이냐!”심훈 호적부(沈熏 戶籍簿)
심훈(본명:沈大燮)은 광무 5년 9월 12일
경기도 시흥군 북면 흑석리 176번지(현, 서울 흑석동)에 출생하였다.
심훈문학전집(沈熏文學全集)
필경사 잡기(筆耕舍 雜記)
단장 2수(斷腸 二首) 그날이 오면
소설 상록수 수정본
심훈 선생 추도문(1951. 9. 11)
감옥에서 어머님께 올린 글월
어머님!
오늘 아침에 고의적삼 차입해 주신 것을 받고서야
제가 이곳에 와 있는 것을 집에서도 아신 줄 알았습니다.
잠시도 엄마의 곁을 떠나지 않던 막내둥이의 생사를
한 달 동안이나 아득히 아실 길 없으셨으니,
그동안에 오죽이나 애를 태우셨겠습니까?
그러하오나 저는 이곳까지 굴러 오는 동안에 꿈에도 생각지 못하던 고생을 겪었건만
그래도 몸 성히 배포 유하게 큰집에 와서 지냅니다.
고랑을 차고 용수는 썼을망정 난생처음으로 자동차에다가 보호 순사를 앉히고
거들먹거리며 남산 밑에서 무학재 밑까지 내려 긁는 맛이란
바로 개선문으로나 들어가는 듯하였습니다.
어머님!
제가 들어 있는 방은 28호실인데 성명 삼 자도 떼어 버리려 2007호로만 행세합니다.
두 간도 못 되는 방 속에 열아홉 명이나 비웃 두름 엮이듯 했는데 그중에는 목사님도 있고,
시골서 온 상투쟁이도 있고요. 우리 할아버지처럼 수염 잘난 천도교 도사도 계십니다.
그밖에는 그날 함께 날뛰던 저의 동무들인데 제 나이가 제일 어려서 귀염을 받는답니다.
어머님!
날이 몹시도 더워서 풀 한 포기 없는 감옥 마당에 뙤약별이 내리쪼이고
주황빛의 벽돌담은 화로 속처럼 달고 방 속에서는 똥통이 끓습니다.
밤이면 가뜩이나 다리도 뻗어 보지 못하는 빈대, 벼룩이 다투어 가며 짓무른 살을 뜯습니다.
그래서 한 달 동안이나 쪼그리고 앉은 채 날밤을 새웠습니다.
그렇건만 대단히 이상한 일이 있지 않습니까?
생지옥 속에 있으면서 하나도 괴로워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누구의 눈초리에나 뉘우침과 슬픈 빛이 보이지 않고
도리어 그 눈들을 샛별과 같이 빛나고 있습니다그려!
더구나 노인네의 얼굴은 앞날을 점치는 선지자처럼 고행하는 도승처럼 그 표정조차 엄숙합니다.
날마다 이른 아침 전등불 꺼지는 것을 신호 삼아 몇천 명이 같은 시간에 마음을 모아서
정성껏 같은 발원으로 기도를 올릴 때면 극성맞은 간수도 칼자루 소리를 내지 못하며
감히 들여다보지도 못하고 발꿈치를 돌립니다.
어머님!
우리가 천 번 만 번 기도를 올리기로서니 굳게 닫힌 옥문이 저절로 열릴 리는 없겠지요.
우리가 아무리 목을 놓고 울며 부르짖어도, 크나큰 소원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리도 없겠지요.
그러나 마음을 합하는 것처럼 큰 힘은 없습니다.
한데 뭉쳐 행동을 같이하는 것처럼 무서운 것은 없습니다.
우리들은 언제나 그 큰 힘을 믿고 있습니다. 생사를 같이할 것을 누구나 맹세하고 있으니까요...
그러기에 나이 어린 저까지도 이러한 고초를 그다지 괴로워하여 하소연해 본 적이 없습니다.
어머님!
어머님께서는 조금도 저를 위하여 근심치 마십시오.
지금 조선에는 우리 어머님 같으신 어머니가 몇 천 분이요 몇 만 분이나 계시지 않습니까?
그리고 어머님께서도 이 땅에 이슬을 받고 자라나신 공로 많고 소중한 따님의 한 분이시고
저는 어머님보다도 더 크신 어머님을 위하여 한 몸을 바치려는 영광스러운 이 땅의 사나이외다.
콩밥을 먹는다고 끼니 때마다 눈물겨워하지도 마십시오.
어머님이 마당에서 절구에 메주를 찧으실 때면 그 곁에서 한 주먹씩 주워 먹고 배탈이 나던,
그렇게도 삶은 콩을 좋아하던 제가 아닙니까?
한 알만 마루 위에 떨어지면 흘금흘금 쳐다보고 다른 사람이 먹을세라
주워 먹기 한 버릇이 되었습니다.
어머님!
오늘 아침에는 목사님한테 사식이 들어왔는데 첫술을 뜨다가 목이 메어 넘기지를 못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외다. 아내는 태중에 놀라서 병들어 눕고 열두 살 먹은 어린 딸이
아침마다 옥문 밖으로 쌀을 날라다가 지어 드리는 밥이라 합니다.
저도 돌아앉으며 남모르게 소매를 적셨습니다.
어머님!
며칠 전에는 생후 처음으로 감방 속에서 죽는 사람의 임종을 같이 하였습니다.
돌아간 사람은 먼 시골의 무슨 교를 믿는 노인이었는데 경찰서에서 다리 하나를 못 쓰게 되어
나와서 이곳에 온 뒤에도 밤이면 몹시 앓았습니다.
병감은 만원이라고 옮겨 주지도 않고 쇠잔한 몸에 그 독은 나날이 뼈에 사무처
어제는 아침부터 신음하는 소리가 더 높았습니다.
밤은 깊어 악박골 약물터에서 단소 부는 소리도 그쳤을 때
그는 가슴에 손을 얹고 가쁜 숨을 몰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일어나 그의 머리맡을 에워싸고 앉아서 죽음의 그림자가
시시각각으로 덮어 오는 그의 얼굴을 묵묵히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는 희미한 눈초리로 5촉밖에 안 되는 전등을 멀거니 쳐다보면서
무슨 깊은 생각에 잠긴 듯 추억의 날개를 펴서 기구한 일생을 더듬는 듯합니다.
그의 호흡이 점점 가빠지는 것을 본 저는 제 무릎을 베개 삼아 그의 머리를 괴었더니
그는 떨리는 손을 더듬더듬하여 제 손을 찾아 쥐더이다.
금세 운명할 노인의 손아귀 힘이 어쩌면 그다지도 굳셀까요?
전기나 통한 듯이 뜨거울까요?
어머님!
그는 마지막 힘을 다하여 몸을 벌떡 솟치더니
“여러분!” 하고 큰 목소리로 무거이 입을 열었습니다.
찢어질 듯이 긴장된 얼굴의 힘줄과 표정이 그날 수천 명 교도 앞에서
연설을할 때의 그 목소리가 이와 같이 우렁찼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마침내 그의 연설을 듣지 못했습니다.
“여러분!” 하고는 뒤미쳐 목에 가래가 끓어오르기 때문에…….
그러면서도 그는 우리에게 무엇을 바라는 것 같아서 어느 한 분이 유언할 것이 없느냐 물으매
그는 조용히 머리를 흔들어 보이나 그래도 흐려 가는 눈은 꼭 무엇을 애원하는 듯합니다마는
그의 마지막 소청을 들어줄 그 무엇이나 우리가 가졌겠습니까?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이 나직나직한 목소리로
그날에 여럿이 떼 지어 부르던 노래를 일제히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떨리는 목소리로 첫 절도 다 부르기 전에 설움이 북받쳐서
그와 같은 신도인 상투 달린 사람은 목을 놓고 울더이다.
어머님!
그가 애원하던 것은 그 노래인 것이 틀림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최후의 일각의 원혼을 위로하기에는 가슴 한복판을 울리는 그 노래 밖에 없었습니다.
후렴이 끝나자 그는 한 덩이 시뻘건 선지피를 제 옷자락에 토하고는 영영 숨이 끊어지고 말더이다.
그러나 야릇한 미소를 띤 그의 영혼은 우리가 부른 노래에 고이고이 쌓이고
받들려 쇠창살을 새어서 새벽하늘로 올라갔을 것입니다.
저는 감지 못한 그의 두 눈을 쓰다듬어 내리고 남이 밝도록
그의 머리를 제 무릎에 내려놓지 않았습니다.
어머님!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새록새록 아프고 쓰라렸던 지난날의 모든 일을 큰 모험 삼아
몰래몰래 적어 두는 이 글월에 어찌 다 시원스러이 사뢰올 수 있사오리까?
이제야 겨우 가시밭을 밟기 시작한 저로서 어느 새부터 이만 고생을 호소할 것이오리까?
오늘은 아침부터 참대같이 쏟아지는 비에 더위가 씻겨 내리고 높은 담 안에 시원한 바람이 휘돕니다.
병든 누에같이 늘어졌던 감방 속의 여러 사람도 하나둘 생기가 나서 목침돌림 이야기에 꽃이 핍니다.
어머님!
며칠 동안이나 비밀히 적은 이 글월을 들키지 않고 내보낼 궁리를 하는 동안에
비는 어느듯 멈추고 KF은 오늘도 저물어 갑니다.
구름 걷힌 하늘을 우러러 어머님의 건강을 비올 때,
비 뒤의 신록은 담 밖에 더욱 아름답사온 듯 촌의 개구리 소리만 철창에 들리나이다.
1919. 8. 29.
우리나라 최초 여성 비행사이자 독립운동가인 권기옥 지사가
저항시인 심훈 선생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만장.
사진은 공책을 뜯어내 쓴 칠언절구 초서체 한시.
‘聞道玉京卽此樓(문도옥경즉차루·하늘에 옥경 있다더니 이 빈소가 거기라네),
紅塵官海不同流(홍진관해부동류·번거롭고 속된 관리 길 걷지 않았네),
春風到處美人恨(춘풍도처미인한·봄바람 일렁이면 미인들 한탄하고),
秋月明時孤客愁(추월명시고객수·가을 달 밝으니 외로운 나그네 시름에 젖는구나).’
심훈의 학교 생활성적표
심상정(심훈 선생의 부친) 적십자 경성지구 시흥위원회 지방위원 촉탁 증명서(1915년)
심상정(심훈 선생의 부친) 시흥군 농산물 품평회 사무원 촉탁 증명서(1914년)
조선왕실 왕비 계보도
명종(明宗)의 왕비 인순심씨(仁順沈氏), 경종(景宗)의 왕비 단의심씨(端懿沈氏)
아국희곡집(俄國戱曲集) 제1.4.6종 - 1921년
중국 항주 절강대학(浙江大学)에서 공부했던 교재로 추정
아세아주의 제1책(亞細亞主義 第一冊) - 1921년
초아(草兒) - 1922년
중국 신문화운동 시기 강백정(康白情)의 작품
성야(星夜)의 순례(巡禮) - 1923년
식전(息戰) - 1922년
심훈의 중국 유학시기 책
전쟁의 휴식(전쟁을 그만 두어야 한다는 것)을 서술함.
대표 시조 200수 정선(代表 時調 二百首 精選) - 1922년
일본 중국 현대사상연구(日本 支那 現代史上硏究)
* 지나(支那)는 우리나라의 서북쪽, 아시아 동부에 있는 나라, 즉 중국의 다른 이름.
원래는 역사상 최초의 중국의 통일국가로 알려진 진나라에서 유래한 명칭으로 사용되었다.
중국의 유럽식 이름인 'China' 역시 진나라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세계문학전집 제10권(世界文學全集 第十卷) - 1930년
독일고전극집(獨逸古典劇集)
현대일본문학전집 33편(現代日本文學全集) - 1928년
조선민요집(朝鮮民謠集) - 1929년
선언(宣言), 인도(印度)의 혁명(革命), 비률빈(比律賓)의 발전(發展)
보헤미안의 노래, 만몽론(滿蒙論), 서상(西廂)
조선유기(朝鮮留記), 독립정신(獨立精神), 일본론(日本論)
유물사관 경제사(唯物史觀 經濟史)와 중간계급(中間階級)의 사회학(社會學) - 1932년
현대사상각론(現代史上各論) - 1924년
최신사조전망(最新思潮展望) - 1933년
'재건의 돐 날' 원고
소설 상록수 원고(사본)
심훈 선생의 사망 전보
현대농업사전 67(現代農業辭典) - 1937년
경농(京農)
경성공립농업학교(京城公立農業學校, 현 서울시립대학교) 창립 15주년 기념호
최신 닭 오리 치는 법 - 1953년
안양종축장 축산기술연구회 발행
농업강의록(農業講義錄) -1936년
농가연중행사(農家年中行事) - 1914년 경기도 편찬
입체농업(立體農業)의 논리(論理)와 실제(實際) - 1935년
양돈(養豚)의 비결(祕訣) - 1939년
정말국민고등학교 교과서(丁抹國民高等學校 敎科書) 저자:박인덕
상록수의 실제 인물 최용신(崔容信, 1909~1935) 선생 사진
최용신양의 생애, 상록수와 최용신의 생애, 최용신양의 신앙과 사업
심재영 선생님 유물과 일기
상록수 출판책자(常綠樹 出版冊子)
경성(京城)의 지리 역사(地理 歷史) - 1933년
한문 대한지지(漢文 大韓地志) - 1907년, 1955년 개간
한말의 문신 이원긍이 한국의 정치지역의 연혁과
8도의지지(地志) 산천(山川)의 분포 현황을 교육용으로 엮은 책
청춘(靑春) 4 – 1917년
최남선(崔南善, 1890~1957) 창간
백제구도 부여 고적명승안내기(百濟舊都 扶餘 古蹟名勝案內記) - 1934년 부여고적보존회 발행
고금의협기관(古今義俠奇觀) - 중화서국인행(中華書局印行)
서화(鼠火, 쥐불) - 1946년(단기 4279년)
고금의협기관 권3(古今義俠奇觀 卷三) - 중화서국인행(中華書局印行)
동국역사 권1(東國歷史 卷一) - 1906년 국한문 혼용체
새벽
직녀성 상하(織女星 上下) - 1948년 재출판본
영원(永遠)의 미소(微笑) - 1933년 6월 16일
불사조(不死鳥)
동방(東方)의 애인(愛人)
기자시절의 심훈
언론을 위한 투쟁
뻐꾹새가 운다 - 심훈
오늘 밤도 뻐꾹새는 자꾸만 운다.
깊은 산 속 빈 골자기에서
울려 나오는 애처로운 소리에
애끊는 눈물은 베개를 또 적시었다.
나는 뻐꾹새에게 물어 보았다.
"밤은 깊어 다른 새는 다 깃들었는데
너는 무엇이 섧기에 피나게 우느냐" 라고.
뻐꾹새는 내게 도로 묻는다.
"밤은 깊어 사람들은 다 꿈을 꾸는데
당신은 왜 울며 밤을 밝히오" 라고.
아 사람의 속 모르는 날짐승이
나의 가슴 아픈 줄을 제 어찌 알까.
고국은 멀고 먼데 임은 병들었다니
차마 그가 못 잊어 잠 못 드는 줄
더구나 남의 나라 뻐꾹새가 제 어찌 알까.
그날이 오면 - 심훈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은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움칠 그날이
이 목숨 끊기기 전에 와 주기만 할 양이면
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人磬)을 머리로 들이받아 올리 오리다
두개골이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그날이 와서 오오, 그날이 와서
육조(六曹) 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뒹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 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처 메고는
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 번 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거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심훈의 ‘상록수 정신’을 잇는 노력
심훈 상록문화제
그날이 오면 - (사)심훈상록문화제집행위원회, (사)심훈문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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