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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갑곶순교성지(甲串殉敎聖地)
    국내 나들이/천주교(天主敎) 2022. 1. 6. 20:15

    갑곶순교성지

     

     

     

    천주교 인천교구 갑곶순교성지

     
     
     

    네 길을 주님께 맡기고 그분을 신뢰하여라

    그분께서 몸소 해 주시리라. - 시편 37,5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 - 요한 14,12

     
     
     

    나에게 힘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 필리 4,13

     

     

     

    주님, 제가 방금 켠 이 초가 빛이 되어 제가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거나

    어려움에 처했을 때 제 앞을 밝게 비춰주기를 바라옵니다.

    이 초가 불이 되어 주께서 제 안의 이기주의, 오만함,

    그리고 불순함을 태워주시기를 바라옵니다.

     

    이 초가 불꽃이 되어 주께서 제 영혼을 뜨겁게 해 주시고,

    저에게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주시기를 바라옵니다.

    저는 주님의 교회에 오래 머무르지 못하지만,

    이 초를 놓아두면서 저 자신도 조금 놓아둡니다.

    그러면 매일의 생활 속에서 제가 좀 더 오래 기도할 수 있겠지요. 아멘

     

    피레네 산맥(佛: Les Pyrénées) 어느 작은 교회의 담벼락에 적혀 있는 기도

     

     
     

    십자가의 길 

     

     

     

    우물터

     

    예전에 이 동네는 강화도 외곽을 둘러쌓은 강화 외성(江華 外城)의

    6개 문루 중 하나인 '진해루(鎭海樓)'가 있던 곳입니다.

    강화와 육지를 오가는 배가 다니던 곳으로 많은 사람들이 살았고,

    왕래했다는 것을 반증하기라도 하듯 아직도 우물들이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순교자 세 분이 이곳에서 효수(集首) 당하신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효수형은 목을 잘라 긴 장대에 꽃아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 경계토록 하는 형벌이기 때문입니다.

     

     
     

    구 강화대교(舊 江華大橋)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갑곳리와 김포시 월곶면 성내리를 연결한 다리

    길이 694m, 폭 10m이다. 구 강화대교 1965년 7월에 착공하여 1970년 1월에 개통되었다.

    상부구조는 피시(PC) 거더교 형식이며, 하부구조는 반 중력식 기둥 15기로 되어 있다.

    이 다리가 생기기 전에는 김포 쪽 나루에서 밀물 때를 기다렸다가

    나룻배에 버스를 싣고 강화도까지 왕래했다.

    물살이 급해 사고가 잦았던 염하에 이 다리가 가설되자

    배로 30분 정도 걸리던 시간이 도로를 이용하여 3분으로 단축되었다.

    특히 강화 일대가 안보·사적관광지로 중요시되면서 지역발전에도 크게 기여했으며,

    서울 도심부까지의 소요시간도 1시간 30분 정도로 단축되었다.

    1997년 12월 새로운 강화대교가 준공되면서 이 다리는 폐쇄되었다.

     

     

     

    강화대교(江華大橋)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면 갑곶리와 경기도 김포시 월곶면 성내리를 잇는 다리

    1969년에 완공된 구교가 노후되어 전면 재시공을 통하여 1997년 완공하였다.

    1965년 7월에 착공하여 1969년 12월에 완공된 구교는

    폭 10m(차도 7m, 보도 3m), 교장 694m이고 1,386m의 접속도로가 연결되어 있었고,

    하부구조는 반 중력식 교각 15기(基)로 되었으며,

    상부구조는 PSC 거더교 형식의 16경간으로 구성되었었다.

    재시공된 다리는 폭이 19.5m(유효폭 18.5m), 교장이 780m로 확대되었고,

    최대경간장이 60m인 13개 경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상부구조는 강 박스거더(steel box girder)이고, 하부구조는 라멘식이다.

    종래 강화도에 가려면 김포 쪽 나루에서 만조가 되기를 기다려

    간만의 조위차(潮位差)가 8m에 이르렀을 때 버스를 나룻배에 실어 강화도로 건너갔는데,

    이 다리의 가설로 종전 평균 30분이 걸리던 도강 시간이 3분으로 단축되었다.

     
     
     

    염하강(鹽河江)

     

    강화와 김포 사이를 흐르고 있는 이 강은 보기엔 강물처럼 보이지만

    소금염(鹽) 자와 물하(河) 자를 쓰며, 사실은 바다인 강 같은 해협(海峽)이다.

    강화해협 또는 김포강화해협이라고도 한다.

    폭이 좁은 곳은 200~300m, 넓은 곳은 1km 정도이고 길이는 약 20km이다.

    옛날에는 한강으로 가려면 반드시 이곳을 거쳐서 가야 하는 전략적 요충지였으며,

    1950년 한국전쟁부터 2007년까지는 철저히 출입이 금지되고 통제되었었다.

    그래서 염하강 주변에는 수많은 외세의 침략과 일제 수탈에 맞서 싸웠던

    진(津), 보(堡), 돈대(墩臺)들이 곳곳에 많이 포진해 있고

    이곳 갑곶돈대도 그 역할을 하던 곳이었다.

    그 옛날 신앙의 선조들도 배를 타고 이곳의 거친 물살을 뚫고 신앙을 전파하였다.

     
     
     

    순교자들의 행적 증거자 박순집(베드로)의 묘

     

    박순집(朴順集) 베드로는 1830년 10월 9일 서울 남문 밖 전생서(典牲署, 현 용산구 후암동)에서

    순교자 박(朴) 바오로와 김(金) 아가다 사이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부모의 신앙을 이어받으면서 성장하였다.

    1839년 기해박해(己亥迫害) 때 새남터에서 순교하신 주교와 신부들의 시신을 수습하여 안장한

    부친 박 바오로는 아들인 박 베드로에게 이 사실을 알려준다.

    그리고 1866년 병인박해(丙寅迫害)가 일어나자 그는 아버지 박 바오로의 뜻을 이어 가기로 결심한다.

    그래서 박순지(朴順之, 요한) 등 몇몇 신자들과 함께,

    제4대 조선교구장이었던 베르뇌(Berneux 張) 외 많은 순교자들의 시신을 수습하여 이장하였다.

    그리고 3월 7일과 9일에 서소문 밖에서 순교한 남종삼(南鍾三, 요한)과 최형(崔炯, 베드로) 시신도

    신자들과 함께 찾아내어 안전한 곳에 안장하는 등, 순교자들의 시신들을 수습하는 데 최선을 다한다.

    이는 죽음을 각오한 순교자적 고귀한 희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로써 그는 우리 날 순교 역사의 증거자가 된다. 그로 인해 밝혀진 순교자의 행적은 150명이 넘어,

    그 순교자들의 유해를 우리가 직접 보고 조배를 드릴 수 있게 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제공하셨다.

    그 후 인천교구의 복음화를 위해 애쓰다가, 1911년 6월 27일 82세의 나이로,

    "예수 마리아 요셉"을 부르며 선종하였다.

     

     

     

    초(燭) – 그리스도교 상징

     

    초는 단순히 일상생활에서 유용하게 사용될 뿐만이 아니라 종교적 의미로,

    적어도 4세기 이래로 그리스도교의 표징이 되어 오고 있다.

    어둠을 밝히는 촛불은 어둠에서 빛으로 나아가는 길로서 인간의 실존에 비유되었다.

    아울러 어머니의 자궁에서 세상의 빛을 향해 나오는 출생, 또는 죽음에서

    영원한 빛으로 나아가는 두 번째 탄생이라는 의미도 있다.

    초는 신성한 빛과 불의 상징으로 교회의 전례 때마다 켜는데,

    흰색 밀랍으로 만들어져서 순결의 의미를 지닌다.

    초의 사용 용도와 그 개수에 따라 교회의 가르침은 상징적으로 나타난다.

    제대 위에 있는 성찬전례의 초들과 감실의 등은 교회의 끊임없는 기도를 의미한다.

    세 개의 초는 삼위일체를, 일곱 개의 초는 칠성사를,

    부활초는 부활시기에 부활한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꺼진 초는 죽음을 상징하기도 한다.

     

    - 윤인복 소화 데레사 교수(인천가톨릭대학교 대학원 그리스도교미술학과) -

     
     
     
     

    순교자 삼위비(殉敎者 三位碑)

     

    천주교 갑곶순교성지는 1871년 천주교인 우윤집(禹允集), 최순복(崔順福), 박상 손(朴尙孫)이

    갑곶돈대(갑곶 나루터)에서 효수(梟首)되었다는 문헌에 따라 

    천주교 인천교구에서 이곳을 성지로 조성하였다.

    이분들의 세례명, 후손, 생애 등의 기록은 없지만,

    온전한 믿음 그 하나를 지켜낸 것만으로도 많은 순례자들이

    이곳에서 위로를 받고 힘을 얻을 수 있는 성지가 된 것이다.

     

     

     

    갑곶순교성지(甲串殉敎聖地)

     

    미사 안내

    주일 – 11:00, 16:00

    토요일 – 11:00, 16:00(주일미사, 특전)

    월~금 – 11:00

    대표전화 032-933-1525

     

    갑곶순교성지 주보성인

    2014년 9월 19일 갑곶순교성지에서 '부평지구 순교자 현양대회'가

    교구장 최기산(보니파시오) 주교와 사제단의 공동집전으로 봉헌되었다.
    이날 미사에서 교구장님은 교황님이 직접 주례하신

    시복식의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중

    인천 출신의 심조이 바르바라(沈召史, 1813~1839)와 이 안나(1841~1867)를

    갑곶순교성지의 주보성인으로 선포하였다.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해안동로1366번길 35 (갑곳리) 천주교 갑곶순교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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