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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탑(韓國基督敎百週年記念塔)
    국내 나들이/기독교(基督敎) 2022. 1. 24. 19:12

    한국기독교 100주년 기념탑(韓國基督敎百週年記念塔)

    위치 : 인천광역시 중구 항동 1가 5-2

     
     

    세 개의 탑신은 성부, 성자, 성령을 의미하며 하늘을 향하여 한 점에서 만나는 모양은

    한국교회가 하나로 뭉쳐서 하나님께로 승화되는 것과 하나님의 뜻이

    온 누리에 퍼져 나갈 것을 바라는 한국 기독인들의 염원을 담고 있다. (높이 17m)

     
     
     
     

    기도문

     

    오늘 사망의 빗장을 부스시고 부활하신 주님께 간구하오니

    어두움 속에서 억압을 받고 있는 이 한국 백성에게 밝은 빛과 자유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 1885년 부활 주일에 -

     

     
     
     

    1885

     

    1885년 4월 5일 부활절에 아펜젤러(Appenzeller) 목사 부부와

    언더우드(Underwood) 목사가 선교를 위해 제물포항에 첫 발을 디뎠다.

     
     
     
     

    선교 100주년 기념탑 쉼터가 영원한 聖域(성역)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인천 중구청장

     
     
     
     

    유엔 한국참전국 9.28 수복기념 국제마라톤대회 출발점

    4292(서기 1959년)

     
     
     
     

    1885년 4월 5일 부활절,

    미국 선교사 아펜젤러 목사 부부와 언더우드 목사가 진리의 큰 빛,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생명을 걸고 이곳에 상륙하였습니다.

    그로부터 100년, 한국 개신교회는 신도 1천만을 헤아리는 놀라운 성장을 이룩하였으며,

    고난 속의 민족에게 구원의 안식처가 되었습니다.

    이제 그 백주년을 맞아 세 선교사의 뜻을 기리며,

    이곳에서 발원한 복음의 물결이 온 나라와 바다 건너 땅끝까지

    파도치기를 기원하면서 이 자리에 기념탑을 세웁니다.​

     

    선교 백주년 기념탑 보존회

     
     
     
     

    이 기념탑은 인천교회를 비롯한 성도들의 헌금과 기도에 힘 입어 이룩되고

    탑은 신동아건설에서 건립하고 탑문은 오리 전택부 장로가 짓고 홍덕선 장로가 쓰다.

     

    준공일 1986년 3월 30일

    인천 기독교연합회

    재단법인 한국기독교 100주년 기념사업협의회

     
     
     
     

    1884년 미국 감리교회의 맥클레이(Robert S. Maclay) 목사가 잠시 입국하여

    국왕으로부터 교육과 의료사업의 윤허를 받았으며

    미국 장로교회의 알렌 의사는 갑신정변 때의 공을 세움으로써 선교의 길을 열었다.

    이보다 8년 전부터는 만주에서 이성하(李成夏), 이응찬(李應贊), 백홍준(白鴻俊), 김진기(金鎭基),

    서상윤(徐相崙) 등이 잇따라 세례를 받고 성경번역에 동참하여 새로 나온 복음서를 가지고

    국내에 숨어들어 전도를 개시한 결과 1884년에는 의주와 소래에 평신도 교회가 서게 되었다.

    한편 일본에 가 있던 이수정(李樹廷, 1843-1886)이 1883년 세례를 받고

    성경번역을 시작함과 아울러 조국 선교의 필요성을 역설하여

    미국 교회는 아펜절러 목사와 언더우드 목사를 초대 선교사로 파송하게 되었다.

    그들은 일본에 들렀다가 이수정의 한글 성경을 가슴속에 품고

    1885년 4월 5일 부활절 날 이 부두에 상륙하였다.

    그들은 먼저 부활절날 여기에 도착하였음을 하나님께 고하고 사망의 장벽을 무너뜨리고

    부활하신 주께서 이나라 백성들을 온갖 얼매임에서 풀어주실 것과 그들에게 빛과 자유를 주사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실 것을 간절히 기도하였다.

    마침내 인천과 서울을 비롯한 여러 지방에 교회가 서기 시작하였다.

    이때 한국교회는 민족교육과 의료봉사와 미신타파를 우선 사업으로 책정 시행하였으며

    순 한글로 성경을 펴냄으로써 온 백성이 복음을 듣고 믿을 수 있게 하는 동시에

    새로운 겨레문화 창달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또한 나라가 주권을 빼앗길 무렵에는 성신강림의 은사를 받아 구령 구국운동에 나서

    망국의 한을 달래주었으며 강제로 한일합병이 된 이후에는 일제의 무단정치가

    강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3.1 독립운동을 주도하여 겨레의 받침대 두실을 다하였다.

    그 뒤 공산주의 반기독 세력과 퇴폐주의 사상의 와중에서 교회연합운동, 신앙 진흥운동,

    물산장려운동, 절제운동, 주일학교운동, 청년운동, 농어촌사업 등 선교사업을 다양화하였으며

    일제 말기에는 우리말과 글의 수호 운동, 신사 참배 강요에 대한 항거와

    순교로써 겨레와 교회의 양심 구실을 다하였다.

    8.15 해방 이후에는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새나라 건설운동,

    6.25 전란 이후에는 전쟁고아와 피난민 구호사업, 휴전 후에는 전국 복음화 운동,

    새로운 선교 방법으로서의 기독교방송과 군목 경목제도의 창설, 신앙의 토착화,

    교회사의 정립, 남녀 평신도운동, 청소년운동, 사회참여와 민주화 추진에도 기여하였다.

    이때부터 한국교회는 더욱 교세를 국내외에 과시하여

    종래의 받는 교회에서 벗어나 명실공히 주는 교회로 성장 발전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국토분단의 철벽을 허물어뜨리지 못한 채 공산 치하에서 신음하는

    북한 동포들을 위하여 안타까이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면서 이 탑을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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