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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터 선사공원
    국내 나들이/공원(公園)으로 2022. 7. 6. 20:04

    안터 선사공원

     

    안터 선사공원은 옥천의 선사시대 문화를 엿볼 수 있는 곳이다.

    안터 선사공원에는 고인돌 1, 선돌 1기가 있다.

    석탄리 고인돌은 안터마을에 있던 3기의 고인돌 중

    1977년 충북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한 안터 1호1 고인돌이다.

     

    충청북도 옥천군 동이면 안터136 (석탄리)

     
     
     

    석탄1리(안터)

     

     

     

     

    석탄리(안터) 마을 자랑비

     

    산수가 수려한 오봉산과 알봉산이 병풍처럼 둘러싸인 아늑한 안터에

    40여 가구 120여 명이 오순도순 살고 있는 석탄리 마을 자랑 비문을 새깁니다.

    1739년 기록에는 군동면(郡東面) 지석리(支石里)에 47호가 살았고

    1890년 지석리(支石里)에 36호가, 직탄리(稷灘里)에 2호가 살았다고 한다.

    그 후 1914년 4월 1일 행정구역 통합으로 동이면(東二面)이 새로 생기면서 동이면에 속하게 되었고,

    지석리(支石里)와 직탄리(稷灘里)를 합하였으며

    이때 지석리(支石里)의 석(石) 자와 직탄리(稷灘里)의 탄(灘) 자를 합하여

    석탄리(石灘里)라 부르게 되어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여기서 지석리(支石里)라 부르게 된 것은 선사시대에 속하는 청동기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의 무덤을

    고인돌이라고 하며 덮개돌인 개석(蓋石)을 받치고 있는 받침돌이 땅 위에 세워져 있어

    그 내부가 시체를 넣는 완부역할을 하고 있다.

    이와 같이 만들어진 것을 북방식 또는 탁자식 지석묘라고 한다.

    여기서 지석리(支石里)라 부르게 된 것이다.

    선돌은 마을 입구에 세워 재앙을 막는 수문신 또는 마을 풍농(豐農),

    평안을 지켜주는 수호신 역할을 한 신체(身體)로 믿어진다.

    그 형태는 커다란 화강석을 곧추 세운 장대형 자연석이며 청동기시대 큰 돌 문화재의 하나이다.

    선돌이 중간 부분에는 쪼으기 방법으로 지름이 90cm 되는 둥근원이 기하학적 무늬를 석각(石刻)하였다.

    이는 임산부를 나타낸 것으로 여겨져 생산신(生産神), 출산신(出産神)적 상징의 신앙 양상을 엿볼 수 있다.

    직탄리(稷灘里)는 피실 마을을 한자화(漢字化) 하면서 부르게 되었는데,

    피 직(稷)+여울 탄(灘) 피여울(稷灘)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이 석탄리(石灘里)는 한때 동이면(東二面)에서 가장 큰 마을이었으나,

    1978년 대청댐으로 인한 수몰로 거의가 타 지역으로 이주하고 작은 마을로 변하였다.

    자연마을로는 안터, 피실, 덩기미가 있었으나 피실과 덩기미는 수몰되어

    마을이 완전히 없어지고 안터 일부와 산얼기만 남아 있다.

    부모는 자식을 애이교지(愛以敎之)하고, 자식은 부모를 효이양지(孝以養之)하며,

    장유유서(長幼有序)와 붕우유신(朋友有信)이 이 마을에 살아 있음을 자랑삼아

    후대까지 이 뜻을 이어가고자 석탄리 마을비를 세운다.

     

    2006년 10월 4일 석탄리 주민 일동

     

     
     
     

    안터 선사공원

     

     

     

     

    옥천 석탄리(沃川 石灘里) 고인돌 – 충청북도 기념물

     

    고인돌은 선돌과 함께 선사시대의 큰 돌문화를 대표하며, 일본에서는 지석묘(支石墓),

    중국에서는 석붕(石棚) 또는 대석개묘(大石蓋墓), 유럽에서는 돌멘(Dolmen)이라 부른다.

    대부분 무덤으로 사용되었으나 공동 무덤을 상징하는 묘표석(墓標石),

    의식을 베푸는 제단(祭壇) 또는 기념물로 사용되기도 한다.

    이 고인돌은 석탄리 안터마을에 있던 서로 다른 형식의 3기 중 1977년 충북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한

    ‘안터 1호 고인돌’로 ‘선돌(안터 1호)’과 짝을 이루고 있으며,

    2009년에 이곳 안터 선사공원으로 이전 복원하였다.

    덮개돌(320×210×33~36cm)은 거북 모양의 화강암이며,

    판돌 4매를 짜 맞추어 무덤방(145×75cm)을 지상에 축조한 탁자식 고인돌이다.

    무덤방에는 주검(屍身, 시신)을 묻을 때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붉은 흙이 덩어리 상태로 깔려 있었다.

    이곳에서 빗살무늬토기, × 모양을 새긴 돌, 얼굴 모양의 예술품,

    가락바퀴, 그물추, 눈돌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출토된 유물을 볼 때 고인돌에 묻힌 사람은 여자이며, 축조시기는 신석기시대 후기로 추정된다.

    위치 : 충청북도 옥천군 동이면 석탄리 944번지

     

     
     
     

    옥천 석탄리 선돌(沃川 石灘里 立石) - 충청북도 기념물

     

    선돌(立石)은 자연석이나 손질한 자연석을 새워 놓고 신앙의 대상으로 삼은 것으로 입석, 선바위,

    수구맥이, 탑, 미륵 등으로 불리기도 하며 선돌 형태에 따라 남성형과 여성형으로 구분되기도 한다.

    이 ‘안터 1호 선돌’은 안터 1호 고인돌(支石墓)에서 남동 방향으로 210m 떨어져

    고인돌 무덤방 방향과 일치하는 일직선상에 세워져 있었으며,

    2009년에 이곳 안터 선사공원으로 이전 복원하였다.

    전체 크기는 260×92×54cm이며 지상에 드러난 길이는 195cm이다.

    선돌 밑부분은 대칭으로 손질하여 고임돌을 받쳤고,

    선돌 밑부분에서는 선돌을 세울 때 쓰인 버팀나무 구멍 8개가 확인되었다.

    선돌 아래쪽에는 쪼으기 수법으로 지름 90cm의 원을 만들어,

    선돌 전체를 임신한 여성의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이 선돌은 안터 1호 고인돌에 묻힌 사람을 나타내는 기념비적 기능과 무덤 수호(墓守護)의

    기능을 지닌 것으로 보이며, 안터 1호 고인돌과 같은 시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안터마을에는 여러 형식의 고인돌과 많은 선돌이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어

    이 마을은 큰 돌문화(巨石文化) 중심지로 여겨진다.

    위치 : 충청북도 옥천군 동이면 석탄리 944

     
     
     
     

    반딧불이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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