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유형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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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유형문화재, 온온사(穩穩舍)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2. 3. 20. 21:05
과천현 객사 건물인 온온사(穩穩舍) 건물은 정청 3칸, 양쪽에 동.서헌 3칸씩 두고 있는 전형적인 조선시대 객사 건물이다. 과천현 관아건물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건물로 정조가 화성행차 시 머물렀기 때문에 행궁 역할도 했던 건물이다. ‘온온(穩穩)’은 경관이 아름답고 몸이 편안하다는 뜻인데, 정조 14년(1790) 왕이 수원 현륭원에 참배하고 돌아오던 길에 이곳에 머무르면서 과천 동헌을 ‘부림헌(富林軒)’, 이곳을 ‘온온사(穩穩舍)’라 이름짓고 친히 편액을 썼던 것에서 유래한다. 온온사(穩穩舍) 온온사는 국왕을 상징하는 궐패를 모시는 정청(正廳)으로 정청에는 ‘온온사(穩穩舍)’라고 적힌 현판이 걸려 있다. 정조는 화성 현륭원을 참배할 때 이곳 과천현 관아에 머물면서 객사 이름을 ‘온온사’라 짓고 친필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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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유형문화재, 명성황후 생가(明成皇后 生家)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2. 3. 16. 21:12
경기도 유형문화재, 명성황후 생가(明成皇后 生家) 이 집은 조선 고종(高宗, 1852~1919, 재위 1863~1907)의 비 명성황후가 태어나서 여덟 살 때까지 살던 집이다. 명성황후는 민치록의 딸로 철종 2년(1851)에 태어나 열여섯 살에 왕비가 되었다. 그 뒤 고종의 정치적 동반자로 개화정책을 주도해 나가다가 고종 32년(1895) 을미사변 때 일본인에 의해 살해되었다. 능은 청량리에 있었다가 1919년 고종황제가 세상을 떠나자 경기도 남양주의 홍릉에 합장되었다. 명성황후 생가는 숙종 13년(1687)에 처음 지어진 집으로, 그 당시 건물로는 안채만 남아 있다. 1996년에 안채를 수리하고 행랑채와 사랑채, 별당채 등을 지어 원래 모습을 되찾았다. 명성황후 생가는 조선 중기 살림집의 특징을 잘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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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황후 탄강 구리비(明成皇后 誕降 舊里碑)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2. 3. 10. 19:11
明成皇后誕降舊里(명성황후탄강구리) 탄강(誕降)은 임금이나 성인(聖人)이 세상에 태어났음을 말하고, 구리(舊里)는 고향이라는 뜻으로, 명성황후 탄강 구리는 명성황후께서 태어나신 옛 마을이란 뜻이다. 光武 八年甲辰五月日 排手飮涕敬書(광무 팔년갑진오월일 배수음체경서) 1904년 5월 어느 날 두 손을 맞잡고 절하며 눈물을 머금고 공경히 쓰다. 경기도 유형문화재, 명성황후 탄강 구리비 경기도 유형문화재, 명성황후 탄강 구리비(明成皇后 誕降 舊里碑) 명성황후 탄강 구리비는 명성황후(明成皇后, 1851~1895) 탄생을 기념하기 위해 고종 41년(1904) 명성황후 고향 집에 세운 비(碑)이다. 이 비가 있는 곳은 명성황후가 어린 시절 공부하던 별당이 있던 자리라 한다. 명성황후는 조선 철종 2년(1851) 태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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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준길 서첩 – 민기 묘표, 신도비(宋浚吉 書帖 - 閔機 墓表, 神道碑)국내 나들이/박물관(博物館) 2022. 1. 5. 22:17
송준길 서첩 – 민기 묘표, 신도비(宋浚吉 書帖 - 閔機 墓表, 神道碑) 경기도 유형문화재 조선 현종 대의 대학자인 동춘당(同春堂) 송준길(1606~1672)이 해서(楷書)로 쓴 경주부윤(慶州府尹) 민기(1568~1641)의 묘표 앞면과 신도비문의 원고를 모아 편집한 서첩이다. 송준길의 글씨는 대자(大字) 해서로 남아 있는 것이 매우 드물며, 신도비문 원고는 글자를 새기기 전에 옮겨 쓴 표격지를 그대로 잘라 장첩하여 더욱 주목된다. 또한 민기의 손자인 민시중(閔蓍重, 1625~1677)의 인장(閔蓍重藏, 민시중장)이 찍혀있어 소장 내력을 알 수 있다. 동춘당과 우암 송시열은 송설체(松雪體)와 한석봉체(韓石峯體)의 토대 위에 안진경체(顏眞卿體)의 두터운 맛을 가미시킨 양송체(兩宋體)를 함께 창안함으로써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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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유형문화재 – 곡운희묵(谷雲戱墨)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1. 11. 29. 21:13
경기도 유형문화재 – 곡운희묵(谷雲戱墨) 숙종대(肅宗代)의 문신인 곡운 김수증(金壽增, 1624~1701)이 1691년(숙종 17) 대자 예서와 작은 예서 그리고 행초서로 유교 경전의 명구(名句)와 중국 유학자들의 어구(語句)를 다양한 색종이에 써서 만든 서첩이다. 곡운의 보기 드문 진적 서첩으로 17세기 서예사 연구의 귀중한 예로 평가된다. 앞표지 표제는 전서로 ‘곡운희묵’이라 쓰여 있다. 첩의 말미에 해서로 1691년 6월 상순에 썼다고 되어있으며, ‘곡운만옹서(谷雲漫翁書)“라 서명한 후 ’곡운(谷雲) 야화제조일반춘(野花啼鳥一般春)‘ 인장 2방을 찍었다. 곡운은 예서를 깊이 연구하여 완전히 해서화(楷書化)된 조선적 예서를 창안하였다.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창룡대로 265 (이의동) 수원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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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사 박종보어찰첩(正祖賜 朴宗輔御札帖) - 경기도 유형문화재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1. 11. 19. 21:21
정조사 박종보어찰첩(正祖賜 朴宗輔御札帖) - 경기도 유형문화재 정조가 박종보에게 보낸 어찰첩 정조가 처남인 박종보(朴宗輔, 1760~1808)에게 보낸 친필 어찰 19통을 노랑색과 분홍색의 고급 색지를 사용해 궁중 장황으로 꾸민 중요한 어찰첩이다. 내용은 정조가 박종보의 안부와 궁궐 출입 여부를 묻거나 하사한 선물의 목록이 대부분으로 처남인 박종보와 매우 친밀한 사이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박종보는 정조의 후궁이자 순조의 생모인 수빈박씨(綏嬪朴氏, 1770~1822)의 큰 오라버니이다. 수빈박씨는 1787년(정조 11) 2월 8일에 삼간택에서 정조의 빈(嬪)으로 정해졌다. 박종보의 본관은 반남(潘南)으로 아버지는 판돈령부사 박준원(朴準源, 1739~1807)이며, 어머니는 증(贈) 이조참판 원경유(元景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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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 칠장사 대웅전(安城 七長寺 大雄殿) - 보물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1. 7. 13. 04:07
안성 죽림리 삼층석탑(安城 竹林里 三層石塔) - 경기도 유형문화재 원래 죽산면 지역 폐사지에 방치되어 있던 몇 개의 부재를 모아서 복원한 것을 2005년 11월 칠장사 대웅전 앞으로 옮겨 세운 것이다. 전체 높이 363cm로 기단부는 단층이고 지대석은 상면에 호각형(弧角形)의 2단 괴임을 마련하였다. 탑신부는 3층을 이루고 있는데 옥개석(屋蓋石; 석탑이나 석등 따위의 위에 지붕처럼 덮은 돌)은 다른 석탑의 부재를 사용하였다. 1층 탑신석은 2매의 석재로 결구했는데, 문비(門扉)가 있는 부재는 가까운 밭에서 출토된 것을 옮겨온 것이고 다른 부재는 새롭게 보강한 것이다. 문비는 감실형태로 세로로 선을 그어 문을 표현하고 좌우에 원형 고리를 조각했다. 옥개석은 일부가 파손되기는 하였지만 1층부터 3층까지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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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장사 소조사천왕상 -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15호국내 나들이/사찰(寺刹), 불교(佛敎) 2021. 7. 11. 04:11
칠장사 소조사천왕상(七長寺 塑造四天王像) -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15호 사천왕이란 불교 세계의 동서남북 사방을 지키는 수문장으로, 부처와 불교 진리를 지키는 수호신으로 받아들여졌다. 칠장사 사천왕상은 나무로 뼈대를 만들고 진흙을 붙여 채색한 소조불(塑造佛)이다. 얼굴에는 불거져 나온 부릅뜬 눈, 잔뜩 치켜 올린 검은 눈썹, 크게 벌어진 빨간 입 등 두려움을 주는 얼굴에 손에는 큼직한 칼 등을 들고, 발로는 마귀를 밟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조선 후기 사천왕상의 또 다른 특징 하나는투구 대신 보살이 쓰는보관을 쓴다는 점으로, 칠장사 사천왕상의 보관은 꽃과 구름, 불꽃무늬로만 장식해 단순한 편이다. 아마도 사천왕상의 험상궂은 느낌을 누그러뜨려 자비롭고 온화한 느낌을 주려는 뜻이 담긴 듯하다. 갑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