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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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서문(華西門) - 보물 제403호수원사랑/수원화성(水原華城) 2020. 8. 27. 04:53
현판은 화성 축성의 총책임자였던 채제공이 썼으나 원본이 남아 있지 않다. 화서문 축성 시 공사 실명판 각자(刻字) 화서문 실명판 각자는 석질이 좋지 않고 풍화에 마멸이 심해 흐릿하게 볼 수 있다. 別監董前府使 金處漢, 牌將僉使 金泰瑞, 閑良 尹鎭黙, 石手 朴尙吉 (별감동전부사 김처한, 패장 첨사 김태서, 한량 윤진묵, 석수 박상길) 1953년 화서문과 서북공심돈 1960년대 화서문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 화서문 외도와 화서문 내도 보물 제403호 화서문 표석 정리의궤 화서문 내도(整理儀軌 華西門 內圖) 산상 서성(山上 西城) 산성 서성은 화성을 축성하면서 네 구간으로 나눈 성벽 가운데 팔달산을 낀 경사지에 쌓은 서쪽 성곽을 말한다. 서장대를 중심으로 팔달산 정상에서 남북으로 펼쳐지는 성벽 구간에 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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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팔달문(八達門) - 보물 제402호수원사랑/수원화성(水原華城) 2020. 8. 19. 04:57
수원 팔달문(八達門) - 보물 제402호 팔달문은 수원 화성의 남문이다. 정조는 팔달(八達)의 의미를 ‘산 이름이 팔달이어서 문도 팔달이며, 사방팔방에서 배와 수레가 모인다.’는 뜻으로 풀이했다. 팔달문 주변은 삼남 지방으로 통하는 길목이어서 화성 축성 전에도 사람들의 발길이 잦았다. 장안문과 마찬가지로 문 밖에 항아리 모양의 옹성(甕城)을 만들고 방어를 위해 좌우에 적대를 세웠다. 규모와 형식은 장안문과 같다. 1794년 2월 28일 장안문과 같은 날에 터 닦는 일을 시작했지만 대체로 장안문보다 공정별로 약 1주일 늦게 완성하였다. 강원도 출신 목수 윤사범이 다포(多包)를 짜 맞추는 일을 담당했는데, 이 목수는 훗날 창덕궁 인정전을 짓는 공사를 담당해 근 100년 만에 화성에서 재현했던 다포 건축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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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각루(방화수류정) - 보물 제1709호수원사랑/수원화성(水原華城) 2020. 8. 4. 04:41
동북각루(방화수류정) - 보물 제1709호 동북각루는 화성 동북쪽 요충지에 세운 감시용 시설이다. 용두(龍頭) 바위 위에 각루를 우뚝 세워 주변을 감시하고 화포를 쏠 수 있도록 했다. 군사시설이지만 아름다운 연못(龍池)과 함께 경치를 즐기는 정자로 많이 쓰였다. 정자의 별칭은 방화수류정(訪花隨柳亭)이다. 정조는 이를 ‘현륭원(顯隆園)이 있는 화산(花山)과 수원 읍치를 옮긴 땅 유천(柳川)을 가리키는 뜻’이라고 풀이했다. 방화수류정에는 온돌방 한 칸이 있었다. 보통 군사들의 휴식을 위해 각루 1층에 온돌방을 만들었는데, 방화수류정에는 임금을 위해 2층에 온돌방을 두고 창문을 설치했다. 조선 정조 21년(1797) 정월, 정조는 방화수류정에서 활쏘기를 하고,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를 읊은 시를 지었다. 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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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동치(北東雉) - 사적 제3호 화성수원사랑/수원화성(水原華城) 2020. 7. 26. 21:20
북동치(北東雉) - 사적 제3호 화성 북동치는 장안문 동쪽 북동적대에 붙여서 세운 치성이다. 치성은 성벽의 바깥으로 덧붙여 쌓은 시설로, 성벽 가까이에 적을 감시하고 공격하는 역할을 했다. 성벽에 8곳, 용도에 2곳의 치성이 설치되어 있는데, 지형에 따라 형태가 조금씩 다르다. 북동적대 위치에서 성곽이 급하게 꺾이기 때문에 북쪽을 방어하기 위해 적대에 치를 붙였다. 북동치는 장안문을 지키는 중요한 위치이므로 가장 크게 치성을 만들고, 적을 감시하고 공격할 수 있는 총안과 타구를 설치했다. * 1796년(정조 18) 창건, * 1969년 수리 * 타구(垜口) : 성벽 위에 낮은 담장인 여장(女牆)과 여장사이의 열린 부분.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영화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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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장대(東將臺) - 사적 제3호 수원 화성수원사랑/수원화성(水原華城) 2020. 7. 23. 04:43
동장대는 장수가 군사훈련을 지휘하던 곳으로 연무대(鍊武臺)라고도 불린다. 연무대 앞 하마석 불랑기(佛狼機) 불랑기란 화포의 명칭이 아니라 ‘포르투갈’이란 나라명이다. 중국 명나라 무종(武宗) 정덕(正德 1506~1521)년간 광동성에 출현했던 포르투갈 함선에 비치되었던 이 화포는 동(銅)으로 주조 되었으며, 길이는 5~6척(1.5~1.8m)이고, 큰 것은 천여근, 작은것은 50여근 이다. 사거리는 약 3km에 달했으며, 구조상의 가장 큰 특징은 화포(母銃, 모총)에 큰 구멍이 있고, 그 속에 소총(子銃, 자총) 다섯개를 번갈아 가면서 한 개씩 삽입하여 돌아가면서 사격할 수 있게 제조되었다. 그 형체는 전체에 비하여 몸통이 길고 포구 쪽이 가는 형이며, 자포가 삽입되는 장전처는 장방형으로 포구쪽으로 통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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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공심돈(東北空心墩) - 사적 제3호 화성수원사랑/수원화성(水原華城) 2020. 7. 20. 21:26
동북공심돈(東北空心墩) - 사적 제3호 화성 동북공심돈은 화성 동북쪽에 세운 망루로 주변을 감시하고 공격하는 시설이다. 공심돈은 속이 빈 돈대라는 뜻으로, 우리나라 성곽 중 화성에서만 볼 수 있다. 보통 돈대(墩臺)는 성곽과 떨어진 높은 곳에 세워 적을 감시하는 시설이나 동북공심돈은 성벽 안쪽에 설치했다. 외벽에는 밖을 감시하고 화포로 공격할 수 있는 구멍을 곳곳에 뚫었다. 공북공심돈은 3층으로 이루어진 원통형의 벽돌 건물로서 출입문에서 통로를 따라 빙글빙글 돌아가면 꼭대기 망루에 이르는 구조다. 이 모습을 빗대서 ‘소라각’이라고 부른다. 정조 21년(1797) 정월, 좌의정 채제공은 동북공심돈을 올라가 본 뒤 “층계가 구불구불하게 나 있어 기이하고도 교묘하다.”며 감탄했다. 한국전쟁을 겪으며 절반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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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포루(東一鋪樓) – 사적 제3호 화성수원사랑/수원화성(水原華城) 2020. 7. 17. 19:46
동일포루(東一鋪樓) – 사적 제3호 화성 동일포루는 창룡문 남쪽에 있는 치성 위에 군사들이 머물 수 있도록 누각을 지은 시설이다. 화성에는 모두 15곳의 치성이 있는데 그중 중요한 5곳의 치성 위에 동일포루, 동이포루, 서포루, 북포루, 동북포루를 만들고 적의 동향을 감시했다. 동일포루는 지형이 평탄하고 조망이 트인 곳에 있어서 적의 움직임을 잘 살필 수 있는 구조로 만들었다. 치성을 길게 내밀었으며, 다른 포루와 달리 기둥 사이에 벽을 치지 않고 사방을 개방했다. * 1796년(정조 20) 창건, *1979년 복원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남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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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룡문(蒼龍門) - 사적 제3호 화성수원사랑/수원화성(水原華城) 2020. 7. 16. 19:33
산상 동성(山上 東城) 산상 동성은 화성을 축성하면서 네 구간으로 나눈 성벽 중에 완만한 경사지를 낀 동쪽 성곽이다. 네 구간 중에 길이가 가장 짧다. 동문인 창룡문을 중심으로 북쪽은 동북노대에서 동북각루(방화수류정)까지, 남쪽은 동일포루에서 동남각루까지 모두 16개의 시설물을 아우른다. 이곳은 지형이 완만하게 경사를 이루다가 동북공심돈에서 가장 높아지는데, 특히 창룡문에서 동남각루 사이는 일(一)자에 가까워 풍수에서 일자문성(一字文星)이라 불린다. 동성 구간에서 눈여겨볼 시설은 벽돌로 쌓은 원통형의 동북공심돈과 동북쪽 성 안쪽 평탄한 곳에 자리잡은 동장대, 용두 위에 우뚝 서 있는 동북각루(방화수류정)와 봉화를 피워 주변과 통신을 하던 봉돈이다. 창룡문(蒼龍門) - 사적 제3호 화성 창룡문은 수원 화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