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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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자랑스러운 장성군민의 탑, 꽃과 새 (Flower & Bird)일상생활속에서/작품속으로 2020. 7. 21. 21:28
21세기 자랑스러운 장성군민의 탑 작품의 주제는 인간과 자연의 슬기로운 조화를 통하여 아름답고 살기좋은 삶의 터전을 후손에게 물려주고자 하는 의미를 조형의 근본으로 상징화 하였다. 꽃과 새 (Flower & Bird) 꽃, 생명의 첨병, 철갑을 뚫고 나와 수줍은 미소 띄우다. 꽃, 무지개의 칠색무, 구름, 바람, 소나기 친구들과 지혜르 거루다. 꽃, 나들이 웃음 거두고 찬연히 떨어지다. 황금괴실 가득 시렁에 담아 그대를 그리워하다. 홍악대학교미술대학 교수 변건호 전라남도 장성군 장성읍 기산리 장성군청소년수련관 앞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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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 황룡전적(長城 黃龍戰蹟) - 사적 제406호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0. 7. 20. 19:11
1894년의동학농민혁명은 반외세의 자주독립과 반봉건의 민주화를 지향한 우리 나라 근대사의 서막이요 민족 민주 운동의 단서였다. 장성 황룡싸움은 바로 이 동학농민혁명에서 농민군이 대포 등 신무기로 무장한 서울의 정예부대를 격파하고 전주를 쉽게 점령할 수 있었으며 왕의 군대를 무찔러 혁명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싸움에서 전봉준 장군이 이끄는 동학농민군은 대나무를 원통형으로 엮어 만든 장태라는 신무기를 굴려 총알을 막으면서 관군에 육박하여 선봉장 이학승을 죽이고 대포 2문과 양총 100여 정을 빼앗는 대승을 거두었다. 우리는 민족과 국가를 위해 농민대중이 일으킨 동학농민혁명에서 가장 빛나는 이 싸움의 의미를 되새기며 그 정신을 계승 발전시키고 이를 영원히 기념하고자 우리 모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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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 박수량 백비(長城 朴守良 白碑) - 전라남도 기념물 제198호국내 나들이/능, 원, 묘(陵 園 墓) 2020. 7. 16. 04:15
자헌대부 의정부 우참찬 정혜 박공 신도비(資憲大夫 議政府 右參贊 貞惠朴公 神道碑) 전서는 의정부 우찬성 이용원이 썼다. 신도비가 세워진 때는 정해 3월이다. 정해년은 서기로 환산하면 1887년이다. 신도비는 경연관 서연관 송병선이 글을 짓고 공조판서 겸 의금부사 최익현이 글씨를 썼다. 아곡 박수량 묘비 박수량은 별세 후 250년이 지난 1805년에 정혜공이란 시호를 받았고, 묘비는 박수량 사후 330년 지난 1888년에 세워졌다. 묘지 비문은 읽기 어려울 정도로 부분적으로 훼손이 심하지만, 끝에 하서 김인후(河西 金麟厚)의 이름이 남아 있어 하서가 쓴 묘지명임을 알 수 있다. 조선의 청백리 제도 청백리란? 유교문화권에서 깨끗한 공직가를 지칭할 때 사용하는 말로 조선시대에 특별히 국가에 의해 선발되어 청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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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산재(狐山齋)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0. 7. 15. 21:44
호산재(狐山齋) 호산재는 밀성박씨(密城朴氏) 시조(始祖) 밀성대군 휘 언침(密城大君 諱 彦忱)의 8세손 휘 언상(諱 彦祥) 도평의사(都評議事)를 지내신 후예(後裔) 돈재공파(遯齋公派)의 시향(時享)과 대소종사(大小宗事)를 논의하는 재실(齋室)로 1898년~1912년간 선조(先祖)님들의 노고(勞苦)로 이곳에 재실을 건립하였으나 1950년 6. 25 한국전쟁 당시 소실되어 1955년~1959년까지 5년여 기간에 걸쳐 노고와 협조로 화재를 피하기 위해 돌로 완공시킴. 향사위(享祀位) : 의재공 승봉(承奉), 사정공 덕명(德明), 문아(文雅), 현손(賢孫), 종원(宗元), 보헌공 정종(貞宗), 하남처사 수온(守溫), 시 정혜공 수량(諡 貞惠公 守良), 근재 맹손(孟孫) 밀성박씨 돈재공파 대종중 전라남도 장성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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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암서원 확연루(筆巖書院 廓然樓) - 세계유산 ‘한국의 서원’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0. 7. 13. 19:53
필암서원 확연루(筆巖書院 廓然樓) - 세계유산 ‘한국의 서원’ 필암서원 입구의 문루(門樓)로 서원을 넘나드는 사람들에게 진리추구의 엄정함으로 압도할 뿐만 아니라 네 귀퉁이에 조각된 귀공포(龜供包)는 엄숙하면서도 고졸(古拙)한 맛을 풍긴다. 편액은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의 글씨다. 규모 : 2층 18칸 13평 하서 김인후(河西 金麟厚, 1510 ~ 1560)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로 자는 후지(厚之), 호는 하서(河西)이며, 시호는 문정(文正)으로 본관은 울산(蔚山)이다. 의릉참봉 김령(金齡)의 아들로 장성 맥동 출생이다. 10세 때 호남관찰사로 내려왔던 김안국을 찾아가 『소학』을 배웠다고 하며 이어 송순에게도 학문을 배웠다. 18세인 1527년 화순에 귀양와 있던 신재 최산두를 찾아가 수학하였다. 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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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학승 순의비(李學承 殉義碑) - 사적 제406호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0. 7. 10. 22:45
이학승 순의비(李學承 殉義碑) 증좌승지이공학승순의비(贈左承旨李公學承殉義碑) 1897년 면암 최익현이 지음 장성 황룡전적(長城 黃龍戰蹟) - 국가 사적 제406호 이곳 장성 황룡전적은 고종 31년(1894) 반봉건, 반외세의 정신으로 일어선 동학농민군이 최초로 정부에서 파견된 경군(京軍)에 승리한 동학 농민혁명의 최대 격전지이다. 황룡전투는 전봉준의 동학농민군이 고창, 영광, 함평을 차례로 점령한 후, 전라도의 수도이자 이씨왕조의 태생지인 전주를 점령하기 위하여 이학승이 이끄는 경군과 일대 접전을 벌였던 전투이다. 1894년 갑오농민혁명에 동학군이 호남에서 항쟁할 때 조정에서 홍계훈을 차출하여 초토사로 삼아 장차 병력을 치려하였다. 이학승 공이 장위영대관으로 종군하여.영광에 머물렀다. 동학군 수 만 명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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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양사(白羊寺) 백학봉(白鶴峰)과 쌍계루(雙溪樓) - 국가지정 명승 제38호국내 나들이/명승(名勝) 2016. 4. 4. 07:01
백양사(白羊寺) 백학봉(白鶴峰)과 쌍계루(雙溪樓) - 국가지정 명승 제38호 "백양사 백학봉과 쌍계루"는 1400여 년의 역사를 간직한 백양사. "대한8경"이라 불리는 연못에 비친 단풍든 백학봉과 쌍계루의 아름다운 경치, 비자나무와 백양꽃 등 다양한 자연환경을 간직하여 2008년 2월 5일부터 국가에서 명승(名勝)으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하얀 학이 날개를 펴고 있는 모양의 백학봉은 백양사, 운문암, 약사암, 천진암 등을 품고 있고, 육당 최남선은 "흰 맛, 날카로운 맛, 신령스러운 맛이 있다."라고 칭찬했다. 호남지역에 재난이 발생되면 나라의 태평과 백성의 안녕을 기원하며 하늘에 제사 지냈던 국기단(國祈壇)에서 매년 백양단풍축제 때에 국태민안을 바라는 "백암산 국기제"가 열리고 있다. 운문암 계곡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