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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살에 진리를 깨우쳤다는 설악산(雪嶽山) 오세암(五歲庵)국내 나들이/사찰(寺刹), 불교(佛敎) 2008. 10. 25. 06:17
다섯살에 진리를 깨우쳤다는
설악산(雪嶽山) 오세암(五歲庵)에서...
오세암은 설악산 내설악의 대한불교 조계종 백담사에 딸린 암자이다.
신라시대 선덕 여왕때 자장이란 선사님께서 지을 당시에는 '관음사'라고 했는데,
나중엔 인조때 설정스님께서 중건해서 '오세암'이라고 바꿨다고 한다.
오세암 전설은 설정스님이 계실때의 이야기인데, 전설내용에 의하면
나중에 다섯살의 어린애가 관음보살을 열심히 찿아 성불 한다는 내용이다.
그 당시 나이가 다섯살이었고. '다섯살에 진리를 깨우쳤다' 고 하여
오세암(五歲庵)이라는 이름이 붙혀졌다고...
오세암 가는 길은 멀고도 험한 길이다. 그러나 우리가 맺었던 천년의 인연이 있었기에 이 길을 갈 수 가 있다.
태어나고 죽음이 모두 인연에 의해 윤회하는 윤회의 법을 아는 분들이 편안히 찿아 올수 있는 곳이다.
설악산 오세암 연혁
예전에 금당이던 건물로, 중앙 1칸을 관음보살좌상을 모신 법당으로 쓰고 나머지 칸은 요사로 사용하고 있다.
건물 앞에는 '五歲庵(오세암)편액'이 걸려 있다. 법당에는 금동 관음보살좌상과 신중탱이 봉안되어 있다.
천수천안 관세음보살(千手千眼觀世音菩薩)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은 불교의 보살이다. 영어 표기는 산스크리트어 발음을 그대로 쓴 것이다.
원래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은 산스크리트어로 아바로키테슈바라(Avalokiteśvara)인데,
중국에서 음번역을 하지 않고, 뜻번역을 하여 관세음보살이 되었다. 나중에 새로 번역한 것이 관자재보살이다.
원래 아바로키테슈바라는 관자재보살이 더 원 뜻에 맞는 번역이라고 한다.
사람이 5욕(시각,미각,청각,후각,촉각의 5번뇌) 7정(기쁨,분노,슬픔,즐거움,절망,부끄러움,욕망의 7번뇌)의
덩어리이니 이 혹덩어리를 버릴 수 있다면.... 이곳, 오세암에서 몸을 깨끗이 씻어 보시길...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 설악산 만경대 아래에 있는 오세암(五歲庵)은 백담사의 산내 암자이다.
백담사에서 약 10㎞ 지점, 영시암을 거쳐 마등령 고개 길로 가노라면 오세암이 있다.
뒤로는 관음봉이 병풍처럼 외호하고 오른쪽에는 만경대가 굽어보고 있다.
앞으로는 용아장성릉이 삿된 기운을 막는 듯 오세암을 안고 있다.
오세암이 창건 된 것은 644년(신라 선덕여왕 13) 자장 율사에 의해서다.
이곳에서 관음보살의 진신을 친견한 자장 율사가 절을 창건하고 관음보살이
언제나 상주하는 도량임을 나타내기 위해 관음암(觀音庵)이라 부른 것이 오세암의 시초다.
생육신의 한 사람인 김시습도 1445년(조선 세조 1) 여기서 출가했다.이후 오세암은 허응당 보우(虛應堂 普雨) 스님에 의해 크게 중건되고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1548년(명종 3) 금강산에서 수도하다가 불교중흥의 큰 뜻을 품고 이곳에서 기도하던 보우 스님이
문정왕후에 의해 선종판사로 발탁되고 난 직후 암자를 중건한 것이다.
오세암은 관음기도도량이기도 하지만 김시습으로 널리 알려진 설잠(雪岑)과 만해 한용운 스님이
거(居)했던 곳이기도 하다. 영험이 가득한 오세암은 영험이 가득한 도량이라고 할 수 있다.
오세암은 영험있는 기도도량으로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1865년(고종 2) 남호(南湖) 스님은 해인사 대장경 2질을 인출하여 한 질은 오대산 사원사에, 한 질은 오세암에 봉안하였다.
1898년에는 인공(印空) 스님의 주도로 만일염불회(萬日念佛會) 도량이 되어 무려 18년 동안이나 염불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이외에도 몇 번의 중수를 거쳐 사격을 일신했던 오세암은 한국전쟁 때 거의 모든 당우(堂宇)가 소실되고 말았다.
그 뒤 1992년 지우스님이 대웅전을 중건하여 백의관음보살상을 봉안하고 산신각, 요사채 등을 세워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설악산 오세암 사적비 (雪嶽山 五歲庵 寺蹟碑)
설악산 오세암은 신라 제27대 선덕여왕 12년 계묘년에 자장율사께서 관음조의 안내를 받아
관음봉 아래에 초암을 짓고 관음진신을 친견하고서 관음암을 창건하시니
관음진신의 상주처요 해동제일선원으로 수많은 고승 대덕스님 들이 수도정진하였다.
고려때 설정대사가 암자를 중수하고 어린 조카를 데려와 양육하던 중 한 해 겨울양식을 구하러 간 사이
폭설이 내려 어린 조카가 혼자서 겨울을 나면서 관세음보살을 친견하고 견성득도한 후로 오세암 이라 개칭하였다.
조선 세조 원년에 매월당 김시습(설잠대사)이 세상을 피하여 설악산 오세암에 은거하다가 삭발 출가하고 법화전등염송을 수지 독성하였다.
조선 명종5년 경술에 허응당 보우선사가 이 암자에서 견성득도 하니 도백이 조정에 천거하여 선교 양종 판사가 되었다.
이 후 승과를 시행하고 승려도첩을 발급하여 불교를 크게 중흥시켰다.
원치 원년 갑자에 철원 보개산 심원사의 남호 율사가 해인사에서 팔만대장경 일부 오십괘를 배로 싣고 와서 이곳 오세암에 봉안하였다.
** 21년 무자에 백하선사가 이층전각 응진전 육간을 준공하고 십육나한과 사성팔부 등의 탱화를 조성 봉안하였다.
인공선사가 호서 마곡사로부터 와서 암자를 중수하고 미타만일회를 창설하여
7~8인이 밤낮으로 동수정업하고 지구서방하기를 무릇 18년이나 하였고
구한말에는 만해 한용운 선사가 이 암자에 주석하면서 "십현담주해"와 "님의침묵" 등을 저술하였다.
6.25 동란으로 소실된 것을 1968년 도윤스님이 인법당 15간을 중수하였다.
1988년 지우.영진.정념 세 스님이 입지발원하여 6년간에 걸쳐 신남신녀들의 원력을 모아
천진관음보전 대법당 15간 40평 요사채15간 35평을 중수하였다.
1992년 임신년에 도형 자일 명오 세 스님이 7년간의 봉정암 대작불사를 회향하고
이 암자에와서 법당, 요사, 닷집, 석등, 단청 등의 불사를 회햘하면서 이 기록을 남겨
이 도량이 천만년 유구하고 불사 동참 불자들과 이 도량을 참배하는 사부대중들의 소구소망이
불보살의 가피력으로 성취되기를 기도하며 후세불자들에 우리의 불심을 전하고자 이 비명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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