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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본 신(神)의 축복을 내린 나라 "뉴질랜드 남섬" ...해외 나들이/뉴질랜드(新西蘭) 2009. 1. 5. 22:05
하늘에서 본 신(神)의 축복을 내린 나라 "뉴질랜드 남섬"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나라.
대기중에 오염이 없어 자외선이 강한나라, 비가 많이 오는 나라,
자연 경관이 아름다운 나라, 깨끗하고 풍요롭고 자연이 아름다운 나라,
원시림과 만년설에 뒤덮힌 나라,
자연의 웅장함과 소박함이 살아있는 나라, 끝없이 펼쳐진 초원의 나라 등,
뉴질랜드는 사람들이 살기에 아주 쾌적한 자연환경을 지닌 나라다.
물론 좋은 여행지로서 매력도 많다.
`신의 축복` 또는 `신의 선물`이라고 표현하는 깨끗한 자연미는 뉴질랜드가 자랑하는 소중한 관광자원이다.
뉴질랜드의 자연은 여행자들의 시선을 단숨에 압도할 정도로 위압적이거나 웅장하지 않다.
서서히 그리고 오래도록 여행자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묘한 마력이 있다. 그래서일까?
뉴질랜드는 유난히 별명이 많은 나라다. 그 별명들은 대부분 뉴질랜드 특유의 자연미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여행자들에게 널리 알려진 별명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두 개의 섬`이다.
뉴질랜드는 각각 `남섬`과 `북섬`이라 불리는 두 개의 큰 섬으로 이뤄져 있다.1642년 네덜란드 사람 아벨 태즈먼에 의해 처음 발견되었지만
1769년 영국의 탐험가 제임스 쿡에 의해 재발견되면서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240여 년이 흐른 지금, 뉴질랜드는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지 가운데 하나로 자리를 잡았다.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나라. 대기중에 오염이 없어 자외선이 강한나라, 비가 많이 오는나라,
자연 경관이 아름다운 나라, 깨끗하고 풍요롭고 자연이 아름다운 나라,원시림과 만년설에 뒤덮힌 나라,
자연의 웅장함과 소박함이 살아있는 나라, 끝없이 펼쳐진 초원의 나라,
뉴질랜드의 원주민인 마오리인들은 폴리네시아에 있는 여러 섬에서 AD 1200년 경에 이곳으로 건너왔다.
두 개의 선채를 가진 카누(waka)를 타고 별과 해류 및 새들의 날으는 방향을 안내 삼아 수천 km를 여행해 왔다.
대부분의 마오리인은 이러한 초기 폴리네시안 이민자들의 카누에서 그들의 계보(whakapapa)을 추적한다.그 중 하나는 쿠페(Kupe) 선장이 타고온 것이었는 데, 쿠페의 아내는 길고 흰 구름의 땅이라는 뜻의
“아오테아로아”(Aotearoa)라는 이름을 이 땅에 붙여 주었다.
마오리 사회는 그 성격상 부족 사회이다.대부분의 마오리인들이 도시나 중소 도시에 살고 있지만,
많은 마오리인 들은 자기들의 부족(iwi)에 대한 강한 소속감을 느낀다.
마오리 언어(Te reo Maori)는 모든 그들 부족 간에 공통어이며 뉴질랜드의 공식언어이기도 하다.
마오리인들은 또한 풍부한 신화와 전설 문화를 가지고 있으며,
강한 예술전통과 다채로운 설화역사를 지니고 있다.
뉴질랜드로 항해한 최초의 유럽인은 1642년에 이곳으로 탐험한 화란 탐험가 아벨 타스만(Abel Tasman) 이었다.그의 방문은 잠시였으나, 한 화란 지도 제작자가 나중에 이 나라를 네델란드의 한 지역 이름을 모방하여
“뉴우 지일랜드”(Nieuw Zeeland)라고 이름을 붙였다.
영국 탐험가 제임스 쿡(James Cook) 선장이 1769년에 도착하여 보다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었으며,그의 방문은 영국이 뉴질랜드를 식민지화 하는 데 초석이 되었다.
마오리인들은 이들을 “파키하”(Pakeha)라고 불렀으며,
오늘날에도 유럽계 뉴질랜드인들을 보통 “파키하”라고 부른다.
초기 정착민들은 낯선 환경을 맞이하여 고생을 많이했다.가지고 온 몇 가지 안되는 물품 밖에 없었던 그들은 무엇이든 필요하면 만들어 사용했다.
초창기 개척자들의 결단성, 독립심, 창의력이 오늘날의 뉴질랜드를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일부 마오리인들과 파키하들은 서로 교역하고, 함께 일하며, 협력하였다.그러나 식민지 개척자들이 점차 많아지는 반면,
질병과 토지몰수 및 전쟁 등으로 마오리 인구는 심각히 줄어들었다.
유럽 정착민들은 또한 문자와 기독교를 도입해, 마오리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1840년에 많은 마오리 추장들이 와이탕이 조약에 서명을 하였다.이는 오늘날 뉴질랜드의 건국서류로 인정되는 영국 왕실(국가)과의 조약이었다.
이 조약은 영국민들이 뉴질랜드에 정착해 통치를 하도록 허용했고,
반면 마오리인들은 그들의 땅과 자원을 장악하도록 허용했다.
그러나 마오리인들에게 땅과 자원에 대한 권리를 주겠다는 이 조약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고,이로 인해 마오리인들은 1860년대에서 1870년대에 유럽 정착민들과 수 많은 전투를 했다.
그 결과 수 많은 마오리인들의 땅이 몰수되었다.
1861년에 남섬에서 금이 발견되자 최초의 중국인 이민자들을 포함하여뉴질랜드에 새로운 인구 유입의 물결이 일었다.
여러 나라로부터 이민이 계속 늘어났고,
얼마 안되어 마오리인들은 비 마오리계에게 수적으로 열세가 되었다.
뉴질랜드 군인들은 1, 2차 세계 대전에 연합군으로 참전했다.1차 대전 중 터키의 걸리폴리(Gallipoli) 전투에서 영국군의 지휘 하에 있었던
뉴질랜드와 호주 군인들이 엄청난 희생을 당했다.
뉴질랜드 현충일(ANZAC day)에는 이러한 모든 뉴질랜드 전몰장병들의 희생을 기념한다.
뉴질랜드 역사의 큰 줄거리는 영국에 의존되어 지도를 받던 식민지 국가에서국제적인 안목을 가진 독립적인 국가로 변천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하나의 계기는 1972년이었다.
이 해에 영국이 유럽 경제 공동체(EEC)에 가입되자
뉴질랜드는 이 때부터 국제적인 교역 관계을 넓혀왔다.
뉴질랜드는 국제 무대에서 강력한 목소리를 내게 되었고,1989년에 세계 최초의 비핵국가로 선포해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게 되었다.
오늘날에는 영국과의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아시아 태평양 지역과도 깊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뉴질랜드에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태평양 군도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으며,
이들의 인구는 가장 빨리 성장하고 있는 새로운 이민 그룹인 아시아계 인구와 같은 수준이다.
한 국가로서 뉴질랜드 발전에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는 마오리인과 파키하 간의 관계의 변천이다.식민지가 된 후 100년 이상 마오리인들을 유럽 사회에 동화시키려는 노력이 있었으며,
이로인해 마오리어와 그들의 전통이 사라져 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난 30여년에 걸쳐 마오리 르네상스를 맞이하였다.와이탕기 조약은 이제 현대 뉴질랜드 사회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마오리인들의 영향이 계속 증가하여 “이 땅의 백성”(tangata whenua)으로서
그들의 독특한 지위를 인정하는 사회가 형성 되어 가고 있다.
뉴질랜드는 맨 처음 초창기와 마찬가지로,이곳으로 이주해 오는 각종 이민자들에 의해 그 모습이 변천되어 가고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과연 무엇인가?
그것은 사람, 사람, 사람이다.(He aha te mea nui i tenei Ao? He tangata, he tangata, he tanga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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