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창경궁(昌慶宮) - 사적 제123호
    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15. 4. 17. 23:30

    창경궁(昌慶宮) - 사적 제123호

     

    창경궁(昌慶宮)은 1418년 세종(世宗)이 왕위에 오른 후

    상왕(上王)인 태종(太宗)을 모시기 위하여 지은 수강궁(壽康宮)이 있었던 곳이다.

    성종(成宗) 14년(1483년) 세조(世祖)의 비(妃) 정희왕후(貞熹王后), 덕종(德宗)의 비(妃) 소혜왕후(昭惠王后),

    예종(睿宗)의 비(妃) 안순왕후(安順王后)를 모시기 위하여

    수강궁터에 명정전(明政殿), 문정전(文政殿), 통명전(通明殿) 등을 지어

    규모를 넓히고 창경궁(昌慶宮)이라 불렀다.

    선조(宣祖) 25년(1592년)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불타 버린

    창경궁(昌慶宮)은 광해군(光海君) 8년(1616년)에 재건되었다.

    그 후 순조(純祖) 30년(1830년) 큰 화재로 많은 전각(殿閣)들이 소실되어,

    순조 34년(1834년)에 다시 지어졌으나, 정전(正殿)인 명정전(明政殿)과 명정문,

    홍화문(弘化門)은 광해군 8년(1616년)에 재건된 이래 그 원형대로 보존되어 있다.

    그 중 명정전은 현존하는 조선시대 정전 중 가장 오래된 건물로서 국보 제226호로 지정되어 있다.

    일제(日帝)는 창경궁 안에 동물원과 식물원을 개설하여 1909년 일반인에게 관람하게 하였으며,

    1911년 박물관을 설치하면서 동. 식물원을 포함하여 창경원(昌慶苑)이라 이름을 고쳐 그 격을 떨어뜨렸다.

    1983년 12월부터 1986년 8월까지 약 3년간에 걸쳐 궁궐 본래의 모습으로 복구하는 중창공사를 실시하여

    창경원으로 격하된 이름을 창경궁으로 바로잡고, 궁 안에 있던 동물원과 놀이시설을 철거하고,

    문정전(文政殿), 빈양문(賓陽門), 명정전 월랑(明政殿 月廊) 등 일부 건물들을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창경궁(昌慶宮)

     

     

    본래 창경궁 터에는 1418년에 세운 수강궁(壽康宮)이 있었다.

    수강궁은 세종 때 상왕(上王) 태종을 위해 창덕궁 동편에 창건한 궁이었다.

    1483년에 성종이 3명의 대비를 위해 이 터에 크게 궁궐을 다시 짓고 창경궁이라 불렀다.

    창경궁은 창덕궁과 사실상 하나의 궁궐을 이루어 이들을 합쳐서 동궐(東闕)이라 하였고,

    후원(後苑)의 정원도 공동으로 이용했다.

    창경궁은 창덕궁의 부족한 생활공간을 보충하여

    왕과 왕비뿐 아니라 후궁(後宮), 공주(公主), 궁인(宮人)의 처소(處所)로도 사용했다.

    경복궁(景福宮)처럼 일정한 원칙을 좇아 경영된

    궁궐과 달리, 창경궁은 건축 형식과 제도 면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세워지고 이용된 궁궐이었다.

    궁궐은 남향이 원칙이지만, 창경궁의 중심 부분은 특이하게 동향으로 배치되어 있다.

    동쪽에 왕실 동산인 함춘원(含春園)과 낙산이 자리를 잡고 있어 그곳을 바라볼 수 있도록 지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생활공간들은 남향으로 배치되어 있다.

    창경궁은 자연지형을 따르면서도 생활의 편의를 추구하여 궁궐을 조성했기 때문에

    아름다움과 친근함을 두루 갖춘 궁궐이 되었다.

    임진왜란(1592년)때 서울의 다른 궁궐과 함께 불에 탔다가 1616년에 재건되었다.

    이때 다시 세운 명정전, 명정문, 홍화문 등은 창경궁의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궁궐 건물들에 속한다.

    창경궁의 전성기는 1830년대였다. 동궐도(東闕圖)에는 여러 대비궁, 후궁과 공주들의 처소,

    궐내각사 등이 촘촘하게 들어서고 곳곳에 정원시설이 조화를 이룬 당시 모습이 잘 묘사되어 있다.

    일제강점기에 창경궁 안의 건물들을 대부분 헐어내고 동물원과 식물원을 설치하여 시민 공원으로 바꾸고,

    이름마저 창경원(昌慶苑)으로 격하시켰다.

    또한 종묘와 연결된 땅의 맥을 끊고 그 사이에 도로를 개설하여 궁궐의 품격을 훼손했다.

    1983년부터 동물원을 이전하고 본래의 궁궐 모습을 되살리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비록 많은 유적들을 복원하지 못했지만, 아름다운 자연과 어우러진 창경궁의 모습에서 왕실 생활의 체취를 느낄 수 있다.

     

     

     

     

     

    2848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