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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명박 대통령의 고향 "덕실마을"
    국내 나들이/관광지(觀光地)로 2015. 8. 4. 03:13

    이명박 대통령의 고향 "덕실마을"

     

    포항시로부터 효(孝) 시범마을로 지정된 포항시 북구 흥해읍 덕성1리는 예로부터 예(禮)와 덕(德)을 중시하는

    충절의 고장으로 덕이 있는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라 하여 덕실마을로 불려지고 있다.

    양쪽으로 낮은 산들이 펼쳐져 있어 골을 형성하고 있으며 골짜기를 따라 개천이 흐르고 있다.

    개천은 마르지 않는 물로 유명한데 조선시대 전국이 가뭄으로 고생할 때 이 마을만은 가뭄이 들지 않아

    덕이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고 그것이 곧 마을이름이 되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일제시대 때 일본 오사카(大阪)에서 출생하였으나 광복이 되면서 귀국해

    포항 덕실마을에 들어와 3∼4년간 살다 6.25 전쟁 중에 포항으로 이사를 했다.

    후에 잠깐 이곳에 다시 들어와 몇 달을 살기는 했지만 덕실마을에 살았던 것은 4년 내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향이라고 하는 것은 이명박 대통령의 본관이기도 한

    경주 이씨(경주 이씨는 원래는 월성이씨로 불리다 경주에 살았다고 하여 경주이씨로 바뀌었다고 함)의 집성촌이며

    선조들이 살았고 친척들이 살고 있는 마을이기 때문이다.

    덕실마을에는 이명박 대통령의 일가 친척들이 많이 살고 있다.

    유적으로는 경주 이씨 덕실 입향조를 추모하는 이상재(履霜齋)와 담화정(湛和亭)이 있다.

    이곳은 당대 선비들이 거처하며 공부하던 곳으로, 그들의 학문은 수준이 매우 높아

    인근의 달전, 흥해, 기계, 청하지역의 재지사림(在地士林)을 영도하는 위치에 있기도 하였다.

    지금도 많은 고서가 소장되어 있는데 이 자료들을 통해 당시 유학자들의 학문과 경지를 엿볼 수 있으며,

    덕실마을 유풍이 동해안 유림에게 큰 영향을 끼쳤음을 알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 고향집 복원

     

     

     

     

     

     

     

     

     

     

     

     

     

     

     

     

     

     

    2011년 2월 개관한 덕실관은 전체 부지 899㎡에 건축면적 411㎡로 지상 2층 규모이다.

    1층은 휴게실, 기념품판매점, 전시실 등을 갖추고 있으며 2층은 영상관과 정보검색코너로 운영된다.

    영상관에서는 이 대통령의 대통령선거 후보 당시 홍보물(14분 상영 분량)을 비롯해

    포항과 덕실마을을 소개하는 각종 홍보물을 상영한다.

     

     

     

     

     

    판잣집에서 미래의 꿈을 키우다

     

    일제강점기인 1941년 12월 19일 일본 오사카에서 부친 이충우(1981년 작고)와

    모친 채태원(1964년 작고)의 4남3녀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1945년 해방이 되자 부모님을 따라 지금의 고향집으로 돌아왔으며,

    여섯 살 때부터 포항읍내, 지금의 중앙초등학교 부근 판잣집에서 살았다.

     

     

     

    주경야독으로 전교 1등을 놓치지 않다.

     

    6.25전쟁이 발발해 다시 덕실마을로 피난해 살았으며, 손위 누이와 막내동생을 잃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집안이 가난해 어린시절부터 죽도시장에서 어머니를 도와 뻥튀기, 풀빵장사, 과일행상 등을 했다.

    포항중학교 시절부터 전교 2등을 놓친 법이 없었지만 가정형편이 어려워 담임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포항동지상업고등학교(야간)에 전체 수석으로 입학했다.

    입학 후 3년 내내 주야간 통틀어 1등으로 장학금을 받아 졸업했다.

     

     

     

     

    샐러리맨의 신화

    만 35세에 현대건설 대표이사가 되다.

     

    대학 졸업 후 데모를 주동했다는 이유로 입사시험마다 떨어지는 불운을 거듭하다가 우여곡절 끝에

    현대건설에 입사하여 태국의 건설현장에서, 중동의 뜨거운 모래바람과 경부고속도로의 건설현장에서 밤낮을 누빈 결과,

    1977년 만35세에 현대건설 대표이사에 올랐다.

     

     

     

     

    실천하는 경제전문가, 대한민국의 리더가 되다.

     

    성공한 기업가로 청장녀을 보낸 그는 1992년 정치에 입문하여 실용주의 정치인, 경제 정치인을 표방하며

    서울시장에 도전해 2002년 6월 한나라당 후보로 민선3기 서울시장에 당선됐다.

    서울시장 재임시 청계천 복원, 서울시 대중교통체계 개편 등 많은 업적을 남겼다.

    서울시장 성공 이력을 바탕으로 경제를 살려 국민 성공시대를 열겠다는 슬로건을 내걸었던 그는

    마침내 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대통령의 고향 - 덕실마을

     

    포항시로부터 효(孝) 시범마을로 지정된 포항시 북구 흥해읍 덕성1리는 예로부터

    예(禮)와 덕(德)을 중시하는 충절의 고장으로 덕이 있는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라 하여 덕실마을로 불려지고 있다.

    신라 지증왕(505년)때 퇴화현에 속한 후 퇴화군에서 의창군으로 행정구역을 거쳐,

    고려 초에 이르러 흥해군이 되었으며, 1995년 영일군과 포항시가 통합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유적으로는 경주 이씨 덕실 입향조를 추모하는 이상재(履霜齋)와 담화정(湛和亭)이 있다.

    이곳은 당대 선비들이 거처하며 공부하던 곳으로 그들의 학문은 수준이 매우 높아

    인근의 달전, 흥해, 기계, 청하지역의 재지사림을 영도하는 위치에 있기도 했다.

    지금도 많은 고서가 소장되어 있는데, 이 자료를 통해 당시 유학자들의 학문의 경지를 엿볼 수 있으며

    덕실마을의 유풍이 동해안 일대의 유림에게 큰 영향을 끼쳤음을 알 수 있다.

     

     

     

     

     

     

    臨事而懼 好謀而成(임사이구 호모이성)

     

    옛 삶들은 큰일을 당하면 반드시 두려움과 같은 마음을 지녀 치밀하게 동시에 지혜를 모아 일을 성사시킨다.

     

     

     

     

     

     

     

    이상재(履霜齋)

     

    이 재실(齋室)은 입향조(入鄕祖) 통정대부(通政大夫) 삼효공(三斅公) 이준(李濬)을 추모(追慕)하기 위(爲)하여 창건(創建)하였다.

    경내(境內)에는 지방사림들(地方士林)이 모여 시회(詩會)를 하던 담화정(湛和亭)이 있다.

    공(公)은 경주이씨(慶州李氏) 시조(始祖) 표암공(瓢巖公) 알평(謁平)의 후예(後裔)로

    중시조(中始祖) 소판공(蘇判公) 거명(居明)의 28세손(二十八世孫)이고 국당공(菊堂公) 천(蒨)의 12세손(十二世孫)이며

    송와공(松窩公) 종윤(從允)의 7세손(七世孫)으로 학문(學文)이 뛰어나 유고(遺稿) 수(數) 편(篇)이 있다.

    공(公)은 청송군(靑松郡) 안덕면(安德面)에 세거(世居)하다가 임진년(壬辰年, 1592)에 이곳 덕실(德室) 마을에 입향(入鄕)하였다.

    이 재실(齋室)은 창건(創建)한 지 오래되어 실내(室內)가 협소(狹小)하고 건물(建物)이 퇴락(頹落)하여 사용(使用)에 불편(不便)이 많았다.

    이에 일족(一族)이 뜻을 모아 병인녕(丙寅年, 1866년) 중건(重建)을 시작(始作)하여 정묘년(丁卯年, 1867년)에 완공(完工)하였다.

    충효예절(忠孝禮節)을 숭상(崇尙)한 공(公)의 유덕(遺德)에 힘입어

    후손(後孫)들이 번성(繁盛)하고 현달(顯達)한 자손(子孫)이 많아 세인(世人)의 칭송(稱頌)이 자자(藉藉)하다.

    특(特)히 공(公)의 12세손(十二世孫) 상득(相得)은 제17대(第十七代) 국회(國會)에서 국회부의장(國會副議長)을 역임(歷任)하였으며,

    제18대(第十八代) 국회의원(國會議員)에 당선(當選)되어 6선의원(六選議員)이 되었고,

    동생(同生)인 명박(明博)은 국회의원(國會議員)과 민선(民選) 서울특별시장(서울特別市長)을 역임(歷任)하였고

    헌정사상(憲政史上) 최다(最多) 지지(支持)로 제17대(第十七代) 대통령(大統領)이 되었다.

     

    소재지(所在地): 경상북도 포항시 흥해읍 덕성1리 594번지(慶尙北道 浦項市 興海邑 德城1里 594番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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